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돈내쓴 정치자금②] '수억 원대' 소송비용에 법률 자문도...
입력: 2022.08.15 00:00 / 수정: 2022.08.15 10:21

"견제 장치 미비...예외 조항 만들어 법안에 반영해야"

자신의 송사비용을 정치자금으로 충당한 21대 국회의원은 모두 28명이다.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이 쓰였다. 의정활동과 관련된 변호사 비용 지출은 적법하지만, 국회의원 개인의 책임 소명을 정치자금으로 때우는 게 적절한지에 대해선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 뉴시스
자신의 송사비용을 정치자금으로 충당한 21대 국회의원은 모두 28명이다.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이 쓰였다. 의정활동과 관련된 변호사 비용 지출은 적법하지만, 국회의원 개인의 책임 소명을 정치자금으로 때우는 게 적절한지에 대해선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 뉴시스

정치자금은 정치활동에 없어선 안 될 토양이다. 동시에 정치 불신을 키우는 계기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정치인의 정치생명을 좌우하기도 한다. 최근 김승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정치자금으로 개인 차량을 구입한 사실이 드러나 낙마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약식기소했다. 정치자금의 대부분은 지지자들의 후원금, 선거보전비용으로 채워진다는 측면에서 '네돈내쓴(네 돈으로 내가 쓴다)'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국민의 의혹을 사는 일이 없도록, 공명정대하게, 정치활동을 위해서만 쓴다'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 21대 국회에서 이 조건은 잘 지켜지고 있을까. <더팩트>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확보한 2020년 후반기, 2021년 정치자금 수입·지출 내역을 집중분석했다. 나아가 공정한 정치자금 사용을 위한 개선 방향을 모색한 '네돈내쓴 정치자금' 기획 5편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박숙현·김정수 기자] 자신의 송사비용을 정치자금으로 충당한 21대 국회의원은 모두 28명으로 확인됐다.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이 쓰였다. 정치활동 일환으로 문제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의정활동과 관련된 변호사 비용 지출은 적법하다. 다만 국회의원 개인의 책임 소명을 정치자금으로 지출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해선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유무죄 따라 달라지는 '정치자금 사용법'...고무줄 잣대 여전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초선, 전북 김제시부안군)은 지난해 11월 변호사 보수금 등을 이유로 정치자금에서 1억9380만 원을 꺼내 썼다. 이 의원이 2억 원에 가까운 변호사 비용을 정치자금에서 지출한 이유는 뭘까.

이 의원은 21대 총선을 앞둔 지난 2019년 12월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기소됐다. 해당 사건은 1, 2심을 거쳐 대법원으로 넘어갔고, 대법원은 지난해 9월 이 의원에게 면소 판결을 내렸다.

이 의원 측 관계자는 최종 무죄를 받은 만큼 후원금 등 정치자금으로 그동안의 재판비용을 대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일까.

중앙선관위가 발간한 '정치자금 회계실무'를 살펴보면 공직선거법과 관련한 변호사 선임비용은 해당 의원의 무죄 확정 판결 시 '정치활동을 위해 소요되는 경비'로 해석된다. 즉, 이 의원이 자신의 직위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사용한 1억9380만 원은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변호사 보수금 등을 이유로 정치자금에서 1억9380만 원을 썼다. /국회사진취재단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변호사 보수금 등을 이유로 정치자금에서 1억9380만 원을 썼다. /국회사진취재단

김성주 민주당 의원(재선, 전북 전주병)은 21대 총선 과정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했다. 김 의원은 변호사 비용을 처리하기 위해 8800만 원을 썼다. 이명수 국민의힘 의원(4선, 충남 아산갑) 역시 비슷한 기간 선거법 위반 혐의에 따른 변호사 비용 2200만 원을 지출했다. 두 의원은 최종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이들 역시 규정상 문제가 없다.

무죄가 아닌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어떨까. 이규민 전 민주당 의원은 지난 2020년 9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2월과 8월 변호사 선임비용으로 모두 5500만 원을 지출했다. 이 전 의원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2심에 이어 지난해 9월 대법원에서 당선무효형을 확정받았다.

이 전 의원은 무죄가 아닌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만큼 관련 비용을 모두 반납해야 한다. 중앙선관위는 유죄 확정 판결 시 형의 경중을 불문하고 관련 비용을 '사적 경비 또는 부정한 용도'로 해석한다.

◆모호한 기준...개인 의혹 방어 위한 법률 자문까지 정치자금으로

법률 비용을 지출한 의원들은 정치활동과 의정활동의 일환이라는 선관위 해석을 받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선관위는 '정치자금으로 지출할 수 있는 사례'에 △의정·입법활동과 관련한 경비 △의정·입법활동에 직접 소요되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경비 등을 적시했다.

의정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사안'이라면 정치자금으로 쓸 수 있다는 의미다. 애매한 기준과 느슨한 경계 탓에 정치자금이 의원들의 송사와 법률 자문 등에 사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재선, 경남 창원시마산회원구)은 2020년 변호사 비용으로 2500만 원을 사용했다. 윤 의원 측은 "패스트트랙 고소·고발 사건과 공직선거법 등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민병덕 민주당 의원(초선, 경기 안양시동안갑)은 2020년 12월 변호사 선임비 5720만 원을 사용했다. 민 의원 측은 공직선거법과 관련해 선관위의 허가를 받고 지출했다고 전했다.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2020년 패스트트랙 고소·고발 사건과 공직선거법 등을 이유로 변호사 비용 2500만 원을 사용했다. /남윤호 기자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2020년 패스트트랙 고소·고발 사건과 공직선거법 등을 이유로 변호사 비용 2500만 원을 사용했다. /남윤호 기자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3선, 경남 양산갑)은 법률사무소 상담에 정치자금 787만 원을 사용했다. 윤 의원 측은 21대 총선 TV토론회 당시 상대 측에서 허위사실로 고발해 법률사무소 등 3곳에서 자문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한병도 민주당 의원(재선, 전북 익산을)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해 2020년 변호사 선임비용 5500만 원을 지출했다.

