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사 철회소송 모두 기각…日"종교적 관용 발휘해야"
무단 합사, 과거사 문제 넘은 보편적 인권침해
2014년 10월 17일(현지시간) 야스쿠니 신사에 가을제사를 맞아 참배를 하러온 일본 정치인들의 모습. 당시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는 '내각 총리대신, 아베 신조'라는 명의로 공물을 봉납했다. /AP=뉴시스 |
[더팩트ㅣ조채원 기자] 현재까지 한국인 유족들은 세 차례 걸쳐 야스쿠니 신사 합사 철회를 요구하는 소송을 도쿄지방법원에 제기했다. 2001년 6월 29일 첫 소송에서는 한국인 군인·군속 피해자와 유족 414명이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를 상대로 합사 철회, 유골 반환, 손해 배상, 공개사죄 등을 요구했다. 이 소송은 합사 뿐 아니라 급여와 공탁금 등 미불금 지급, 희생자의 사망 경위에 대한 구체적 정보 제공, 유골 반환 요구 등을 포함한다. 합사 철회를 요구한 원고는 유족 55명이다. 2009년 10월 2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돼 대법원까지 간 이 소송은 2011년 11월 30일 패소가 확정됐다.
첫 소송에 참여했던 원고 중 12명은 2007년 2월 26일 두 번째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인이 합사 문제만을 다룬 소송으로는 첫 사례다. 이 소송 역시 2011년 7월 21일 지방법원에서, 2013년 10월 23일 고등법원에서 패소했고 상고하지 않아 패소가 확정됐다. 한국인 유족 27명은 2013년 10월 22일 두 번째 합사 철회 요구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5월 28일 지방법원에서 기각돼 고등법원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인 이 건의 선고 기일은 오는 5월 26일이다.
합사 철회 소송에서 원고들이 보상금으로 요구한 금액은 '1엔'이다. 합사 철회는 돈의 문제가 아닌, 아닌 정의와 상식 실현의 차원이란 취지다. 그러나 일본 법원은 여태까지 소송에 모두 같은 대답을 내놨다. "원고들의 모든 요구를 기각한다. 소송 비용은 원고 측이 부담한다."
◆ 일본이 합사 철회를 거부하는 이유, 그리고 반박
재판부는 합사는 야스쿠니 신사가 독자적으로 결정한 것이고, 일본 정부는 종교시설인 신사에 관여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국가종교시설이었던 신사가 1945년 이후 일반 종교법인이 됐다는 이유를 들어서다. 그러나 신사는 일본 후생성이 전쟁에 의한 공무사로 인정한 사람만을 합사 대상으로 삼았고, 후생성은 신사에 2만692명 분의 한국인 자료를 제공했다. 사실상 정부가 한국인에 대한 신사 합사를 결정한 것이었다.
'종교적 관용'도 들었다.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는 타자의 신앙에 기초한 행위에 대해 관용적이어야 한다며, 타자의 종교 행위로 불쾌감 혹은 혐오감을 느끼는 것은 법으로 보호할 이익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교, 불교의 교리를 존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야스쿠니의 교리에서도 대해 종교적 관용을 발휘해달란 얘기다. 그러나 종교는 국가를 초월한, 인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고 지향해야 한다. 일본의 이익만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켜 무수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전범 등을 신으로 받드는 야스쿠니의 교리가 보편종교의 교리와 같다고 볼 수 없다.
야스쿠니 신사 내 전쟁박물관에 있는 침략전쟁 미화 전시품. / 야스쿠니 신사 홈페이지 캡처 |
2013년 10월 23일 도쿄고등법원 판결문에는 "당시 국회 답변에서 찾을 수 있듯이 전쟁에서 순직한 자 또는 그 유족이 피항소인 야스쿠니 신사 합사를 바라고 있었다고 충분히 믿을 만한 합리적 이유가 있었던 상황"이라는 내용이 있다. 지금까지도 징용·징병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일본 정부의 기본적 입장과 다르지 않다.
