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지 미래한국당 당선인은 지난 22일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장애인들의 직접·비밀투표가 보장될 수 있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안내견 '조이'와 함께 소통과 교류, 융합을 테마로한 작품 '컨버전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 당선인./국회=남윤호 기자 |
"잘 살펴보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6월 8일 지방선거 사전투표 후 장애인들을 만나 참정권 행사의 문제점 등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선거 때마다 불편을 호소한 장애인들은 대통령의 발언에 기대했다. 그리고 약 2년이 흘렀다. 무엇이 바뀌었을까. 지난 4월 15일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치러졌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고 장애인들은 토로한다. 헌법 제24조에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선거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다. 이대로는 2년 뒤 열리는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장애인 참정권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팩트>는 7개 장애인 단체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문가, 21대 총선 장애인 당선인 3명의 인터뷰를 통해 장애인 참정권 실태를 직접 듣고, 2022년 대선 전 개선 방향을 모색한 [TF기획-머나먼 장애인 참정권]을 총 5회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주>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미래한국당 21대 총선 당선인 인터뷰
[더팩트ㅣ국회=허주열 기자] "누구나 들을 수 있고, 누구나 계단을 오를 수 있으며, 누구나 복잡한 공약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장애인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헌법에서 보장하는 선거권을 부여받았고, 당연히 이를 행사할 권리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감이 아닌 배려로만 보장되고 있는 장애인 참정권은 아직 반쪽입니다."
21대 총선에서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된 김예지(39) 당선인은 지난 10일 사전투표를 마치고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논평을 냈다. 시각장애인인 김 당선인은 사전투표를 한 투표소에 점자형 투표보조용구(이하 보조용구)가 없어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투표를 마쳤다.
선거일 전 중앙선관위는 전체 투표소에 시각장애인 수만큼 보조용구를 비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권자가 별도의 부재자 신고 없이 전국 어디서나 투표할 수 있는 사전투표 특성상 모든 사전투표소에 보조용구를 비치하지는 못했다.
김 당선인의 지난 선거 참여도 이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거 때마다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된 장애인 참정권 문제를 이번에도 어김없이 직접 체험한 것이다.
김예지 당선인이 지난 22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가운데 안내견 '조이'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
김 당선인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 문화예술인으로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강연과 인식 개선 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이나 권리 보장 요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것에 한계를 느끼다, 한선교 전 미래한국당 대표의 제안을 받고 한국당 1호 인재로 영입됐다. 장애 당사자로 실효성 있는 정책을 직접 만들기 위해서다.
지난 22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김 당선인을 만났다. 눈과 같은 역할을 하는 안내견 '조이'와 함께 김 당선인이 등장하자, 인근에 있던 국회 관계자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고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조이의 국회 본회의장 출입 여부가 화제가 되면서 언론의 관심도가 높았던 만큼 공식 임기를 시작하지도 않았지만, 웬만한 중진 의원보다 인기(?)가 있었다. 21대 국회 비례대표 초선 당선인 중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존재감을 보이고 있는 김 당선인에게 장애인 참정권 문제와 해법을 물었다.
"21대 총선 사전투표에서 경험한 어려움은 사실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때도 동일한 경험을 하고 문제를 제기했지만, 이번 총선에서도 변화가 별로 없어 참 안타까웠습니다."
김 당선인이 지적한 문제는 보조용구 부재에 그치지 않았다. 보조용구가 배치된 곳도 시각장애인의 투표를 어렵게 하는 요소들이 있어서다. 그는 "보조용구에 투표용지가 고정되지 않아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 아무리 똑바로 투표용지에 보조용구를 올려놓는다고 해도 자칫하면 빗나가기 십상"이라며 "게다가 이번 총선에선 (비례정당 난립으로) 정당투표용지가 48.1㎝에 달했고, 정당별 간격이 0.2㎝에 불과해 제대로 찍는 게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어 김 당선인은 "저는 어머님의 도움으로 투표를 했지만, 가족과 함께 투표소를 방문하지 못한 시각장애인은 코로나19 사태로 비닐장갑을 끼고 점자를 읽어야 하는 어려움까지 있었다"라며 "시각장애인에게 이번 총선은 이중고, 삼중고였다. 이미 선거가 끝났지만, 얼마나 많은 사표가 나왔을지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현실에서 기본권인 직접·비밀투표는 시각장애인에게 꿈과 같은 이야기다. 그는 "시각장애인과 신체장애인은 가족이나 지명한 2인을 투표를 보조하게 할 수 있다"면서도 "직접·비밀선거가 보장될 수 있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 당선인은 지난 22일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장애인의 직접·비밀투표를 위한 방안으로 미국에서 시행 중인 '전자투표'를 거론했다. 다만 그는 "당사자들의 의견을 경청한 뒤 함께 대안을 찾아 입법화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남윤호 기자 |
김 당선인은 개선책으로 미국에서 시행 중인 '전자투표'를 거론했다.
그는 "해킹·오류 등의 위험성이 있다고 하는데, 이런 부분을 보완해서 그것을 원하는 장애인뿐 아니라 비장애인도 전자투표를 할 수 있게 하면 좋을 것 같다"며 "온라인, 모바일, ARS 등 여러 방법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장애인이 직접·비밀투표를 할 수 있는 여러 옵션을 고민하고, 당사자들과 같이 이야기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해당 방안은 김 당선인과 장애인 단체에서 오래 전부터 해온 이야기다. 하지만 개선되지 않은 채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김 당선인은 "장애인 참정권 개선책들을 어떻게 현실에 반영할지는 제가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지만, 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김 당선인은 "공감의 부재가 한 요인이고, 선관위에서 선거 전 (장애인들의) 의견을 반영할 때 특정집단의 얘기만 듣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저도 예전부터 문제를 제기해왔지만 의견반영이 안 됐는데, 어떤 분들의 의견이 반영되는지 그것이 알고 싶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어 그는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 다양한 단체가 있는데 해당 단체 대표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일반적인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더 많이 모으는 게 중요할 것 같다"며 "다양한 장애유형의 유권자들을 모아서 장애인들이 직접·비밀투표할 방안을 함께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당선인은 "2022년 차기 대선·지방선거 전에 그런 시도를 하면서 시행착오를 거쳐 입법화할 부분은 입법화하겠다"며 "여러 유형의 장애인과 국민의 목소리를 잘 듣고 아우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겠다. 필요한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주시면 좋겠고, 그러기 위해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 김예지 미래한국당 당선인은 누구? 선천성 망막 색소 변성증으로 시각장애를 갖고 태어났지만, 일반 전형으로 숙명여대 피아노 전공 학사와 음악교육 전공 석사를 거쳐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과 위스콘신 매디슨대학에서 피아노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유니온 앙상블 예술감독,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이사,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운영위원, 바이애슬론 선수, 피아니스트로 활약하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후보 11번으로 공천을 받아 21대 국회 입성을 앞두고 있다.
sense83@tf.co.kr
[관련기사]
▶[TF기획-머나먼 장애인 참정권①] 지켜지지 못한 '권리', 헌법과 법률은 '신기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