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기획-훈민정음 상주본 미스터리③] '소장자' 배익기 "진상규명되면 세상에 나온다"
입력: 2019.09.19 05:00 / 수정: 2019.09.19 05:00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장자인 배익기 씨는 지난달 7일 경북 상주시 낙동면에 자리한 그의 작업실에서 가진 더팩트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상주본을 내놓는 대가로 1000억 원을 요구했다는 것은 와전된 것이라고 주장했다./경북 상주=이철영 기자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장자인 배익기 씨는 지난달 7일 경북 상주시 낙동면에 자리한 그의 작업실에서 가진 더팩트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상주본을 내놓는 대가로 1000억 원을 요구했다는 것은 와전된 것"이라고 주장했다./경북 상주=이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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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하 상주본)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11년. 상주본은 공개 직후 복잡한 사건들이 얽히고설키며, 소장자인 배익기(56) 씨만 아는 곳에 감춰졌다. 상주본은 과거 문화재청 감정평가에서 '1조 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은 국보급 고서다. 지난 7월 대법원은 상주본 소유권이 문화재청에 있다고 최종 판단했다. 그러나 배 씨는 여전히 상주본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더팩트>는 오는 10월 9일 한글창제 573돌 한글날을 앞두고 상주본 사태 11년간의 기록과 의문점을 파헤치고, 꼬일 대로 꼬인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을 모색해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소유권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 준비 중"

[더팩트ㅣ경북 상주=허주열 기자] "문화재청에서 정직하게 문화재 지정 절차를 밟았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진상규명이 이뤄지면 상주본은 자연스럽게 세상으로 나올 것이다. 제 마음대로 좌지우지 않고, 공론에 따를 것이다. 공론이 배익기의 것으로 보존해야 한다면 그렇게 가고, 어느 정도 배·보상을 할 테니 국가에 귀속시키는 게 좋다고 한다면 그렇게 따를 것이다."

지난 8월 7일과 23일 경북 상주시 낙동면에서 <더팩트>와 두 차례 만난 배익기 씨는 이같이 강조했다. 배 씨는 지난 2012년 12월 사망한 조용훈 씨 와의 3년에 걸친 상주본 소유권 분쟁에서 패한 뒤 국가를 상대로 7년째 싸우고 있다. 2012년 5월 조 씨의 '실물 없는 상주본 문화재청 기증'으로 법적 소유권이 문화재청으로 넘어갔지만, 아직까지 상주본의 위치를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훔치지 않았는데 내 것이 아니라니…"
이 과정에서 세간에는 배 씨가 "상주본을 내놓는 조건으로 1000억 원을 요구한다"며 과욕을 부리는 '문화재 절도범'으로 알려져 있다. 과연 그럴까. 그와 관련된 형사재판 기록과 결과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 한다. 배 씨는 상주본을 훔친 혐의(문화재보호법 위반)에 대한 1심 재판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지만, 2·3심에서 "조 씨 측 증인들의 배 씨가 훔쳤다는 진술은 모두 믿을 수 없고, 검사가 제출한 다른 증거들은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받았다.

배 씨는 상주본 사태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는 것은 문화재청의 흉계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철영 기자
배 씨는 상주본 사태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는 것은 "문화재청의 흉계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철영 기자

그러나 최근 민사재판에선 상주본의 소유가 문화재청에 있다는 취지의 판결이 또 나왔다. 이를 납득할 수 없는 배 씨는 상주본 소유자는 본인인데, 문화재청이 탈취를 위해 흉계를 꾸민 것이 현재의 상주본 사태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배 씨는 상주본 발견과 공개 당시의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2008년 7월 27일 오전 7시 19분에 문화재청 누리집 게시판에 상주본의 문화재 지정을 문의했으나 답이 없었다. 다음 날에는 상주시청 문화체육과에도 상주본 한 장을 갖고 찾아가 국보 지정에 관한 등록 절차를 물었는데, 하루 뒤 '진본인지도 모르고'라는 엉뚱한 답이 돌아와 안동MBC에 제보했다"고 말했다.

