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기획-훈민정음 상주본 미스터리①] 잘못 끼운 첫 단추, 실종된 '문화재'
입력: 2019.09.17 05:00 / 수정: 2019.09.17 10:53
2015년 3월 배익기(우측 상단) 씨 자택에서 발생한 화재로 일부가 불에 탄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배 씨 제공, 상주=이철영 기자
2015년 3월 배익기(우측 상단) 씨 자택에서 발생한 화재로 일부가 불에 탄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배 씨 제공, 상주=이철영 기자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하 상주본)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11년. 상주본은 공개 직후 복잡한 사건들이 얽히고설키며, 소장자인 배익기(56) 씨만 아는 곳에 감춰졌다. 상주본은 과거 문화재청 감정평가에서 '1조 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은 국보급 고서다. 지난 7월 대법원은 상주본 소유권이 문화재청에 있다고 최종 판단했다. 그러나 배 씨는 여전히 상주본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더팩트>는 오는 10월 9일 한글창제 573돌 한글날을 앞두고 상주본 사태 11년간의 기록과 의문점을 파헤치고, 꼬일 대로 꼬인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을 모색해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좌초된 문화재 지정 시도…판 커진 소유권 분쟁

[더팩트ㅣ경북 상주=허주열 기자] 와이셔츠를 입을 때 첫 단추를 잘 못 끼우면 그 아래도 줄줄이 잘 못 끼워져 이상한 모양새가 된다. 바로 잡는 유일한 방법은 단추를 모두 풀어 처음부터 제대로 다시 맞춰 나가는 것이다. 11년째 풀리지 않는 상주본 사태의 첫 단추는 제대로 끼워진 것일까. <더팩트> 취재는 그 의문점에서부터 출발했다.

상주본은 지난 2008년 7월 30일 안동MBC 보도로 세간에 존재가 알려졌다. 이전까지 한글 창제 목적과 글자의 원리 등을 담은 해설서는 1943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국보 70호 안동본(간송본)이 유일했던 터라 이목이 집중됐다. 특히 상주본은 간송본 발견 당시보다 보존 상태가 더 좋았고, 후대 학자의 주석이 달려 가치가 더 높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소장자인 배 씨가 상주본 공개시기를 전후해 묘한 일을 겪게 되며 행방이 묘연해졌다.

◆발견 초기 문화재 지정 문의 했는데…

경북 상주에서 고서적 수집을 하던 배 씨는 집수리를 위해 짐을 정리하던 중 상주본을 발견하고, 2008년 7월 27일 문화재청 누리집에 문화재 지정을 받고자 한다며, 그 존재를 알렸다.

또, 다음 날(28일)에는 상주시청 문화체육과에도 상주본 존재를 알리며, 문화재 지정 절차를 문의했다. 하지만 29일 문화체육과 담당자가 "진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식의 엉뚱한 답을 하자, 배 씨는 언론에 제보했다. 30일 MBC 취재진과 함께 상주본 실물을 살펴본 유일한 전문가인 임노직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장은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책 표지 및 상태, 오침법으로 묶여진 상태 등을 보고 조선시대 때 제작된 진본임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보급 고서가 문화재청과 상주시청의 아쉬운 대응으로 발견 초기 문화재 지정을 못 받게 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관계자는 "문화재 지정은 발견자나 소유자가 각 지방자치단체 문화재 담당과에 지정 신청을 하면 해당 지자체에서 판단해 문화재청에 보고를 올리고, 이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정 여부를 결정한다"며 "상주본은 이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지만, MBC 보도 이후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문화재 전문위원이 배 씨를 찾아갔고, 배 씨가 상주본을 보여주지 않아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배 씨는 "보도 이후인 8월 7일 뒤늦게 문화재청에서 찾아와서 상주본을 보여줬는데,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자로 크기만 재고 돌아갔다"고 상반된 주장을 내놨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이후에도 묘한 일은 계속 벌어진다.

