[단독] 'UN 비인가 단체' 기업 협찬, 박수현 靑 '부적절 만남' 있었다 
입력: 2023.09.07 00:00 / 수정: 2023.09.07 14:35

기업체, 박 전 수석 만남 후 약 4억4000만 원 기부
법조계 "매우 부적절, 사실상 기부 강요"…朴 "비판 감수"


박수현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2022년 2월 23일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한국위) 관계자, 모 건설회사 계열사 사장 등을 청와대에서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한국위는 해당 기업들에게 협력을 제안했고, 박 수석은 한국위의 설립 배경 등을 설명했으며 참석자 가운데 한 명은 실제로 4억4000만원을 기부했다. /제보자 제공
박수현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2022년 2월 23일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한국위) 관계자, 모 건설회사 계열사 사장 등을 청와대에서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한국위는 해당 기업들에게 협력을 제안했고, 박 수석은 한국위의 설립 배경 등을 설명했으며 참석자 가운데 한 명은 실제로 4억4000만원을 기부했다. /제보자 제공

[더팩트ㅣ이철영·김정수·설상미 기자] 국제기구 UN(유엔)으로부터 공식 인가를 받지 않고 UN 명칭을 사용한 일반 사단법인에 기업체가 수억 원대 후원을 한 이면에는 이 단체의 초대 회장을 지낸 박수현 전 국민 소통수석과 기업인의 부적절한 청와대 만남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6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2년 2월 23일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은 청와대에서 모 건설회사 계열사 사장 2명,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한국위) 관계자 3명(1명은 도시 관련 자문 교수)과 함께 만났으며 이 자리에서 한국위가 기업에 10억 원대 협력을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 수석은 이날 만남에서 기업 대표들에게 자신이 초대 회장이었던 한국위의 설립 배경과 사업 등을 홍보했으며 실제로 참석한 기업은 만남 이후 두 차례에 걸쳐 4억 4000만 원을 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국가 최고의 권력 중추인 청와대에서 현직 청와대 수석과 기업 대표들, 그리고 협력 제안에 나선 한국위 관계자들의 만남은 정치적 해석를 떠나 부적절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는 국제기구 UN 또는 그 산하 유엔해비타트로부터 공식 인가를 받지 않은 일반 사단법인에 불과하다. 그러나 출범 초기 유엔해비타트 한국위는 마치 UN에서 최초로 공인한 국가위원회처럼 활동했다. 2019년 출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해비타트 최초로 단일 국가위원회가 한국에서 탄생했다'고 축전을 보내 힘을 실어준 바 있다.

박 전 수석은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위는 지난 7월 <더팩트> 보도에 따라 유엔 또는 유엔해비타트로부터 공식 인가를 받지 않은 단체로 밝혀졌다. /한국위 누리집 갈무리
박 전 수석은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위는 지난 7월 <더팩트> 보도에 따라 유엔 또는 유엔해비타트로부터 공식 인가를 받지 않은 단체로 밝혀졌다. /한국위 누리집 갈무리

박 수석은 당시 만남에서 기업 대표들에게 한국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홍보했고, 한국위는 사전에 준비한 협력 제안서를 기업체 대표들에게 제시했다. 협력 제안서는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 ㅇㅇ건설 협력 제안서'였다.

한국위가 작성한 제안서에는 도시와 청소년 참여 등 두 가지 프로젝트로 각각 5억 원씩 총 1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적시됐다. 이후 한국위는 같은 해 3월 3일과 3월 10일 모 건설사 본사에서 계열사 관계자들을 두 번 더 만났다. 4월, 청와대에서 박 수석과 만났던 한 계열사는 한국위와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이후 두 번에 걸쳐 약 4억4000만 원을 기부했다.

