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최대 200만 원 지출…최강욱·유정주 등 비례대표도 숙소 거주
국회의원들은 정치자금으로 의정활동을 원활히 하기 위한 '숙소' 관련 비용을 지출할 수 있다. 다만 의정활동 수행을 위한 최소한 범위에서 지출해야 한다는 게 운용 원칙이다. /더팩트 DB |
정치자금은 정치활동에 없어선 안 될 토양이다. 동시에 정치 불신을 키우는 계기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정치인의 정치생명을 좌우하기도 한다. 최근 김승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정치자금으로 개인 차량을 구입한 사실이 드러나 낙마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약식기소했다. 정치자금의 대부분은 지지자들의 후원금, 선거보전비용으로 채워진다는 측면에서 '네돈내쓴(네 돈으로 내가 쓴다)'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국민의 의혹을 사는 일이 없도록, 공명정대하게, 정치활동을 위해서만 쓴다'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 21대 국회에서 이 조건은 잘 지켜지고 있을까. <더팩트>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확보한 2020년 후반기, 2021년 정치자금 수입·지출 내역을 집중분석했다. 나아가 공정한 정치자금 사용을 위한 개선 방향을 모색한 '네돈내쓴 정치자금' 기획 5편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박숙현·김정수 기자] 국회의원은 정치자금으로 주거지도 마련할 수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간한 '국회의원 후원회 정치자금 회계실무'에 따르면 '주된 의정활동 지역이 실제 생활근거지와 멀리 떨어지는 등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경우' 원활한 의정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정치자금으로 '의정활동용 숙소' 임차료 지출을 허용하고 있다. 다만 관련 비용은 '국회의원의 의정활동 수행을 위한 최소한 범위에서 지출해야 한다'라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더팩트>가 2020년 후반기부터 지난해까지 21대 국회의원 정치자금 지출 내역을 분석한 결과, 299명 국회의원 중 정치자금으로 의정활동용 숙소 비용(도시가스 등 별도 공과금, 부동산 중개수수료, 이사비용 제외)을 지출한 의원은 총 44명이었다. 국민의힘 의원이 18명, 더불어민주당 의원 23명, 강은미 정의당 의원, 무소속 박완주·윤미향 의원 등이다. 숙소 임대료와 관리비로 쓴 정치자금은 총 7억7610여만 원이었다.
특히 서울에 자택을 소유했지만, 의정 숙소를 마련한 이들도 4명 파악됐다.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재선, 대구 동구갑)은 영등포 여의도동에 있는 47.54㎡(약 14평) 규모의 오피스텔을 의정 숙소로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재산변동신고에 따르면 류 의원은 서울 강남구 도곡동 SK리더스뷰 오피스텔(94.95㎡, 약 29평)을 소유하고 있다. 이에 대해 류 의원실 관계자는 "(서울 자택은) 예전부터 갖고 있던 것이다. 20대 국회 당시 의원이 아니라서 서울에 있던 집에 전세를 주고 대구로 내려갔다. 이미 전세를 준 상태라 계약 기간이 남아 있는데 '빼달라'고 하기 그래서 부득이하게 국회 앞 숙소에 잠시 거주하는 것이다. 임대차 3법으로 (전세 계약) 2년을 더 연장해야 해서 계속 연장 상태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김희곤(초선, 부산 동래)·김용판(초선, 대구 달서병)·김병욱(초선, 경북 포항시남구울릉) 국민의힘 의원도 각각 강서구 화곡동, 성동구 옥수동, 인천 서구 청라동 등 수도권 지역에 본인 또는 배우자 명의의 아파트가 있지만 '서울 의정 숙소용'으로 월 70~100만 원대의 임대료를 정치자금으로 지출하고 있었다. 이들 의원실 관계자 역시 입을 모아 "(자택에는)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전세입자가 살고 있다"면서 불가피한 지출이라고 해명했다.
류성걸 의원은 서울에 자택이 있으나 여의도에 '의정 숙소'를 마련해 정치자금으로 임대료를 지출하고 있다. 류 의원을 포함해 서울 자택을 두고 의정 숙소를 마련한 의원은 4명이었다. '서울집은 세입자가 살고 있다'는 게 의원실의 공통된 설명이다. 지난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물가 및 민생안정 특별위원회 제6차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는 류 의원. /이선화 기자 |
의정 숙소에 가장 많은 정치자금을 지출한 의원은 강훈식 민주당 의원(재선, 충남 아산을)인 것으로 파악됐다. 강 의원은 서울 마포에 위치한 마포 트라팰리스 오피스텔을 의정용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는 신규 계약을 통해 넓은 곳(55.92㎡, 약 17평→73.72㎡, 약 22평)으로 옮겼다. 이에 따라 정치자금으로 지출하는 숙소 월세도 155만 원에서 200만 원으로 늘었다.