배 씨에 따르면 상주본 보도가 나간 이후 고 조용훈(훗날 민사재판부가 인정한 상주본 원 주인) 씨 등 인근 골동품상들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 3억, 10억 원 등을 거론하며 상주본을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배 씨가 응하지 않자, 조 씨는 태도를 바꿔 8월 5일부터 배 씨에게 "상주본은 내가 갖고 있던 것을 배 씨가 훔쳐간 것"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며칠 뒤인 8월 11일 조 씨는 "배 씨가 상주본을 훔쳤다"고 상주경찰서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상주본 소유권을 둘러싼 기나긴 법적 분쟁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조 씨의 오락가락한 진술에 경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조 씨는 같은 해 10월 24일 배 씨를 문화재 절도 혐의로 재차 고소하는 한편 물품인도 청구소송도 제기했다.

이듬해 5월 증거불충분으로 두 번째 무혐의 처분을 받은 배 씨는 2010년 2월 시작된 민사소송에서 패소한다. 2011년 5월 대법원은 '상주본 소유자는 조 씨'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배 씨는 상주본 위치를 밝히지 않았고, 문화재청은 2011년 8월 배 씨의 자택 등 3개소를 압수수색해 회수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당시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체포돼 구속 기소된 배 씨는 2012년 2월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배 씨를 체포 직후 검찰은 형량 구형을 위해 상주본의 가치에 대한 평가를 문화재청에 의뢰했고, 문화재청은 "무가지보지만, 굳이 가격을 매긴다면 1조 원 이상"이라고 답했다. '상주본이 1조 원 가치다'는 평가가 나오게 된 근거가 여기에 있다.

◆기나긴 소유권 분쟁 속 실종된 상주본

그러나 배 씨는 구속까지 된 상황에서도 상주본이 어디 있는지를 밝히지 않았다. 민사소송에 이기고도 상주본을 돌려받지 못한 조 씨는 2012년 5월 실물도 없이 문화재청에 (상주본을) 기증하겠다고 밝힌 뒤 같은 해 12월 폐암으로 사망했다.

같은 해 9월 형사 2심에서 배 씨는 무죄를 선고 받았고, 2014년 5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민·형사가 다른 판단이 나온 것이다. 이 가운데 문화재청은 조 씨의 기증을 근거로 상주본 소유권을 주장했고, 2017년 4월 배 씨는 문화재청을 상대로 청구 이의 소를 제기했다.

2019년 7월 11일 대법원은 배 씨의 청구를 기각하며, 상주본을 둘러싼 법정 분쟁은 문화재청 소유로 최종 확정됐다. 하지만 배 씨는 문화재청을 상대로 상주본 소유권 무효 확인 소송을 준비하며, 반격을 준비 중이다.

배 씨는 "진상규명이 되지 않는다면 상주본을 내놓을 수 없다"며 "애초에 조 씨 측을 무고로 처벌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저를 개인이라 얕보고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사건으로 모함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문화재청 관계자는 "배 씨가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 것"이라며 "사법부에서 조 씨 소유라고 판단했고, 조 씨는 자발적으로 문화재청에 기부해 소유권이 문화재청에 있는데, 배 씨가 내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일단은 배 씨를 설득하고 있는데, 안 되면 강제집행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가치가 너무 뛰어나기 때문에 안전한 회수가 시급한데, 10여 년 간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계속 끌려 다닐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강제집행을 한다고 해도 상주본을 찾지 못하면 의미가 없기 때문에 문화재청도 실효성을 감안해 강제집행 여부를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민사 1차례, 형사 2차례 등 총 3차례 압수수색을 하고도 찾지 못한 상황에서 또 다시 압수수색을 한다고 찾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배 씨는 문화재법 위반으로 1년간 수감생활을 했을 당시에도 상주본 보관 위치를 밝히지 않았다. 재차 그를 구속한다고 해도 입을 열 것이라 장담하기 어렵다. 결국 11년째 상주본은 배 씨만 아는 곳에서 잠자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②>편에서 계속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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