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개선, 한미·한미일 협력 강화 기조
중·러와 각 세워…"섬세한 관리 필요" 지적도
윤석열 대통령은 외교 노선에서 균형보다는 선명성을 택했다. 자유, 인권, 법치 등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연대라는, 이른바 '가치 외교' 추구다. 지난달 26일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만찬을 마친 후 조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무대에 올라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돈 맥클린의 '아메리칸 파이'를 부르는 모습. / 워싱턴=AP/뉴시스 |
"저는 자유, 인권, 공정, 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다하고 존경받는 나라를 위대한 국민 여러분과 함께 반드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5월 10일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이같이 약속했다. 대통령 집무실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겼다.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고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의지였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와는 다른 인사, 외교, 대북관계, 야당과의 협치는 물론 대통령 부인의 역할도 조용한 내조로 바꾸겠다며 제2부속실도 폐지했다. 그로부터 1년, 윤 대통령의 약속은 얼마나 지켜졌을까. 또, 청와대는 과연 국민의 품으로 들어왔을까. <더팩트>는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을 맞아 윤 대통령의 국민과 약속을 총 9회에 걸쳐 짚어봤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조채원 기자] 대선 후보 시절부터 더불어민주당 정권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실패로 규정했던 윤석열 대통령은 외교 노선에서 균형보다는 선명성을 택했다. 자유, 인권, 법치 등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연대라는, 이른바 '가치 외교' 추구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고도화와 미중 간 전략경쟁의 심화 등 급변하는 국제 정세가 영향을 미쳤다. 제3자 변제안으로 한일관계 개선에 물꼬를 튼 윤 대통령은 안보협력 분야에서 한미일 공조를 견고히 하겠다는 구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반면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대화·교류 복원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반대 진영인 중국·러시아와의 껄끄러운 관계도 이어질 전망이다.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첫 만남을 시작으로 나토 정상회의, 유엔총회,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등 여러 다자회의 때마다 별도 회담 등을 가지며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과시했다. 특히 한미일 정상은 '프놈펜 성명'을 채택하며 미국의 대북억제력 강화, 첨단산업 협력, 경제안보대화체 가동 등 연대를 더욱 공고히 다졌다. 최근 국빈 방미에서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 공약을 구체적으로 명문화한 '워싱턴 선언' 채택은 지난 1년간의 결과물로 꼽힌다.
한일관계 개선도 눈에 띈다. 과거사 '통큰 양보'를 계기로 주춤했던 경제, 외교, 안보 분야 협력 활성화가 이뤄지면서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7일 윤 대통령 방일 이후 50여 일 만에 답방해 12년 만에 '한일 셔틀 외교 복원'을 공식화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한일정상회담을 통해 한일관계가 정상화 단계에 접어들었고, 미래지향적 관계를 열었다'며 가치 외교의 성과로 자평한다.
한일관계 개선은 한미·한미일 협력 강화로 이어지는 형국이다. 윤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 초청으로 19~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해 한미일 정상회담을 갖는다. 윤 대통령이 워싱턴 선언에서 합의한 핵협의그룹(NCG)에 일본의 참여 가능성을 열어놓은 만큼 한미일 정상은 3국 간 협력 구도를 외교·군사·경제안보 전반으로 확장할 의지를 밝힐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7일 대통령실 청사에서 소인수 회담 전 악수를 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과거사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나 반성을 언급하는 대신, 개인적인 입장을 전제로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는 유감을 표명했다. / 뉴시스 |
그러나 미국, 일본에 '올인'하는 가치 외교 노선에 대한 비판과 우려도 존재한다. 외교의 기본이자 최우선인 '국익' 측면에서다. 한미공동선언문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법 등에 대한 구체적 해법이 담기지 않았고, 12년 만의 한일 셔틀외교 복원에 의미 부여를 할 만한 '내용'은 찾기 힘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가치 외교냐 균형 외교냐는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대목이고,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라면서도 "친미 편향적인 가치 외교가 반드시 한국의 이익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점, 분단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처럼 국경을 맞댄 나라를 적으로 돌린 데 대한 위험성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 프랑스처럼 어느 한쪽편도 들지 않고서도 균형 외교를 지향할 수 있을 만큼 대한민국의 위상과 국력이 높아졌다는 점 등이 고려됐는지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한·중, 한·러 관계 악화로 우리 외교 운신의 폭이 좁아진 것도 문제로 꼽힌다. 지난 26일(현지시간) 발표된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는 "한미 양국은 자국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수호하는 우크라이나와 함께하며, 양 정상은 민간인과 핵심 기반시설을 대상으로 하는 러시아의 행위를 가장 강력한 언어로 규탄했다", "양 정상은 불법적인 해상 영유권 주장, 매립지역의 군사화 및 강압적 행위를 포함하여 인도-태평양에서의 그 어떤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도 강력히 반대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중국과 러시아도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있다. 특히 미국과 패권경쟁 중인 중국은 한미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관영언론까지 동원해 연일 거친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한미일 안보협력이 구체화할수록 중국이 한국을 상대로 경제 보복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경제 효과나 남북관계 측면에서 한중·한러 관계를 더욱 섬세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종건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난 3일 열린 윤석열정부 1년 평가 외교안보 토론회에서 "한미동맹에 편중된 외교안보 정책은 대북 관여 정책 중단과 한중관계 불투명이란 결과를 낳았다"며 "확장억제 이외에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정책 구현이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한중관계가 돈독해질수록 북한은 도발에 더욱 신중해질 수 밖에 없다"라며 "지금이라도 한중관계가 더 악화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양국 간 경제협력을 유지·확대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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