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 전체 300개 의석 중 청년 의원 몫은 10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금배지를 딴 청년 당선자도, 실패한 도전자들도 '청년 정치의 장벽이 존재한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임영무 기자 |
결국 '청년팔이'였나. 20대 총선에서도 '청년 마케팅'은 홍수를 이뤘다. 당마다 갖은 공약을 쏟아냈고, 기득권 정당은 청년 후보를 앞다퉈 내세웠다. 하지만 청년들은 말한다. "진짜 청년 정치는 없다"고 말이다. 실제 20대 총선에서 2030유권자는 1500만 명으로 전체(4210만 명)의 35.7%를 차지했으나, 당선자 중 20대 국회의원은 단 한 명도 없고, 30대에서 3명만 국회에 입성했다. 2030세대를 대변할 청년 정치인은 사실상 없다. 청년들이 '헬조선(열정페이, 취업난, 삼포세대로 대변되는 청년층이 한국을 자조적으로 일컫는 말)'의 원인으로 '헬정치'를 지목하는 이유다. 그래도 희망은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더팩트>는 '헬로? 청년정치'를 기획해 청년 정치의 현주소와 '내일'을 들여다 본다.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청년 정치의 장벽 ▲청년 공약 길거리 투표 ▲ 20대 청년 정당대표 도전기 ▲ 2030 '깨톡' 토론 ▲ 전문가에 듣는다 주제로 싣는다. <편집자 주>
[더팩트 | 이철영·오경희·신진환·서민지 기자] 역대 최저치다. 20대 국회 전체 300개 의석 중 청년 의원 몫은 10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정당별로 20여 명의 청년 후보가 도전했지만, 새누리당 신보라(33) 당선자와 더불어민주당 김해영(39·부산 연제구) 당선자, 국민의당 김수민(30) 당선자 세 명만 오는 6월 국회에 입성한다.
김해영 더민주 당선자를 제외한 두 명은 청년 몫 비례대표다. 20~30대 국회의원 의석은 50대 이상 의원들로 채워졌다. 20대 국회 평균 연령은 55.5세로, 역대 최고령 국회다. 금배지를 딴 청년 당선자도, 실패한 도전자들도 여전히 '청년 정치의 장벽이 존재한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역대 국회에서 첫 20대 의원 당선자는 1954년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만 25세 나이로 경남 거제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7대와 13대 국회에서 20대 청년 비례의원이 각 한 명씩 배출됐지만 지역구는 전무하다. 7대 총선부터 최연소 의원은 모두 30대였다. 최근 기준 30대 국회의원은 2004년 17대 총선 때 23명에서 18대 7명, 19대 9명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대한민국 국회의 청년 의원 비율은 19대를 기준으로 OECD 회원국 26개국 중 꼴찌다. 청년 의원 비중이 1위인 노르웨이는 국회의원 10명 중 한 명은 20대, 10명 중 4명 가까이가 45세 미만이다.
◆ 청년 의원도 '스펙이 필요해'
20대 국회 평균 연령은 55.5세로, 역대 최고령 국회다. 30대 청년 당선자 3명 중 2명은 청년 비례대표다./그래픽=이윤희 디자이너 |
청년들도 스스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 그러나 정치 입성 과정에서도 '스펙'이 필요하다. 청년 관련 단체활동을 하거나 기성(기득권 정당) 정치권의 인연이 당락을 좌우한다.
여야 3당 당선자 세 명의 이력을 보면, 신보라 당선자는 보수 청년단체인 '청년이여는미래' 대표를 맡았고, '공천관리위원 지인 논란'이 불거졌다. 김해영 당선자는 변호사 출신으로 대선 당시 문재인 전 대표의 부산 홍보위원회에서 일했다. 김수민 당선자는 벤처기업을 이끌었고, 전직 비례대표 의원을 지낸 여권 인사의 딸로 밝혀지면서 '금수저 논란'에 휩싸였다.
