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추미애 의원이 24일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지금의 야당은 답도, 길도 없다"며 위기에 놓인 당에 대한 답답한 심경을 털어놓고 있다. |
[더팩트 ㅣ 국회=오경희 기자] "하…. 모르겠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추미애(55·4선·서울 광진구을) 의원은 깊은 한숨을 내뱉는다. 민심의 바다 위에 떠 있어야 할 야당은 방향키를 잃었고, 자칫 가라앉을 위기에 놓였다. 투사적 기질이 강해 잔다르크에 비겨 '추다르크'로 불리는 추 의원도 고개를 내젓는다. 그의 얼굴엔 답답함이 묻어났다.
새정치연합은 2012년 총선과 대선, 올해 6·4지방선거 및 7·30 재보선에 이르기까지 주요 선거에서 잇따라 패배한 데 이어 최근 세월호법 대처 및 비대위원장 선임 등을 둘러싸고 심한 내홍을 겪었으며 지지층도 이탈했다.
추 의원은 야당의 현 상황을 '장독'에 비유했다. "우리 어머니들을 보면 된장을 담그기 위해 장독에 온갖 재료를 신경써서 넣고, 정성과 시간을 쏟아 발효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떤 때는 막상 장독 뚜껑을 여니 잘 안됐습니다. 구더기도 보이고…. 지금 민주당(새정치연합)의 상황이 그렇습니다. '전통'이라고 우려먹고 있는데, 희생과 헌신 없이 개인의 정치(계파) 욕심만 부리면서 '독이 잘못됐다'고 하고 있습니다."
야당의 위기엔 해묵은 계파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 이른바 '친노(친노무현)-비노(비노무현)'계파 갈등의 뿌리는 2003년 민주당-열린우리당 분당사태다. 이후 2007년 재통합에 이르기까지 최전선에 있던 사람이 추 의원이다. 그는 당시 유명했던 '용광로 통합론'을 내세웠다. (▶[관련기사][P-TODAY가 만난 사람] 추미애가 사랑한 남자는?…'앨범' 엿보기)
추 의원에게 물었다. '추다르크'는 언제 칼을 뽑을 것이냐고. <더팩트>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집무실에서 그를 만나 길 잃은 야당의 미래와 정치 행보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 "정치 18년, '책임지는 정치'를 하고 싶었다"
정치 입문 18년 째, "책임지는 정치를 하고 싶었다"는 추 의원. |
-지난 1년 동안 전국투어를 했다. 무엇을 느끼고 고민했나.
"정치를 한 지 18년이 흘렀다. 대구 영남 출신으로 호남에 지역 기반을 둔 민주당을 선택해 정치를 하면서 '정치는 이래야 된다'는 것을 보이고 싶었다. 출세하기 위해 정치를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때론 몸을 던지고, 넘어지고, 코피도 터지고, 마음 고생도 하고. 진짜 정치는 옳다는 확신이 있다면 희생을 강요할 수 있고, 당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아야 하는 진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책임지지 않는 정치, 정치를 출세의 도구 정도로 아는 것 등을 일깨우고 싶었다. 그래서 전국투어를 시작했다.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순간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자꾸 인물을 외부에서 꿔다 쓰는 거다. 정치는 국민을 위해 헌신하고 책임지는 자리지, 제3자의 얼굴을 내세워 뒤에 숨고, 발을 빼는 식의 자세는 안된다."
-'외부 인물을 영입해 책임지지 않는 정치를 한다'는 언급은, 최근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를 비대위원장에 영입하려다 곤혹을 치른 박영선 원내대표를 염두에 둔 것인가.
"박영선 원내대표는 원내대표로서 세월호를 협상한 주체니까 그만한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고. 외부인사 영입도 본인이 끌고 갈 수 있는 주변에서 동의를 했냐 안했냐지만 인간적인 면과 정치적 권한의 책임을 묻는 문제는 별개다. 박 원내대표는 후배 정치인이고, 원내대표까지 되서 오히려 저는 격려해주고 잘했으면 좋겠다."
추 의원이 "새정치연합은 선거 이후 게임의 룰에만 집착해 여당에 끌려다니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
-2003년 민주당-열린우리당 분당사태 때 최전선에 있었다. 당시를 떠올리면 물건이 날아오고, 편가르기를 할 정도로 갈등이 심했다고. 현 새정치연합의 갈등도 심한 것 같은데.
"그때의 갈등과 지금은 좀 다르다. 이전의 야당은 한국 정치를 주도해왔고, 구체제 혁파가 시대적 요구였으며 과제였다. 노무현 정권 탄생의 힘이자 원동력이었다. 문제는 탄생 후 약속을 먼저 실천해야 하는데 내부 투쟁에 몰두했던 거다. 호남이냐, 영남이냐. 영남표를 더 얻기 위해 호남을 때려야 한다? 그때의 분당사태는 구체제 타파에 힘을 모으지 않고 내부에서 쪼개는 정치를 하는 것에 대한 지적과 반기였다.
