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더불어민주당 21대 총선 영입인재 1호로 정치계에 입문한 최혜영 더불어시민당 당선인은 21일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장애인들은 선거 정보를 획득하는 과정부터, 실제 투표할 때, 투표 뒤 개표방송 등 마지막까지 배려받지 못했다"고 현실의 어려운 사정을 설명하고 있다./남윤호 기자 |
"잘 살펴보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6월 8일 지방선거 사전투표 후 장애인들을 만나 참정권 행사의 문제점 등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선거 때마다 불편을 호소한 장애인들은 대통령의 발언에 기대했다. 그리고 약 2년이 흘렀다. 무엇이 바뀌었을까. 지난 4월 15일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치러졌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고 장애인들은 토로한다. 헌법 제24조에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선거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다. 이대로는 2년 뒤 열리는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장애인 참정권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팩트>는 7개 장애인 단체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문가, 21대 총선 장애인 당선인 3명의 인터뷰를 통해 장애인 참정권 실태를 직접 듣고, 2022년 대선 전 개선 방향을 모색한 [TF기획-머나먼 장애인 참정권]을 총 5회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주>
무용수 출신 척수장애 더불어시민당 21대 총선 당선인 인터뷰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테이블도 너무 높아 찍기 힘들었다. 이런 것들이 비장애인들 높이에 맞춰져 있었다. 아직도 장애인에 대한 배려나 편의시설이 장애 유형별로 지원되지 않고 있다."
최혜영(42) 더불어시민당 당선인 앞에는 '더불어민주당 21대 총선 인재영입 1호'란 타이틀이 붙어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장애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먼저 붙는다.
무용수였던 그는 15년 전 교통사고로 척수장애를 얻었다. 토슈즈 대신 휠체어로 걷게 됐다. 하지만 이에 좌절하지 않고 사회복지행정학 교수, 한국장애인식개선교육센터 센터장으로 활동하며 오히려 사회적 행동 반경을 넓혀왔다. 그러던 중 유치원 3법 통과를 촉구하는 여당 의원의 울부짖음을 보고 "장애인 정책을 만드는데 기여한다면 장애인들이 권리를 잘 보장받을 수 있겠다"라고 마음을 다지며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최 당선인은 21대 국회 초선 장애인 의원 3명 가운데 유일한 여당 소속이다. 180석을 확보한 슈퍼여당인 만큼 그의 추진력에 따라 장애계의 묵은 과제들도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특히 이번 총선에선 코로나19 등 투표 환경이 바뀌어 어느 때보다 장애인들의 참정권 행사가 어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 당선인은 이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더팩트>는 총선이 끝나고 엿새 후인 지난 21일 국회 소통관에서 그를 만났다. 자신의 휠체어를 밀어주는 예비 비서도 함께였다. 인터뷰 내내 조심스러웠지만, 오히려 최 당선인은 말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장애인 참정권 확대 방안, 향후 의정활동 등에 대해 물었다.
코로나19로 한층 복잡해진 절차에서도 장애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는 보이지 않았다. /남윤호 기자 |
최 당선인도 이번 투표 현장에서 유독 불편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사전투표를 했다. 투표소에서 비닐장갑을 받았는데 제가 손이 불편해서 장갑 끼기가 힘들다. 구멍 한 곳에 손가락 두 개가 들어가고 그랬다. 어쩔 수 없이 착용하고 기표대에 들어갔는데 투표용지 칸이 너무 작아서 혹시나 실수할까봐 엄청 조마조마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남편인 휠체어 럭비 국가대표 선수 정낙현 씨도 계단 10개 높이의 경사로탓에 보조인 3명의 도움으로 투표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투표소에 배치된 안내원들은 선거 때만 임시근무하는 탓에 장애인 관련 정보나 배려가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다. 최 당선인은 "투표 안내원분들은 (장애인들을) 도와주려 하지만, 휠체어에 대해 잘 모르니 당사자가 설명을 해야 한다. 잘 모르면 (휠체어를 작동할 때) 다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본인과 같은 신체장애인 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 발달장애인 등 여러 유형의 장애인들이 공통적으로 투표 과정에서 불편함을 겪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 당선인은 "이런 불편함은 저만 느끼는 건 아닐 것"이라며 "시각장애인 분들은 점자로 된 투표용지가 없어서 길고 조그만 칸에 어떻게 투표하실까 생각했다. 발달장애인 분들의 경우엔 (후보가) 누가 누군지 잘 모르기도 한다"고 안타까워 했다.
최 당선인은 시각장애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투표용지, 선거공보물을 제작할 수 있도록 장애인 단체 등과 협력하고 소통하겠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남윤호 기자 |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점도 장애인들 참정권이 훼손되는 문제라고 꼽았다. 최 당선인은 "선거 공보물을 배포할 때도 어려운 용어로 적혀 있어서 발달장애인이 봤을 때 이해 안 되는 부분도 많을 것"이라며 "이런 불편함 때문에 실제로 투표를 포기하는 분들도 많다. 이번에 투표하러 갔을 때 줄이 너무 길었다. 장애인분들은 면역력이 떨어지는 분들이 많다. 코로나에 예민한데 고심해서 투표장에 나와도 1시간씩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포기하는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후보 경선 과정에서도 장애인은 마음에 드는 후보를 밀어주기 쉽지 않다. 최 당선인은 "우리 당에선 비례대표 경선이 있었는데 후보 투표를 할 때 ARS로 한다. 이런 경우 청각장애인들은 어떻게 하나. 아예 (경선 과정에서 투표 행사가) 배제 당하는 것"이라고 했다.
