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의 눈] '공관병 갑질' 박찬주 대장 부부, '친아들' 같았다고?
입력: 2017.08.08 05:58 / 수정: 2017.08.08 05:58

공관병 갑질 의혹의 당사자인 박찬주 대장의 아내 전모씨가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고등법원에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공관병 갑질' 의혹의 당사자인 박찬주 대장의 아내 전모씨가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고등법원에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더팩트 | 오경희 기자] 육군 대장의 관사서 근무한 공관병 A씨는 사령관이 새벽기도를 가는 새벽 6시부터 잠드는 22시까지 온종일 긴장한 상태로 대기해야 했다. 자칫 대장 부인의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하면 불호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A씨는 120평 규모의 공관을 관리하면서 조리, 빨래, 다림질, 텃밭 가꾸기, 옷 관리, 화장실 청소 등 온갖 잡무를 도맡았다.

매일매일 A씨는 대장 부부가 호출벨을 눌러 전자팔찌가 울리면 재빠르게 달려가야 한다. 조금이라도 늦을 시 "터진 굼벵이"라며 호출벨로 맞았다. 사령관의 부인은 '여단장급'으로, 밉보이면 영창행을 각오해야 했다. 부인이 아들의 휴가 때 '전'을 간식으로 챙겨주란 지시를 깜빡했다가 '전'으로 얼굴을 맞기도 했다. 그의 지시라면 뜨거운 떡국을 맨손으로 떼야했고, 일상적인 폭언과 폭행을 참아야 했다. A씨는 사령관 가족의 노예였다. 결국 더는 참을 수 없어 목숨을 끊을 마음을 먹기에 이르렀다.

이는 군인권센터가 지난달 31일부터 4일까지 차례로 공개한 박찬주(58) 육군 대장(제2작전사령관, 육사 37기)의 아내 전모 씨의 '공관병 갑질 의혹' 가운데 일부를 재구성한 것이다.

군인권센터는 2016년 3월경부터 올해 초까지 복수의 제보자들로부터 "박 대장 가족이 관사에서 근무한 공관병과 조리병 등에게 갑질을 넘어 노예수준의 취급을 했다"는 제보를 받았고, 이들 부부를 형사고발했다. 군인권센터는 박 대장 부인의 '갑질' 피해자가 확인된 것만 33명이라고 발표했다. 박 대장이 7군단장, 육군참모차장, 2작전사령관에 재임하던 당시의 공관병·조리병·운전병·경계병·레스텔근무병 등이다.

군 검찰은 7일 부인 전 씨(참고인)에 이어 8일 박찬주 대장(피의자)을 차례로 소환조사키로 했다./ YTN 방송화면 캡처
군 검찰은 7일 부인 전 씨(참고인)에 이어 8일 박찬주 대장(피의자)을 차례로 소환조사키로 했다./ YTN 방송화면 캡처

이에 따라 국방부는 지난 4일 군인권센터가 제기한 박찬주 대장 부부의 공관병 갑질 논란의 상당 부분을 사실로 판단해 형사입건했고, 수사에 착수했다. 군 검찰은 7일 부인 전 씨(참고인)에 이어 8일 박 대장(피의자)을 차례로 소환조사키로 했다. '갑질'은 주로 전 씨가 했지만, 박 대장은 아내의 행위를 알고도 묵인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민간인이기 때문에 참고인 신분으로 군 검찰에 출석한 전 씨는 기자들의 '혐의를 인정하냐'는 질문에 "제가 잘못했다. 아들 같은 마음, 생각하고 했지만 그들에게 상처가 됐다면 그 형제나 부모님께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썩은 토마토나 전을 맞은 공관병한테 하고 싶은 말 있냐'는 질문에는 "그런 적 없다"라고 답했다. '본인이 여단장급 이상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절대 아니다"라고 했다.

"아들 같은 마음이었다"는 전 씨의 말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공관병들도 누군가의 귀한 아들이자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 아들은 박 대장 부부의 '친아들'이 먹을 음식으로 얼굴을 맞았고, 폭언과 폭행으로 고통받았다고 호소한다. 심지어 한 공관병은 견디다 못해 소중한 가족을 뒤로한 채 목숨을 끊고자 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들이어서 그랬다는데, 친아들한테 썩은 과일을 던지고 전을 던지는 엄마가 있을까요?"라고 전 씨에게 되묻는 이유다. 역사학자 전우용씨는 7일 자신의 트위터에 "한국 상류층 일부가 '자식 같다'는 말을 '모욕, 폭행, 성추행해도 된다'는 뜻으로 사용한 지 꽤 오래됐습니다. 저런 인간들이 있어서 '개자식'이란 말이 생겼겠지만, 개에게도 미안하네요"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박찬주 대장의 부인 전 씨는 7일 군 검찰에 출석해 아들 같은 마음으로 했지만, 상처가 됐다면 죄송하다고 말했다./사진공동취재단
박찬주 대장의 부인 전 씨는 7일 군 검찰에 출석해 "아들 같은 마음으로 했지만, 상처가 됐다면 죄송하다"고 말했다./사진공동취재단

전우용 씨의 말처럼, 한국사회에서 권력층의 '갑질'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가장 최근엔 '갑질 경영'으로 가맹점주를 자살에 이르게 한 정우현 전 MP(미스터피자)그룹 회장이 지난달 25일 구속기소됐다. 이어 같은 달 27일엔 행상으로 시작해 성공 신화를 이룬 이영석 '총각네 야채가게' 대표가 평소 가맹점주들에게 폭언과 폭력을 일삼고 금품상납까지 요구한 의혹이 불거졌다. 또 운전기사들에게 폭언을 한 혐의로 이장한 종근당 회장은 지난 2일 경찰 조사를 받았다.

"갑질 문제 담당은 어디죠?"

문재인 대통령은 7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서 박찬주 육군대장 부부의 '공관병 갑질' 파문과 관련해 공직사회 전반의 '갑질 문화' 점검을 주문하며 참모들에게 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갑질 문화'가 비단 군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일부 문제 인사를 징계하는 수준의 미봉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라며 "정확한 실태 조사와 분명한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주시기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국방개혁'의 의지로 해석됐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진리는 영겁의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권력과 돈'은 때로 모든 인간의 존엄성 위에 선다. 그런데도 우리를 끝내 인간답게 만드는 힘 역시 존엄과 정의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 '공정한' 법의 심판에 기대를 건다. '박찬주 대장 부부'의 '갑질' 파문 또한 그렇다.

ar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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