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현역 정치 무대로 돌아갈 생각 없어…다만 정치는 생물"
"檢, 명백한 야당 탄압…이재명도, 김건희도 수사해야"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18일 서울 여의도 자신의 사무실에서 <더팩트>와 인터뷰하는 모습. 박 전 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단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의도=남윤호 기자 |
[더팩트ㅣ여의도=신진환·김정수 기자] 박지원(80) 전 국가정보원장의 이름 앞에는 늘 '정치 9단'이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입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바둑 9단을 빗댄 것인데, 경험과 관록의 정치인이라는 상징적 의미다. 그만큼 이력이 화려하다.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문화관광부 장관, 4선(14·18·19·20) 의원에 이어 문재인 정부 시절 국정원장까지 역임했다.
정계에선 이제는 '한물간' 정치인이라는 평가도 있다. '올드 보이' 이미지 때문이다. 시대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일이다. 신문 정치면보다 사회면에 자주 등장하는 영향도 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지난달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 하면서 박 전 원장은 법정 공방을 벌여야 하는 처지다.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난 박 전 원장은 표정부터 여유로웠다. 재판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각종 방송에 출연하며 왕성한 활동도 지속하고 있다. '솔직히 심경이 어떤가'라는 물음에 박 전 원장은 씩 웃으며 "집어넣으면 (감방)가서 살면 되지"라며 농담했다. 그만큼 결백하다는 자신감으로 보였다. 그는 지난달 14일 검찰에 출석하면서 서해 피격 사건 첩보 삭제를 지시했다는 의혹을 부인했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성남FC 후원금 의혹과 대장동 특혜 개발 의혹으로 검찰의 목표물이 된 상황에서 박 전 원장은 '친정'인 민주당에 복당했다. 2016년 1월 당내 주류였던 친문(친문재인)계와 갈등을 빚다가 탈당한 뒤 지난해 12월 복당했다. 약 7년여 만이다. 그는 "제 복당은 당연한 것 아니냐"며 호탕하게 웃었다. 박 전 원장의 복당 결정에 이 대표의 강한 의중이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내년 총선 출마 여부에 대해 "정치는 생물이다. 하나 분명한 것은 아직 현역 정치 무대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
박 전 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이 창당하고 그 혼이 살아 있는 민주당을 탈당했는데, 귀신이 씌었던 것 같다"며 "민주당을 떠난 것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제 잘못이며, 반성한다"고 사과했다. 이어 "현재 민주당을 위해 그 누구보다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고 자부한다"며 "저를 불러주는 방송에 출연하는 한편 전국 각지에서 시국강연을 하는 등 열심히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는 민주당 중심에서 역할보다는 '아웃복서'를 맡아 외곽에서 힘을 보태고 싶다는 게 박 전 원장의 설명이다. 하지만 정치인은 국민에게서 잊히는 순간 생명력을 잃는 법. 2024년 4월에 실시되는 총선 출마 여부를 물었다. 그는 손사래를 치면서도 가능성을 부인하진 않았다. "15개월 뒤를 어떻게 아나. 정치는 생물이다. 하나 분명한 것은 아직 현역 정치 무대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지금은 이 대표를 중심으로 민주당이 단합해야 할 때라고 진단했다. 박 전 원장은 문재인 정권과 이 대표를 겨냥한 검찰 수사에 대해 "문재인 전 대통령의 용공, 이 대표의 비리로 (엮어) 정적인 두 사람을 제거하려는 것"이라며 "당내 민주주의가 중요하지만, 지금은 단결해서 싸울 때다. 민주당은 탄압에 단결해서 투쟁을 잘하는 정당이다. 민주당은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이 대표를 중심으로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검찰의 명백한 '야당 탄합'이라고 했다. 박 전 원장은 쌍방울 전 비서실장이 지난 17일 법정에서 국내로 압송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과 이 대표가 가까운 관계였다는 진술을 거론한 뒤 "김 회장과 아주 잘 알고, 저도 잘 아는 세 분의 인사들로부터 '이 대표는 김 전 회장을 모른다. 한 번도 안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라면서 "검찰이 야당을 탄압하는 것"이라고 발끈했다. 세 명의 인사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실사구시' 유묵. 김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박 전 원장의 요청으로 붓을 들었고, 표구한 작품을 집으로 보내줬다고 한다. |
박 전 원장은 작심한 듯, 윤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그는 해당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김 여사에 대해 미온적으로 수사하고 있다. 우리나라 공권력이 선택적으로 적용되면 안 된다. 이 대표에 대해선 독하게, 김 여사에 대해서는 (수사를) 안 하는데,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주범들의 재판에서 담당 검사가 김 여사의 연루 정황을 공개하지 않았나. 왜 이걸 (수사) 안 하나"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DJ 최측근이었던 박 전 원장에게 '만약 김대중 전 대통령이 현재 민주당의 지도자였다면 어떻게 사법 리스크를 극복했을 것 같나'라고 물었다. 그는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이렇게 답했다.
"DJ였다면 '실사구시'(사실에 입각해 진리를 탐구)로 돌아가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우려 했을 것이다. 지금 민주당은 싸우기만 하려 한다. 장외투쟁이 길어지면 안 된다. 야당의 가장 강력한 투쟁 장소는 국회다. (정부·여당이) 잘하는 건 돕고, 못하는 건 막는 민주당이 돼야 한다. 동시에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DJ가 현재 민주당 지도자였다면, 한 손에는 검찰 리스크, 한 손엔 개혁과 혁신의 기치를 들었을 것이다."
<하>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