개표 방송 등 선거 결과를 제공받을 때도 장애인 유권자에 대한 배려는 부족하다. 그는 "개표를 발표하는 날도 마찬가지였다. 지상파에선 수화 통역을 어디에서도 하지 않았다"라며 "(투표의) 시작부터 끝까지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완벽하게 돼 있지 않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현행 공직선거법에는 장애인 선거권 관련 △선거권행사의 보장(제6조), △부재자신고(제38조), △선거사무관계자의 선임(제62조), △선거공보(제65조), △장애인생활시설안의 기표소(제149조) 등이 규정돼 있다. 하지만 강제조항이 아닌 권고 수준이다. 더구나 65조 5항 점자형 선거공보물 제공 조항에서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대상이 아니다. 또, 시각장애인들이 받아보는 선거 정보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선거 때마다 제기돼 왔다.
최 당선인 역시 장애인 참정권 보장 문제 지적이 되풀이 되는 이유로 편의제공 의무조항 부재를 들었다. 그는 "의무조항들을 만들면 좋겠다. 장애인 테이블을 만들어준다든가, 시각장애인의 경우엔 점자 투표용지를, 발달장애인 분들에게는 예를 들어 얼굴이나 사진으로 돼 있는 투표용지가 있다면 그들이 얼굴로 (후보를) 기억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인 '소소한 소통'이 쉬운 책자 만들기 등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같이 협력해 만들면 좋을 것 같다"며 웃었다.
최 당선인은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장애인 관련 공약에 참정권 확대 부분이 빠져 있는 부분은 아쉬웠다고 밝혔다. /남윤호 기자 |
21대 총선 장애인 관련 공약에서 민주당은 소득보장이나 활동 지원, 노동권, 주거권 보장 추진 등을 내놓았다. 하지만 참정권 확대 부분은 빠졌다. 이에 대해 최 당선인은 "워낙 많은 영역에 정책들이 있다 보니 빠져 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총선을 치르면서) 꼭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당에서는 못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울러 장애인 참정권 확대를 적극 추진하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최 당선인은 "세심한 배려가 덜 되다 보니 자신이 가진 권리임에도 참정권을 포기하는 분들도 있다. 장애인 당선인들이 같이 참정 권리를 보장해줄 수 있는 법안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라며 "이번 21대 국회에는 저 혼자 들어간 게 아니라 다른 (장애인 당선인) 분들도 같이 들어가니 좋다. 그분들과 함께 한다면 법안 만드는 건 문제없을 것 같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전체 국회의원 대비 장애인 의원 비율이 턱없이 부족한 점은 장애 관련 입법 추진이 지지부진한 근본 문제로 꼽힌다. 이에 대해 최 당선인은 "사실 청년이나 여성 관련 법안을 꼭 당사자들만 추진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영역은 당사자만 알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 장애인분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비장애인 분들보단 크기 때문에 국회의 문이 장애인 의원들에게도 많이 열렸으면 좋겠다. (장애인 국회의원 비율이) 전체의 1%는 말이 안 된다"라고 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특히 발달장애인에 대한 투표 보조 지원을 허가하는 내용의 지침이 빠지면서 논란이 됐다. 일각에선 발달장애인 투표 보조 지원시 부정선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시각도 존재한다. 이에 대해 최 당선인은 "그렇다고 해서 투표를 못하게 할 순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발달장애인이 더 쉽게 (후보 정보를) 접할 수 있고, 본인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데 발달장애인이 본인 의사에 맞게 투표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지도 않고 '다른 사람이 대리로 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부터 한다. 계단을 만들어놓고 왜 투표하러 안 오느냐는 식이다. 방법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부정선거 우려의 시선 역시 편견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한국장애인식개선교육센터에서 10년째 센터장으로 일해온 경력과 경험에서 나온 진단이다. 센터장으로 활동할 당시 법안 현실화에 수차례 좌절을 겪은 최 당선인은 차별을 시정하고 제도로 보완하는 일은 결국 국회가 입법으로 마무리해야 한다는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는 센터장 시절 직장에서 1년에 한 번씩 의무적으로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을 하도록 하는 시행령 개정을 주도하기도 했다.