의혹 방어를 위해 정치자금으로 법률 자문 비용을 지출한 경우도 있었다. 김수흥 민주당 의원(초선, 전북 익산갑)은 법률 자문 명목으로 정치자금에서 2000만 원을 썼다. 김 의원 측은 지난해 국민권익위에서 김 의원의 농지법 위반에 대한 재조사를 경찰에 요구했고, 관련 의혹을 소명하기 위해 법률 자문을 구했다고 해명했다.

◆온전한 의정활동 보장해야...정치자금 '순기능' 주장도

일각에서는 송사를 의원 개인의 명예회복이라기보다 온전한 의정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맥락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국회의원들의 정상적인 의정활동은 곧 유권자들의 권리 증진으로 이어지는 만큼 송사비용을 정치자금으로 충분히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실제로 허위사실 등 오해로 인해 소송까지 갔던 의원들이 있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초선, 대구 북구을)은 지난해 9월 변호사 비용으로 정치자금 220만 원을 지출했다. 김 의원 측은 확률형 게임 이슈가 발생했을 당시 특정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허위사실이 온라인에 게재돼 이를 바로 잡기 위해 대응했다고 해명했다.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초선, 경북 안동시예천군)은 지난해 3, 9, 11월에 변호사 수임료 등으로 979만3100원을 썼다. 김 의원 측은 언론의 허위보도에 대해 정정보도 청구를 했고 1, 2심을 거쳐 승소했다고 전했다. 신현영 민주당 의원(초선, 비례)도 2020년 9월과 지난해 12월 소송비용으로 990만465원을 냈다. 신 의원 측은 언론의 가짜뉴스에 대응하기 위해 소송을 진행됐고, 승소했다고 설명했다.

◆선관위 유권해석? '전가의 보도' 아냐...견제장치 필요

국회의원의 정치자금을 이용한 송사비용 처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의원 측에서는 선관위의 유권해석을 받았다고 설명하지만, 전문가들은 규정이 애매한 만큼 예외 조항 등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규정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걸리지 말아야 될 일들로 인해 재판까지 가게 된 것이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비용을 정치자금으로 사용하는 건 정치자금 취지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견제할 수 있는 규정 자체가 미비한 건 사실"이라며 "예를 들어 특정하게, 명백히 공직선거법 위반 행위를 모르고 했을 리 없다는 사안이 판명되면 정치자금을 사용하면 안 되는 식으로 예외 조항을 만들어서 법안에 반영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선관위에서 유권 해석했다 하더라도 국회의원이 국민 정서를 살피는 국민의 대표라면 정치자금으로 소송비용을 처리하는 건 삼가야 한다고 본다"라며 "선관위에서 법 개정 요구를 하는 노력이 수반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변호사 비용까지 정치자금으로 지출하는 건 소위 '오버'하는 것"이라며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소송을 정치활동의 연장이라고 주장하지만, 따지고 보면 정치인들의 활동 중에 정치활동이 아닌 건 없다. 관련 규정이 애매하다 보니 자의적으로 정치자금 사용법을 해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소송비용에 대한 정치자금 사용의 과도한 규제는 오히려 정치 문턱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학과 교수는 "정치인은 다양한 송사에 휘말리는 식으로 공격받는 경우가 있는데 정치자금 사용이 막힐 경우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특히 군소정당, 젊은 청년 정치인, 사회적 약자 등이 그렇다. 소송비용까지 문제 삼는다면 오히려 돈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정치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변호사 선임 등 법률비용' 지출 총액 상위 10인 외에 의원별 법률 관련 비용 지출 내역이다. <더팩트>는 의원실에 전화와 문자 메시지 등을 통해 답변을 요청했으나 듣지 못했다.

△김병기 민주당 의원(재선, 서울 동작갑) 798만3500원(답변 없음, 변호사 수임료)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초선, 비례) 550만 원(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아들 특혜 의혹 소송 관련 변호사 수임료) △이재정 민주당 의원(재선, 경기 안양시동안을) 550만 원(공직선거법 관련 소송비용) △전혜숙 민주당 의원(3선, 서울 광진갑) 550만 원(공직선거법 관련 소송비용)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3선, 경남 진주갑) 466만 원(답변 없음, 의정활동 및 언론중재위원회 관련)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초선, 강원 홍천횡성영월평창군) 385만 원(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관련 헌법소원심판청구) △강병원 민주당 의원(재선, 서울 은평을) 330만 원(선거법 위반 관련 법률자문) △김승원 민주당 의원(초선, 경기 수원갑) 330만 원(언론중재위원회 관련 변호사 비용) △허영 민주당 의원(초선, 강원 춘천철원화천양구갑) 220만 원(공직선거법 관련 소송비용) △김원이 민주당 의원(초선, 전남 목포) 220만 원(정정보도 관련 소송비용) △고영인 민주당 의원(초선, 경기 안산시단원갑) 200만 원(공직선거법 관련) △김용민 민주당 의원(초선, 경기 남양주병) 110만 원(답변 없음)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초선, 서울 송파을) 41만5700원(답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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