취재진은 당시 참석자 전원에게 그날 만남의 배경과 대화 주제 그리고 누가 주선했는지 등을 확인했다. 한국위 관계자 3명의 대답은 갈렸다. A 씨는 청와대에 갔는지를 묻자 "2021년 12월 유엔해비타트 본부에서 포럼 참석차 손님들이 왔을 때 청와대에서 (박 수석을) 한 번 봤다. 그 이후에는 없다"고 말했다. 이에 취재진이 '2022년 2월 23일에 청와대 갔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묻자, 잠시 후 "그것도 맞다"고 인정했다.

왜 청와대에서 만났고, 박 전 수석이 만남을 요청했는지를 물었지만 A 씨는 "자세한 내용까지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한국위에 자문하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B 씨는 기억 자체가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회의를 한 기억이... 어쨌든 기억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면서 "간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이에 '그 자리에서 협력 제안 등이 있었다는 데 기억에 없나'라고 묻자 B 씨는 "그 당시에, 글쎄요. 의미가 없지는 않았겠지만, 제가 말을 많이 하는 자리는 아니었다"고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었던 C 씨의 설명은 앞선 A, B 씨의 대답과는 달랐다. C 씨는 먼저 청와대로 간 배경과 관련해 "그날 오전 한국위 관계자로부터 청와대로 대신 가라는 지시를 받았다"며 "이후 A 씨에게 연락해 회의 내용 자료를 전달받았고, 어디로 몇 시까지 오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동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수석실로부터 12시 회의 시작이고 11시 30분에 데리러 온다고 했다. 그렇게 청와대로 가서 박 수석 그리고 기업 대표 2명을 만났다"면서 "먼저 회의를 했는데 박 수석은 한국위 설립 배경과 활동 등에 대해 직접 기업 대표들에게 설명했다. 또, B 씨도 그 자리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발언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회의를 끝냈고, 도시락을 함께 먹었다"고 설명했다.

C 씨는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박 수석과 친분이 두터운 한국위 고위 관계자가 '(박 수석이) 청와대 떠나기 전 마지막 선물을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당시는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다"고 했다.

박 전 수석의 행동에 기업 대표들은 상당한 압박을 받았을 수 있다. 이에 취재진은 기업 대표들에게도 당시 청와대에 간 배경과 대화 내용 등을 물었다. D, E 대표에게 수차례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끝내 답을 듣지 못했다.

박 전 수석은 2022년 2월 23일 청와대에서 만남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그 자리에 참석했던 관계자 등에 따르면 박 전 수석은 회의 후 기념촬영과 함께 청와대 로고가 새겨진 찻잔 세트를 선물했다./제보자 제공
박 전 수석은 2022년 2월 23일 청와대에서 만남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그 자리에 참석했던 관계자 등에 따르면 박 전 수석은 회의 후 기념촬영과 함께 청와대 로고가 새겨진 찻잔 세트를 선물했다./제보자 제공

취재진은 박 전 수석에게도 기업 대표들과 한국위 관계자들을 청와대로 부른 배경과 당시 발언 등을 물었다.

박 전 수석은 "누가 어떻게 왔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어렴풋하게 면담한 기억은 있다"면서 "인사차 왔던 것이다. 제가 (한국위) 업무에 관여할 일도 없고, 관여할 수도 없다. 그런 업무와 관련된 내용의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저는 잘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장소가 청와대였던 이유에 대해 박 전 수석은 "한국위 후배들이 연락이 왔을 텐데, 그렇게 와서 차 한잔 나눈 것"이라고 했다. 다만, 박 전 수석은 그 자리에서 한국위의 협력 제안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는 "기억이 없는 게 아니라 알지를 못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박 전 수석은 한국위 외에도 인연으로 인사차 방문과 면담 요청이 많아 당시 만남이 의미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날 면담 후 박 전 수석은 청와대 로고가 새겨진 찻잔 세트를 선물했고, 사진 촬영 등을 진행했다.