지금의 상황은 세월호라는 문제를 집권 세력과 청와대가 풀어야 할 숙제인데, 선거 후 게임의 룰에만 집착해 여당에 끌려다니는 것이다. 당장 세월호 문제에 몰두하면 될 일을, 다음 선거 후 '우리는 루저다, 게임에서 진 패배자다'란 평가에 지레 겁먹으면서 개인적인 성과주의의 희생물이 되고 있다. 세월호 문제를 풀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해 놓고, 비대위원장 영입 논란으로 이슈를 분산해 혼란을 자초했으니. "
◆ "계파갈등, 이 정도면…간 보는 야당이 돼선 안돼"
"간 보는 야당이 돼선 안된다"고 꼬집는 추 의원. |
-갈등의 구조는 다르지만 결국 당내 '분열'이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새정치연합은 최근 내홍을 봉합하기 위해 새 비대위를 꾸렸지만 '계파 갈등'의 불씨는 여전하다.
"갈등 정도가 아니라 이 정도면, 남들이 문제라고 지적하면 그 문제를 고치기 위한 노력을 보이고 반성해야 기회를 주는 것인데 '그게 문제다' 하니까 '문제 맞아요'하고 커밍아웃하는 그런 상황까지 왔다. 이렇게 낯 두꺼운 정치를 본적이 없다. 간 보는 야당이 돼선 안된다. 방향성이 확실한 야당이어야 한다."
-방향성이 확실한 야당은 어떤 야당을 말하는 것인가. 최근 '당명'을 지키기 위한 원외 민주당이 창당했는데, 민주당의 정통성을 지키자는 얘기인지.
"민주당의 전통을 막연하게, 고집스럽게 지키자는 얘기가 아니다. 기념해야 할 것은 박물관에 넣어야지. 당 간판만 가지고 있는 채로 민주적이지도 않고, 투명하지도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민주당이 현대 정치에 있어 대의성을 가지고 건강한 정당이 돼야 한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고 하면서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정의를 세워 민주주의를 만들며 그때의 희생과 헌신, 그런 것이 민주당의 전통이다. 헌신 보다 자기 정치적 입지를 먼저 세우고 싶고, 세월호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정쟁거리로 만드는 것은 정통성이 아니다."
추 의원이 당내 계파 갈등에 대해 씁쓸한 심경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
-새정치연합이 수권정당으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 갖춰야 할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지금으로선 정답이 없다. 모르겠다. 당이 하는 걸 보면 전통이라고 하는데, 우리 어머니들을 보면 된장을 담그기 위해 장독에 온갖 재료를 신경써서 넣고, 정성과 시간을 쏟아 발효를 하지 않나. 그런데 어떤 때는 막상 장독 뚜껑을 여니 잘 안됐다. 구더기도 보이고…. 지금 민주당 상황이 그렇다. '전통'이라고 우려먹고 있는데, 희생과 헌신 없이 개인의 정치(계파) 욕심만 부리면서 '독이 잘못됐다'며 '독 탓'을 하고 있다."
-일각에선 전국투어를 차기 당권에 도전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 새정치연합이 장독이라면 독 안에 어떤 좋은 재료를 넣어 제대로된 장맛을 내고 싶은가.
"저도 굉장히 당황스러운 순간이다. 세월호에 대해서 이렇게 책임을 지지도 않고 있다. 또다시 민주당이 바로서지 못하는 이유가 당내 계파주의고 탕평을 해야한다고 하는데 또 이렇게 각 계파가 한자리씩 다 차지하고 있으면서 무슨메시지를 던지겠다는건지, 국민이 믿을 것인지, 국민이 믿는다고 보고 있는 것인지.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인지. 지금의 문제를 해결을 해달라고 해야 하는데 해결이 달갑지 않다."
◆ "세월호 해법만 해결된다면, 의원 안 해도 된다"
"세월호 정국만 풀 수 있다면 세비도 내놓겠다"는 추 의원. |
-최근 박근혜 대통령에게 세월호특별법과 관련해 세 번째 공개 서한을 보냈다. 네 번째 서한을 쓴다면 어떤 얘기를 담을 생각인가.
"제가 공개 서한을 보내는 것은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고, 이건 정말 아니지 않나 해서 보낸 것이다. 대통령이 세월호 정국만 풀어준다면 세비 반납하고 국회의원 안 할 생각도 있다. 야당은 (집권 세력이) 정쟁거리로 만들 줄 뻔히 알면서 수렁에 빠지고, 기회를 이용해서 대통령은 세월호 이제 그만하자 이렇게 얘기하고. 세월호 정국은 해법이 없어서 안푸는 게 아니고 외면을 하니 문제다. 이게 무슨 달나라 화성에 가는 문제도 아니고 말이다."
-판사 출신으로서 세월호특별법 상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해도 현행 법체계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놨는데.
"사법권이 침해된다거나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입법부인 국회가 법을 만들고 그 법에 따라 설치된 조사위에 세월호 사건을 수사할 검사(편의상 세월호특별검사라 함)를 두면 된다. 이렇게 임명된 조사위 산하 세월호특별검사가 형사소송법 원칙과 절차에 따라 수사하고 기소하게 하면 재판권인 사법권을 침해하지도 않고 삼권분립원칙에 어긋나지도 않는다."
추 의원은 조심스럽게 바랐다. "(국민 여러분) 용기를 주십시오"라고. |
-마지막으로 본인과 야당을 바라보는 지지자들과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앞서 '저도 길이 안 보인다'는 고충을 털어놨다. 사실 앞이 안 보이는 길을 개척하는 정치를 계속 해왔다. 지금도 사실 '용기를 주십시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기도 하다. 저도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사진=문병희 기자>
정치사회팀 tf.psteam@tf.co.kr
폴리피플들의 즐거운 정치뉴스 'P-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