결국, 상주본은 2008년 7월 30일 MBC보도로 그 존재가 공개됐다. 배 씨에 따르면 공개 이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거듭 벌어졌다. 배 씨는 "방송 이후 골동품상 조 씨 측에서 전화가 와서 상주본을 팔라고 해서 안 팔았는데, 8월 11일 진정서 형식으로 '제가 훔쳐간 것'이라고 1차 무고를 했다"며 "그런데 도난 날짜가 7월 28일 이후 오후 4시쯤이라고 했다. 그 전날 제가 문화재청에 상주본 지정을 문의해 앞뒤가 맞지 않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나중에는 7월 26일에 제가 조 씨의 골동품점을 방문해 상주본을 훔쳤다고 말을 바꿨는데, 저는 이날 이미 강모 변호사를 만나 상주본의 국보지정에 관한 법률 상담을 했었다"며 "제가 훔쳤다고 주장한 조 씨의 거짓말이 드러나자 경찰은 내사종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조 씨는 두 달 뒤 재차 저를 고소하는 한편 소유권과 관련한 민사소송(물품인도 청구소송)도 제기했다. 2차 무고에서도 증거가 없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형사에 밀려 뒤늦게 2010년 2월부터 시작된 민사소송에서 재판부는 상주본 소유자를 조 씨로 판결했다. 해당 판결은 2011년 5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조 씨는 상주본 출처에 대해 여러 차례 말을 바꿨는데,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고서'라는 주장을 민사재판부가 받아들인 것이다.

◆"무고로 억울한 옥살이까지…모든 것은 문화재청 기획"

배 씨는 "최초 조 씨가 제기한 진정과 고소에서 두 차례에 걸쳐 무혐의가 나왔고, 민사판결 이후 진행된 형사재판에서 1심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1년간 수감생활도 했지만, 2·3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며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이후 정부와 싸우다보니 제 입장이 언론에도 거의 실리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경북 상주시 낙동면에 위치한 배 씨 작업실 전경. /이철영 기자
경북 상주시 낙동면에 위치한 배 씨 작업실 전경. /이철영 기자

특히 배 씨는 조 씨가 갑자기 상주본 소유권을 주장한 것은 당시 강모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장의 '기획'이라고 주장했다. 배 씨는 "온갖 수를 다 동원해 상주본을 뺏으려 했고, 급기야 실물도 없는 것을 기증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러나 배 씨의 주장에 대해 문화재청과 조 씨의 부인 이모 씨는 "배 씨의 주장은 말도 안 된다"라며 "자발적으로 기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 씨는 지난 7월 11일 대법원이 문화재청의 상주본 강제회수를 막아달라는 배 씨의 청구이의 소를 기각한 것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그는 "제 입장에선 명백한 소송사기"라며 "민사재판 뒤에 나온 형사재판과 배치돼 문화재청의 강제집행을 막아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는데 기각됐다. (문화재청을 상대로) 소유권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추가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2015년 3월 발생한 화재 흔적이 남아 있는 경북 상주시의 배 씨 자택 모습. 배 씨는 이 화재로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일부가 불에 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철영 기자
2015년 3월 발생한 화재 흔적이 남아 있는 경북 상주시의 배 씨 자택 모습. 배 씨는 이 화재로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일부가 불에 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철영 기자

배 씨는 "민·형사 판단이 다를 이유가 없다고 본다. 애초에 두 차례 제가 무혐의가 나왔을때 조 씨를 무고로 사법적 처분을 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며 "저를 개인이라고 얕보고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사건으로 범죄자로 몰았는데, 사법당국이 범죄자를 잡는 곳이지만 나쁜 마음을 먹으면 나쁜 짓도 더 잘할 수 있고, 그렇게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돈은 우선순위 아냐…무뢰배들 횡포 밝혀야"
1000억 원을 요구한다는 주장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그는 "문화재청에서 과거 1조 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감정평가를 한 게 있어 원론적으로 10분의1은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던 것"이라며 "돈은 우선순위가 아니고, 진상규명이 되면 그런 부분은 자연적으로 해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사회정의의 차원에서 (문화재청과 위증자들 등) 무뢰배들 횡포를 밝혀야 한다"며 "진실이 밝혀지면 1000억 원은 안 받아도 된다. 제가 죽을 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진상규명만 되면 제가 살 돈은 만들 수 있다. 진상규명만 되면 상주본의 공개·보존과 배·보상은 민의를 고려해 따르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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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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