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의 정사신] 여당은 왜 '세비 반납' 못 꺼내나
입력: 2019.06.21 10:57 / 수정: 2019.06.21 10:57
국회가 장기 파행을 이어가고 있다. 자유한국당을 뺀 더불어민주당과 야 3당은 6월 국회의 문을 열었지만, 여전히 공회전 중이다./남윤호 기자
국회가 장기 파행을 이어가고 있다. 자유한국당을 뺀 더불어민주당과 야 3당은 6월 국회의 문을 열었지만, 여전히 공회전 중이다./남윤호 기자

국민 80% '국회 무노동무임금' 찬성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무노동 무임금.' 요즘 국회를 빗대 자주 나오는 말이다. 새삼스럽지도 않다. 늘상 들리는 말이다 보니 국회의원들도 무감각 상태에 빠진 것 같다.

국회가 일한 지 언제인가? 사실 제대로 기억도 나질 않는다. 얼마나 일을 안 했으면 기억조차 나지 않을까. 계속 공회전만 반복하고 있다. 국회 무용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국민을 대신해 정부를 견제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라고 했더니 고성과 막말, 그리고 나태한 모습만 보인다. 주권자인 국민 입장에서는 당장이라도 사직서를 받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데 일은 안 하면서 세비는 꼬박꼬박 잘 받는다. 이런 지적이 나올 때마다 나오는 변명이 있다. 국회의원은 국회 일정이 없어도 지역구를 다니는 등 일이 많다는 내용이다. 이는 곧 국회의원의 업무를 국회로만 한정해서 볼 수 없다는 자기변명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지역구 의원이 지역민을 만나러 가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민의를 대변하라고 뽑아줬으며 경청을 위해 지역을 다니며 민심을 듣고 국회에서 법으로든 정부를 설득해서든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그러라고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라면 그만두는 게 낫다. 일하지 않고 세비는 꼬박꼬박 받아가는 국회의원들과 달리 국민은 무노동 무임금의 당연한 시장 논리로 살아간다. 왜 국회만 무노동 유임금을 받아야 하냐는 말이다. 의원 1인당 연 1억 4000만 원의 고액 연봉을 받는다.

19일 한 지인과 대화 중 국회와 관련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선거철에만 반짝 나타나 표를 구걸하고 정작 당선되면 입을 싹 닦는다는 것이다. 이런 행동엔 여당이나 야당이나 다 똑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회는 했지만... 여야 갈등으로 굳게 문 닫은 본회의장. /남윤호 기자
개회는 했지만... 여야 갈등으로 굳게 문 닫은 본회의장. /남윤호 기자

정치 이야기를 하다 나온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그는 "사실 한국당 때문에 국회가 안 돌아간다고 말을 하는 민주당도 일을 안 한 건 마찬가지 아니냐. 그럼 돈을 받지 말아야지, 돈은 다 받으면서 한국당으로 탓을 돌리고 있다. 해야 할 일을 못해 국민에게 죄송하다고만 말 할게 아니라 세비라도 먼저 반납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국민을 봉으로 아는 것 같다"고 성토했다.

듣고 보니 틀린 말도 아니다. 일을 안 한 건 한국당이나 민주당이나 똑같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세비를 반납하겠다는 정당이나 국회의원이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국민 10명 중 8명은 국회의원 세비 반납법이 필요하다고 했을까. 최근 YTN이 리얼미터에 의뢰해 국회의원 세비 반납법에 대한 여론을 물은 결과, '일하지 않는 의원들은 세비를 받지 않아야 한다'에 '찬성' 의견은 80.8%, '반대' 의견은 10.9%(모름·무응답 8.3%)에 불과했다. (조사기간 6월 7일, 조사대상 전국 성인남녀 501명,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4.4%).

리얼미터의 일하지 않는 의원들은 세비를 받지 않아야 한다는 여론조사 결과 찬성 의견은 80.8%로 국민 10명 중 8명은 세비 반납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리얼미터 제공
리얼미터의 '일하지 않는 의원들은 세비를 받지 않아야 한다'는 여론조사 결과 '찬성' 의견은 80.8%로 국민 10명 중 8명은 세비 반납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리얼미터 제공

지난 18대, 19대 국회에서도 일하지 않는 의원에게 세비를 주지 않는 이른바 '국회의원 세비 반납법'이 발의됐지만, 시간만 끌다 자동 폐기됐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듯 입법권을 틀어쥔 국회 역시 자신들 문제에 소극적이다. 오죽하면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무노동 무임금이나 국회의원 세비 반납 요구 등의 청원이 올랐을까.

얼마 전 허영만 작가의 만화 '오! 한강'을 다시 읽게 됐다. 만화는 일제강점기 마지막 시기부터 1987년 6월 29일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이 국민들의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요구를 받아들여 발표한 시국 수습을 위한 특별선언까지를 담고 있다.

만화를 다시 보며 씁쓸했던 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치에 국민은 없어 보였다는 점이다. 민주화 이전 정치나 민주화 이후 정치나 달라진 게 무엇인가 자문해봤다. 왼쪽 가슴에 국회의원 배지를 단 이들은 정치인일까, 아니면 정치꾼일까. 만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화가 이강토는 '어차피 정치란 거시 그런 거 아닌가요? 서로 잡아 묵고 잽혀 묵히고…'라고 정치를 정의했다. 지극히 사실적이라 더 와 닿는다.

지난 4월 5일 이후 본회의는 한 차례도 열지 않았고, 올해 들어 법안처리를 위한 본회의가 개최된 것은 단 3차례에 불과하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누구 탓을 할 처지가 아니지 않을까 싶다. 약 두 달 가까이 일하지 않았다면 부끄러움을 알고 스스로 세비를 반납하는 게 옳지 않을까. 그리고 그 선봉엔 여당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최악의 경제 상황에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말 뿐인 정치 이전에 말이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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