법조계에서는 박 전 수석의 행동에 대해 매우 부적절하다고 해석했다. 특수부 검사 출신 변호사는 "일단은 매우 부적절한 상황이다. 해당 기업들은 '우리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해서 어쩔 수 없이 했어'라고 하면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해당 기업들이 '그렇지 않아도 (기부를) 하려고 했던 건데 박 수석도 관심을 갖고 그러신 것 같았다'라고 하면 문제가 없을 수 있다. 관건은 해당 기업이 압력을 느껴서 '이거 안 해주면 안 될 거 같아서 어쩔 수 없이 했는데 10억 원이었지만, 4억 으로 잘 막았다'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다"라고 짚었다.

이 변호사는 장소가 청와대였다는 점도 매우 부적절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청와대에서 만났다는 것 자체가 매우 부적절하다"라며 "'박 수석이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까 좀 기부를 해' 이렇게 얘기한 거나 똑같은 거다. 당시 해당 기업에 어떤 현안이 있었는지에 따라 대가성 여부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박 전 수석은 청와대에서 기업체 대표들과 만남이 부적절했다는 지적과 관련해 저는 단순하게 인사차 그렇게 생각을 쉽게 했지만, (부적절했다고) 해석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비판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더팩트 DB
박 전 수석은 청와대에서 기업체 대표들과 만남이 부적절했다는 지적과 관련해 "저는 단순하게 인사차 그렇게 생각을 쉽게 했지만, (부적절했다고) 해석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비판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더팩트 DB

그는 또 "당시 (앞서 한국위가 기업에) 이야기를 했는데 안 들어주니까 자리를 마련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며 "좋게 얘기가 됐으면 굳이 (박 수석을) 동원할 이유가 있었을까. '한국위 초대 회장이었던 박수현도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자리가 마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했다.

또 다른 기업 전문 변호사 역시 박 전 수석의 행동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비상식적이다. 사실상 기부강요라고 본다. 제3자 뇌물수수죄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며 "박 전 수석이 직접 뇌물을 받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한국위에 기업의 자금을 준 셈이다. 기업이 알아서 갖다 바친 것이다. 그 정도는 상식이지 않을까"라고 지적했다.

박 전 수석은 청와대에서 기업 대표들과 만남의 부적절성에 대한 지적에 "저는 단순하게 인사차 그렇게 생각을 쉽게 했지만, (부적절했다고) 해석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비판을 달게 감내하겠다"면서 다시 한번 "면담이 있었던 것 같고, 그러나 당시 누가 와서 어떤 내용으로 대화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어떤 영향을 미치는 면담은 전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한편 <더팩트>는 지난 7월 한국위가 국제기구 UN(유엔) 또는 그 산하 유엔해비타트로부터 공식 인가를 받지 않은 일반 사단법인에 불과하다고 보도한 바 있다([단독] 文 축하 '유엔해비타트 최초 국가위원회 한국 탄생', 알고 보니 '거짓'). 보도 이후 한국위는 홈페이지를 폐쇄하고 한국위 협업 기관 등은 협약을 종료하거나 후원을 중단한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프로필에 한국위 이력을 삭제하기도 했다([단독 그 후]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지워지는 흔적들).

지난 8월 국민의힘 시민단체 선진화 특별위원회는 유엔해비타트 본부로부터 받은 공식 답변서를 공개하며 한국위가 유엔 산하기구를 사칭해 44억 원의 기부금을 거뒀다고 주장했다([단독 그 후] 與 "유엔해비타트 한국위, 유엔 산하 사칭 44억 모금").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유엔해비타트 본부로부터 받은 답변서에는 '유엔해비타트는 시민사회단체나 비정부단체를 지지하거나 승인하지 않고, (한국위에) 로고 무단 사용을 즉시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어 특위는 지난달 25일 최종 보고회를 열고 한국위의 지정기부금단체 지정 취소를 국세청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는 지난 2019년 9월 27일 국회 사무처 산하에 등록된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초대회장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을 지낸 박수현 전 수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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