의원실 관계자는 "여의도도 알아보고 마포, 영등포 쪽도 알아봤는데 매물 찾기가 어려웠다. 또 이(국회) 앞은 너무 오픈돼 있지 않나. 선관위에 가능한지 문의하고 확인받았다"고 했다. 강 의원의 배우자는 김희경 MBN 매일방송 앵커로, 서울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자금 운용 기준에 따르면 의정활동 명목의 숙소를 가족과 함께 생활하거나 가족 등 제3자가 출퇴근 등의 목적으로 사용해선 안 된다. 이와 관련해 의원실 관계자는 "배우자는 충남에서 출퇴근한다. 서울역하고 아산역하고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21대 국회에서 '의정 숙소 임대료 및 관리비' 명목으로 정치자금을 가장 많이 지출한 의원은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선화 기자 |
세 번째로 많은 지출액을 기록한 송재호 민주당 의원(초선, 제주 제주갑) 측은 최근 신규 계약을 통해 임대료 관련 비용을 줄였다고 밝혔다. 송 의원은 21대 국회 개원 후부터 여의도 금호리첸시아 59.66㎡(약 18평)를 의정용 숙소로 이용하고, 관리비를 포함해 165만 원의 임대료를 정치자금으로 지출해왔다. 의원실 관계자는 "제주도분들이 여의도에서 숙소를 구하다 보니 가까운 데서 오피스텔을 알아보다가 그렇게 (과다 지출)된 것 같다"라며 "안 그래도 부담이 너무 커서 바꿔볼까 했는데 계약 기간 전에는 안 된다고 해서 6월에 (계약이) 끝났고, 이번에 월세 70만 원짜리로 옮기게 됐다. 정치자금에서 이만큼 나가면 저희도 손해"라고 설명했다.
44명 중 40명은 △광주 △전북 △전남 △충남 △울산 △대구 △ 부산 △경남 △경북 △제주 등 지역구를 둔 의원이다. 서울에 집이 있어 지역구에 의정활동용 숙소를 마련한 의원들은 민주당 김수흥(초선, 전북 익산갑)·김회재(초선, 전남 여수을) 의원과 국민의힘 이용호(재선, 전북 남원시임실순창군)·김희국(재선, 경북 군위의성청송영덕군)·윤영석(3선, 경남 양산갑)·추경호(재선, 대구 달성군) 의원 등 6명이다. 34명은 서울에 의정 숙소를 마련했다.
의정 숙소 다수가 국회의사당과 가까운 여의도 인근에 위치했지만 용산·마포 등도 교통이 편리해 의원들의 '숙소 성지'로 떠오르고 있었다. 한병도 민주당 의원(재선, 전북 익산을)은 월세 121만 원을 내고 용산 파크자이에 거주 중이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숙소를 구할 때) 애초에 KTX 타고 다니기 편한 곳을 봤다. 공덕도 가보고 영등포도 가보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용산역과 가까워서 택하게 됐다. 호남선을 타고 밤늦게 익산에서 올라오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라고 설명했다.
김승남 민주당 의원(재선, 전남 고흥보성장흥강진군)은 서울과 지역구인 고흥 두 곳에 의정 숙소를 마련해 각각 월 89만 원, 50만 원씩 임대료를 지출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 의정 숙소(73.78㎡, 약 22평)을 마련한 김윤덕 민주당 의원(재선, 전북 전주갑)은 월세 대신 2억7200만 원을 전세대출 받은 후 약 월 61만 원의 이자를 정치자금으로 내고 있다.
지역구가 없는 비례대표 의원 4명도 의정 숙소를 이용했거나,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정기재산변동 신고에 따르면 최강욱 민주당 의원(초선, 비례)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평창리에 단독주택을 소유하고 있지만, 서울 마포구에 의정 숙소를 마련했다. 임대료는 매월 165만 원씩 정치자금으로 지출되고 있다. 의원실 관계자는 "이동 거리가 두 시간 이상 걸려서 그런 이유 때문에 (의정 숙소를 마련한 것으로) 알고 있다. 마포가 여의도보다는 좀 더 저렴한 점 등을 고려했다"면서 지역구 활동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유정주 민주당 의원(초선, 비례) 역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고림동에 본인 소유 아파트가 있지만, 서울 종로구 사직동 광화문 풍림스페이스본(39.54㎡, 약 12평)에 의정 숙소를 마련했다. 관리비를 포함해 월 100만 원의 월세가 정치자금으로 지출된다. 의원실 관계자는 "경기도라고 하면 가까워 보이는데, 의원 아파트가 굉장히 떨어져 있다. 교통편이 안 좋아서 (국회까지) 한 시간 반씩이나 걸린다. 새벽에 가는 것도 오래 걸리고 해서 이쪽으로 옮기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광화문 일대를 숙소지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선 "원래 광화문 쪽에 회사가 있었고 (의정 숙소에서 여의도까지) 20분 정도밖에 안 걸린다. 여의도는 너무 운신의 폭이 좁다"고 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초선, 비례)도 자료분석 대상 기간 월 50만 원씩 총 900만 원을 서울 의정 숙소 임대료로 지출했다. 강 의원은 광주 서구 금호동에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에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윤미향 무소속 의원(초선, 비례)도 지난해 1, 2월 두 달에 걸쳐 영등포구 소재의 한 호텔을 임시 숙소로 이용했다. 정치자금으로 지출한 임대료는 월 70만 원으로 총 140만 원이었다. 이에 대해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해 초 각종 간담회와 토론회 등 의정 업무가 집중돼 임시 숙소를 이용했다면서 이 기간 한정애 환경노동부 장관 인사청문회 및 당정청 업무보고, 故 김복동 할머니 2주기 행사 등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수도권에 자택이 없는 지역구 의원 등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비례대표나 수도권에 주택을 소유한 의원들의 의정 숙소비 지출은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삼수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정책실장은 "의원회관에 목욕탕도 있는 등 의원실이 잘 돼 있고, 교통도 좋은데 (의정 숙소가) 정말 필요한 건지 유권자 입장에선 의문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유권자들은 지금 물가도 생계도 어려우니, 민생 법안에 집중하고 정책 연구에 정치자금을 더 쓰기를 원하면서 후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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