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TODAY가 만난 사람] 추미애가 사랑한 남자는?…'앨범' 엿보기
입력: 2014.09.26 12:06 / 수정: 2014.09.26 14:28
새정치민주연합 추미애 의원은 자신도 바위처럼 살았다고 말했다. 추 의원이 24일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국회=문병희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추미애 의원은 자신도 바위처럼 살았다고 말했다. 추 의원이 24일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국회=문병희 기자

[더팩트 ㅣ 국회=오경희 기자] 바다 한 가운데 바위 하나가 서 있다. 오랜 세월 깎이고 깎인 바위는 파도에 맞서 늘 같은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추미애(55·4선·서울 광진구을) 의원은 자신도 바위처럼 살았다고 말했다.

"정치도 파도를 버티는 바위처럼 부딪히고 깨지며 때론 살을 도려내고. 바위가 지켜주지 않으면 육지가 허물어지듯, 어떤 가치를 지키기 위해선 아픔을 겪어야겠죠."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집무실에서 만난 추 의원은 자신의 '인생 앨범' 속 몇 장면을 펼쳐놨다(저서 '물러서지 않는 진심' 참조). (▶[관련기사][P-TODAY 직격 토크] 추미애 "지금의 야당, 답도 길도 없다" )

추 의원은 1960년대 대구 세탁소집 둘째 딸로 태어나 홀로 외가에서 자랐다./추미애 의원실 제공
추 의원은 1960년대 대구 세탁소집 둘째 딸로 태어나 홀로 외가에서 자랐다./추미애 의원실 제공

1960년대 대구 세탁소집 둘째 딸은 부모님 곁을 떠나 홀로 외가에서 자랐다. 어느 날 세탁소에 도둑이 들었고, 부모님은 손님들의 옷값을 전부 물어주느라 빈털터리가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언니가 갑자기 눈병을 얻어 치료를 해야 했고 막내 남동생까지 태어났어요. 버거워진 살림으로 부모님은 둘째 딸이었던 저를 외가집으로 보내기로 결정하셨고, 당시 겨우 세 살이었던 저는 부모님의 곁을 떠나야 했어요."

학창시절 모범생이었던 그는 교실을 박차고 나왔다. 촌지를 유난히 밝히는 선생님을 흉본 한 친구가 선생님에게 따귀를 사정없이 맞았고, 그 때 자신이라도 선생님이 잘못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책가방에 책을 넣고 그 즉시 교실을 나왔다.

학창시절 추 의원이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시간. /추미애 의원실 제공
학창시절 추 의원이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시간. /추미애 의원실 제공

이 때문이었을까. 고등학교 졸업 후 "후회없는 삶을 살겠다"며 법대에 진학했다. 정의감에 불탔던 시절, 생애 첫 사랑도 뜨거웠다.

"대학교에 입학한 후, 고시공부를 위해 해인사에 들어간 적이 있어요. 며칠 내내 내린 눈으로 인적이 없던 어느 날, 편지 한 통이 배달됐어요. 같은 대학 동기동창이었던 서성환이라는 학생이 보낸 것이었어요. 그저 동양화 묵선 사이 여백의 운치가 좋다는 내용이었지요. 그런데도 저는 편지를 읽고 나서, 책에 집중 할 수 없었어요. 그의 깊은 눈매가 떠올랐기 때문이었죠. 한양대학교에서 집까지 10킬로미터를 걸어가면서 공중전화가 나타날 때마다 그에게 전화를 거는 날들이 이어졌어요. 덕분에 당장 눈앞에 두고 있던 사법시험에서 보기 좋게 낙방을 했습니다."

추 의원은 남편인 서성환 변호사와 7년의 열애 끝에 결혼했다./추미애 의원실 제공
추 의원은 남편인 서성환 변호사와 7년의 열애 끝에 결혼했다./추미애 의원실 제공

이후 1982년 2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3년 뒤 남편인 서성환 변호사와 7년의 열애 끝에 결혼했다. 결혼을 앞두고 집안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제 남편이 원래는 같이 법학을 공부하는 클래스 메이트인데,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한다고 할까? 돋보이는 스타일이었어요. 영남 집안에서 호남 사위를 보는 일은 당시만 해도 흔치 않은 일이었죠. 하지만 부모님도 결국 서성환이라는 사람의 진솔함에 (결혼을) 허락하셨어요. 그때는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결혼했던 것 같아요. 생활과 현실은 다르다는 걸 몰랐으니까(웃음)."

10년 간 판사로 재직하던 추 의원은 법의 양심을 심어 보겠다며 고 김대중(왼쪽) 전 대통령의 권유로 1995년 정치에 입문했다./추미애 의원실 제공
10년 간 판사로 재직하던 추 의원은 "법의 양심을 심어 보겠다"며 고 김대중(왼쪽) 전 대통령의 권유로 1995년 정치에 입문했다./추미애 의원실 제공

10년 간 판사로 재직하던 그는 "법의 양심을 심어 보겠다"며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1995년 정치에 입문했다. 당시 야당 총재였던 김 전 대통령은 추 의원에게 "호남 사람인 제가 대구 며느리를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격려했다.

"제가 정치에 처음 입문하자 '세탁소집 둘째 딸이 부정부패한 정치판을 세탁하러 왔다'고들 했어요. 영국병을 고치고 영국을 다시 일으켜 세운 영국 최초의 여성총리 대처가 구멍가게 둘째 딸이라는 점이 저와 흡사한 까닭이었죠. 저는 그런 비유를 대처처럼 국가에 공헌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2004년 4월 5일 오후 광주에서 3일째 삼보일배를 하고 있는 추 의원/추미애 의원실 제공
2004년 4월 5일 오후 광주에서 3일째 삼보일배를 하고 있는 추 의원/추미애 의원실 제공

이후 추 의원은 새정치국민회의 서울 광진을 지구당위원장, 김대중 대통령 후보 잔다르크 유세단장, 김대중 총재 비서실장,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등을 지냈다. 탄핵 역풍이 몰아친 17대 총선에서 고배를 마셨으나 15~16, 18·19대 4선 의원으로서 정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당안팎으로 파도가 계속 치고 있습니다. 물러서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결코 포기를 하지 않는다는 각오가 있는 것이기에. 저의 물러서지 않는 진심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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