반면 이번 총선에선 '1% 금수저 정치를 끝내겠다'며 '흙수저당' 청년 후보들이 대거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했다. 이들 중엔 16년간 '알바'를 전전하거나, 학자금대출을 받아 겨우 졸업했는데 취직이 되지 않아 고민하는 등 척박한 '현실'을 살고 있는 후보들이 청년을 대변하겠다고 나섰지만 결과는 같다. 최연소이자 고졸 출신 우민지(25) 부산 사하갑 무소속 후보 역시 고배를 마셨다.
청년들이 모여 만든 '흙수저당'의 손솔(21) 대표는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 한흥빌딩 당사에서 <더팩트>와 만나 "청년이 정치에 진입하기 너무 어렵다"면서 "청년이 자조적이고 무기력해서가 아니라 정치제도가 그렇게 조장하고 있다"고 꼬집었다.(손솔 대표 인터뷰는 기획 3회 '20대 청년, 정당 대표 도전기'에서 별도로 다룬다)
청년들이 모여 만든 '흙수저당'의 손솔 대표는 지난 1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 한흥빌딩 당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청년이 자조적이고 무기력해서가 아니라 정치제도가 청년 정치 진입을 가로막고 있다"고 꼬집었다./이덕인 기자 |
물론 '스펙'이 전부는 아니다. 비례가 아닌 '지역구'에 도전할 경우 돈과 조직, 경험 등 기성정치 요인이 작용한다. 19대 총선 때 27세의 나이로 새누리당 전략공천을 받은 손수조(31) 전 부산 사상구 후보는 20대 총선 때도 여성 추천 몫으로 공천을 받았지만 낙선했다. 지역구 청년후보로 새누리당 공천을 받은 이준석(31) 전 서울 노원병 후보 역시 본선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와 맞붙었으나 졌다.
손수조 전 후보는 지난 9일 <더팩트>와 서면 인터뷰에서 "이 사회에 정치는 '꽃'이라 생각하고 가장 중요한 영역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 대한민국에서 정치의 꽃은 제대로 피지 못했고, 정치 선진화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었다"면서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는 돈과 조직으로 기득권 세력만이 장악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지금도 돈, 조직 부분이 여성과 청년들에게 애로사항이지만, 언젠가 일반사람, 서민들도 진입할 수 있는 영역이 정치권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청년 비례제도, 'YES or NO'
20대 총선에서 당선한 여야 3당 청년 후보인 새누리당 신보라 당선자,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당선자, 국민의당 김수민 당선자(왼쪽부터)./신보라·김해영 페이스북·숙명여대 브로슈어 |
정치에 도전한 당선자와 후보들은 "청년문제, 청년만 해결하나?"란 질문에서 먼저 머뭇거렸다고 했다. 청년들의 선거 참여를 유도하자는 취지로 19대 총선에서 첫 도입한 '청년 비례'제도가 정치권에서 후한 평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청년 유권자들 상당수도 냉소적인 시각을 보냈다.
신보라 당선자는 지난달 29일 <더팩트>와 전화 인터뷰에서 '국회 입성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을 묻자 "19대 때 30대 국회의원들이 비례(9명)로 들어오게 됐는데 평가들이 좋진 않았잖아요. 청년 비례대표들이 청년과 관련된 실천을 했느냐 회의감이 많이 있어서…. 청년문제를 청년 당사자만이 해결할 수 있느냐 주변 시선들 있었고, 청년은 흥미 떨어진 소재가 아니냐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털어놨다.
실제 19대 청년 의원들의 '청년 법안' 발의 실적은 저조하거나, 발의한 법안 마저도 대다수 계류 중이거나 폐기됐다. 청년 의원들이 대표 발의한 청년 법안 18개 중 이재영(새누리당, 비례, 36세 당선) 의원이 발의한 청년 창업자 우대 법안 하나만 정부 법안과 묶여 지난해 2월 공포됐다. 청년 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한다고 해도 기성 정치인이 움직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신 당선자는 비례가 아닌 지역구에서 당선한 더민주 김해영 당선자 사례를 거론하며 "비례가 아닌 지역구에서 청년 의원이 당선됐다는 점에서 진정성이 있다고 느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지역구 청년후보의 경우 본선에서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현역의원 등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국회 입성을 장담하기 힘들다.