소송에 참여한 유족들이 가족의 합사 사실을 알게된 것은 해방되고도 한참 후인 1990년대에 이르러서다. 신사는 합사 사실을, 일본 정부는 사망 사실조차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유족이 합사를 원했다는 말인지 받아들이기 힘들다. 심지어 유일하게 생존자로 소송에 참여한 김희종은 법정에서 '강제동원 당했고 합사 말소를 원한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김 씨에 대해 "살아있는 줄 알면서 합사한 게 아니고, 생존 사실을 확인한 뒤 재빨리 사과했고, 합사된 사실을 유족 외 제3자에게는 공개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할 때 참을 수 있는 한도를 넘어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 "저도 이제 그만 전쟁을 끝내고 싶습니다"
제게는 1945년에 끝났다는 전쟁이 아직 진행형입니다. 일본이 제때 아버지의 전사소식을 알려주었다면, 해방 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하지 않았다면 겪지 않아도 됐을 정신적 고통을 겪으며 지금도 전쟁 속에 살고 있습니다. 저도 이제 그만 전쟁을 끝내고 싶습니다. 마음에 꼭 찬 분노의 감정을 풀고 미움과 증오의 사슬에서 해방되고 싶습니다. 죽고 없는 아버지가 다시 살아서 당신 인생을 펼질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을, 가신 이는 가신 이대로 편히 쉬게 하고 저는 저대로 평온한 마음으로 인생을 정리할 수 있으면 정말로 좋겠습니다.
이희자, 내가 '야스쿠니 소송'을 하는 이유
무단 합사는 침략전쟁에 강제동원돼 억울하게 죽은 이들 뿐 아니라 유족에게도 끝 모를 고통이다. 합사자들은 군인·군속으로 강제동원돼 전장에서 죽었다는 이유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부정하고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야스쿠니 역사관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유족들은 고인을 원하는 방식으로 추모할 권리조차 빼앗겼고, 가족이 A급 전범이나 친일 민족 반역자와 같은 대열의 일본군으로 여겨지는 불명예를 안고 살아야 한다. 즉, 무단 합사는 한일 과거사 문제를 넘어서는 보편적 인권 침해의 문제다. 유족들이 아시아 각국의 피해자, 한일 시민단체 등과 연대해 야스쿠니 신사의 반인권, 반평화, 반문명성을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이유다.
지난 2021년 10월 28일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대표(오른쪽 두번째)가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열린 '10.30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 3년, 피해자 및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 뉴시스 |
정부는 일본 정치인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거나 공물을 바치는 건에 대해서는 강한 유감을 표하거나 과거사에 대한 반성·사죄를 촉구하는 성명을 내 왔다. 그러나 무단 합사 역시 야스쿠니 신사에 녹아있는 퇴행적 역사인식에 기반한 행위라는 점에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외교부는 야스쿠니 한국인 무단 합사에 대한 견해를 물은 <더팩트>에 "야스쿠니 신사에 불행한 역사의 피해자인 한국인 희생자를 본인들과 유족의 의사에 반해 합사하고 분사하지 않고 있는 것은 희생자들의 명예와 인격을 부정하는 것임은 물론, 개인의 신앙과 종교의 자유라는 인권의 기본원칙에도 위배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우리 정부는 그간 각종 계기에 일본 측에 합사 해제를 요구해 왔으며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합사 해제 요청이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일본 측의 대응을 지속적으로 촉구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참고 문헌 <3·1절에 생각하는 야스쿠니신사 한국인 무단 합사 철회 소송> 남상구, 2023 <타라와에 남겨진 한국인 희생자와의 만남> 황동준, 2020<식민청산과 야스쿠니> 남상구 편, 2019<역사와 책임 8호> 민족문제연구소·포럼 진실과 정의, 2015<야스쿠니 신사, 무엇이 문제인가>,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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