최 당선인은 21대 국회에서 자신의 비서 보좌진들을 장애인들로 채용할 예정이다. 이들과 함께 국회 내 불편한 부분을 개선하는 일부터 시작하겠다고 했다. /남윤호 기자 |
그래서인지 21대 국회에서 가장 먼저 손보고 싶은 법안으로 장애 인식 개선 관련법을 말했다. 그는 발의하고 싶은 1호 법안에 대해 "1호, 2호를 제 마음대로 정할 순 없다. 장애계에서도 시급성이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제가 하고 싶은 건 있다. '장애인 권리보장법' 개정안"이라며 "현재는 장애인을 시혜적 관점, 즉 불쌍한 동정의 대상으로 보고 프로그램이나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장애인도 또 다른 능력이 있고, 그들만의 삶이 있고, 동등한 존재인데 법이 그렇지 않다. 이를 개정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최 당선인은 '국회부터 바꾸자'주의다. 국회에서 장애인들의 불편함을 찾아 차별없이 다니게 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할 수 있는 국회를 만들고자 한다.
비장애인이 포착하지 못한 불편함이 국회 곳곳에 존재한다고 했다. 그는 "총선 출구조사 발표 때 본청 대회의실에 갔는데 의자에 제 이름이 붙어 있었다. 거기에 앉으라는 거였다. 하지만 저는 못 옮겨 앉아서 통로 쪽에 앉았다. 그때 느꼈던 게 영화관에 가면 휠체어석이 있는 것처럼 의자 하나만 빼서 비워놓으면 좋겠다 싶었다. 또, 본청에 있는 경사로가 너무 가팔라 혼자 못 올라간다. '혼자 오신 분들은 어떻게 하지? 누가 도와주지' 하고 생각했다. 국회를 다니다 보면 부딪혀서 앞으로 떨어질 정도의 높은 턱들도 많다. 이런 부분들을 다 바꿔야 하지 않나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비서 등 같이 일할 분들을 장애인들로 채용할 예정이다. 그분들과 같이 이런 문제점을 찾아서 국회를 다 돌아다닐 예정이다. 또, 장애인 의무고용률도 국회가 잘 지키고 있는지 조사해보려 한다. 국회부터 바꾸자는 거다. 국회에서 의무 고용을 지키면 더 좋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최 당선자가 21일 국회 소통관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마친 뒤 소통과 교류, 융합을 테마로한 전시물 '컨버전스' 옆에서 생각에 잠긴 모습. /남윤호 기자 |
최 당선인은 '장애인'이면서 '여성'이기도 하다. 그는 여성 장애인의 임신, 출산, 육아에 도움이 되고, 여성 장애인도 엄마가 되고 싶은 권리를 빼앗기지 않는 법안 발의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그는 민주당에서 영입 제안을 받았을 때도 엄마가 되려는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되려고 결심한 순간부터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을 때까지 절망의 연속이었다. 장애 여성을 위한 산부인과 진료대, 휠체어 한 대 들어가기도 좁은 초음파 검사실, 높낮이가 조절되지 않는 엑스레이로 벽에 부딪혔다.
그는 "임신출산육아는 기본이고 병원에서 검진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시설이 잘 돼 있는 곳을 찾아 가야 한다. 제가 경험을 했으니 아는 것들이다. 이런 문제들을 다루고 싶다"고 했다.
일각에선 장애인 국회의원에 대해 당이 구색 맞추기로 영입했다가 당 이미지만 바꾸고 당사자들은 존재감 없이 잊혀진다는 부정적인 시선이 있다. 정치인으로서의 출발선에 섰을 뿐이지만 주변에선 벌써부터 걱정하는 소리가 나온다. 향후 의정활동을 묻자 최 당선인의 입에선 "영입 제안을 받았던 때로 돌아간다면 '절대 안 합니다'라고 할 것 같다"라는 말이 나왔다. 농담 반 진담 반이었다. 그는 "사실 막막하죠. 다 처음이니까"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하지만 이내 씩씩하게 말했다. 최 당선인은 "제 책임감은 장애계 관련 된 일을 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법안들을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니 개원하면 먼저 단체들, 장애인 당사자부터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이 원하는 부분을 같이 조율하고, 소통해 해결 방안을 만들어내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함께 들어온 민주당 영입인재들이 든든한 친구, 동반자가 돼줄 거라고 믿었다. 최 당선인은 "그게 참 좋다. 나 혼자가 아니구나 하는 것이. 우리 당 영입인재들은 평범한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권위적이지도 않다. (이분들과의 협력을 통해) 정치가 좀 바뀌지 않을까 싶다"고 기대했다.
☞ 최혜영 더불어시민당 당선인은 누구? 신라대 무용학과에 재학 중이던 2003년 빗길 교통사고로 사지마비 척수장애 판정을 받았다. 5년 간의 재활훈련 끝에 제 힘으로 휠체어에 앉을 수 있게 됐다. 이후 사회복지학을 전공해 2017년 국내 척수장애인 최초로 재활학 박사학위를 받고 강동대 사회복지행정과 교수를 역임했다. 10년간 한국장애인식개선교육센터를 이끌고, 2018년 '모든 사업장에서 1년 1회 이상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 의무화' 내용을 담은 장애인고용법 시행령 개정을 주도했다. 2019년 12월 더불어민주당 21대총선 '인재영입 1호'로 정치에 입문해 21대 총선에서 더불어시민당 소속으로 비례대표 11번으로 당선됐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