20대 총선에서 비례가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손수조(오른쪽) 부산 사상구 전 후보와 이준석 서울 노원병 전 후보는 낙선했다. 이 전 후보는 "청년 의원들이 정치 입문부터 상당한 정치적 부채를 지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으며, 손 전 후보는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는 돈과 조직으로 기득권 세력만이 정치를 장악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더팩트DB |
김 당선자는 지난 5일 <더팩트>와 서면 인터뷰에서 "저는 정치신인이었고, 상대는 재선 의원에 현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인물이었다. 정당 지지도, 후보 개인 인지도, 조직, 자금 등 모두 절대 열세였다"면서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러 불리한 조건들이 결과에 대한 부담감 없이 정치신인으로서 소신을 가지고 전력질주 할 수 있는 계기도 됐다"고 자평했다.
이 전 후보는 비례대표제와 청년 공천제의 허점을 비판했다. 그는 10일 <더팩트>와 서면 인터뷰에서 "18대와 19대 국회에 청년 정치인들은 완전한 자력으로 국회에 진출했다기 보다 청년 비례대표 제도 또는 강세 지역구 공천 등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배려를 받으면서 진입했다. 따라서 정치 입문부터 상당한 정치적 부채를 지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정치적 부채', 이 부분이 청년 정치인들이 기성 정치인들의 입김에 자유로울 수 없는 대목이다.
◆ "청년 문제, 계층 투쟁 벗어나야"
청년 정치인들은 이번 총선을 "청년이 있고, 또한 청년이 없는 선거였다"면서 청년 정치를 지원 육성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2015 외국인주민취업박람회 전경./이새롬 기자 |
"이번 총선에서는 청년이 있고, 또한 청년이 없는 선거였다. 소위 헬조선, 흙수저, 청년실업률 12.5%로 상징되는 청년세대의 좌절감과 2030세대의 높은 투표율로 야당이 승리 할 수 있는 선거였으나, 막상 청년의 목소리를 담은 정책과 후보군들은 부족한 게 현실이었다."
김 당선자는 이번 총선을 이같이 평가했다. 그는 청년 정치가 취약한 이유로 "이들을 배려·지원·육성하는 시스템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 당선자는 "공허한 공약보다는 실질적으로 청년층의 의견이 반영된 청년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며 "대학생 등록금 문제부터 일자리, 보금자리, 결혼, 출산에 이르기까지 청년층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현안들을 정부차원에서 청년문제 대책 마스터플랜을 세워야한다. 또한 청년문제에서만큼은 여야, 당리당략을 떠나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등원하자마자 청년기본법을 발의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신 당선자는 "각당이 청년을 대표할 수 있는 의원들이 한 명 밖에 없다는 것이 아쉽다. 서로의 의지를 형성하는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고,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조만간 꼭 연락을 드릴 것이고, 청년 당선자 모임을 구축해서 힘을 모으는 시간이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전 후보는 "청년이 스스로 청년문제를 계층 투쟁의 이슈로 만들거나 선악의 구도 등으로 치환해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사진은 공무원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더팩트 DB |
'정치 토크쇼'인 JTBC '썰전' 고정패널로 활동하기도 했던 이 전 후보는 "청년이 스스로 청년문제를 계층 투쟁의 이슈로 만들거나 선악의 구도 등으로 치환해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 정치권이 제시하는 청년문제의 해법들은 본질적으로 '고통분담' 또는 '해열제' 등의 성격을 띈 정책이 많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은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그 정당성과 추동력이 확보되는 것"이라면서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형태의 청년정책은 경제활성화와 산업구조 재편을 기본으로 한다. 경제활성화를 통한 일자리의 양적 성장과 산업구조 재편으로 인한 질적 개선이 합쳐져야 양질의 일자리에 대한 청년들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