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 파장] "응급실 뺑뺑이 불안"…추석 의료현장은 '초긴장'
입력: 2024.09.14 00:00 / 수정: 2024.09.14 00:00

응급실 진료 역량 떨어져…정부 대책도 역부족
시민들 불안감 팽배…병원도 상황 예의주시


1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번 추석 연휴 기간 전국 응급실 409곳 중 2곳을 제외한 407곳이 매일 24시간 운영한다. 사진은 지난 11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입구에 추석 연휴 휴진 안내문이 설치돼 있는 모습 /이새롬 기자
1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번 추석 연휴 기간 전국 응급실 409곳 중 2곳을 제외한 407곳이 매일 24시간 운영한다. 사진은 지난 11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입구에 추석 연휴 휴진 안내문이 설치돼 있는 모습 /이새롬 기자

[더팩트ㅣ조소현·황지향·김시형·이윤경 기자] "아픈 건 예고 없이 찾아오잖아요. '응급실 뺑뺑이' 당할까봐 불안하죠."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해 전공의가 병원을 떠난 이후 첫 명절을 맞으면서 의료현장에 비상이 걸렸다. 이미 응급실 뺑뺑이 사례 등 곳곳에서 잡음이 나오면서 시민들 사이에서는 연휴 기간 아파도 제대로 진료 받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병원도 응급실 운영에 차질을 빚을까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1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번 추석 연휴 기간 전국 응급실 409곳 중 2곳을 제외한 407곳이 매일 24시간 운영한다. 건국대충주병원은 오는 14∼18일 응급실을 운영하지 않는다. 명주병원은 병원 경영 사정으로 인해 응급실 운영을 중단한다. 당직 병·의원은 일 평균 7931곳이다. 연휴 첫날인 14일 2만7766곳이 운영한다. 이어 15일 3009곳, 16일 3254곳, 17일 1785곳, 18일 3840곳이 진료한다.

정부는 지난 11일부터 오는 25일까지를 '추석 명절 비상응급대응 주간'으로 지정, 응급실 대응 역량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추석 연휴 문 여는 당직 병·의원을 확대하고, 군의관 250명을 추가 파견하며, 의사·간호사 400명을 채용할 수 있는 인건비 지원도 약속했다. 이에 추석 연휴 '응급실 셧다운'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국민들을 안심시켜왔다.

그러나 의정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추진한 여야의정 협의체가 의사들의 불참 선언으로 출범조차 못하면서 의료현장의 불안은 해소되지 않았다. 정부는 2025년 의대 정원 재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의사들은 정부 태도에 변화가 없다는 이유로 협의체 참여를 거부하면서 추석 전 협의체 출범이 불발됐다.

의료계에서는 이미 응급실 진료 역량이 떨어진 상태라고 우려하고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9월 중순 기준 전국 53개 수련병원 응급실 중 7곳에 의사가 5명 이하"라며 "'부분적 폐쇄'를 고려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전의교협이 53개 수련병원 응급실 현황을 조사한 결과 근무 중인 의사는 지난해 922명에서 현재 534명으로 42.1% 줄었다.

전의교협은 "응급실 근무 의사 수는 40% 정도 감소했으나 1인 근무, 배후 진료 약화 등으로 보아 실제 응급실 진료 역량은 지난해에 비해 50% 이상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국민이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의사들은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쉬지 않고 응급실을 지킬 것이나 비정상적인 상황은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9월 중순 기준 전국 53개 수련병원 응급실 중 7곳에 의사가 5명 이하라며 부분적 폐쇄를 고려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전의교협이 53개 수련병원 응급실 현황을 조사한 결과 근무 중인 의사는 지난해 922명에서 현재 534명으로 42.1% 줄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임영무 기자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9월 중순 기준 전국 53개 수련병원 응급실 중 7곳에 의사가 5명 이하"라며 "'부분적 폐쇄'를 고려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전의교협이 53개 수련병원 응급실 현황을 조사한 결과 근무 중인 의사는 지난해 922명에서 현재 534명으로 42.1% 줄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임영무 기자

이미 응급실 뺑뺑이 등 진료 차질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9일 서울 지하철 1호선 구로역에서 작업 도중 상해를 입은 노동자가 전문의 부족으로 16시간 동안 병원 여러 곳을 전전하는 등 '응급실 뺑뺑이'를 겪었다. 응급실 11곳에서 이송 거부된 28개월 여아가 한 달째 의식불명에 빠진 사실도 알려졌다. 최근에는 임신 25주 차 고위험 임신부가 제주에서 인천으로 항공 이송된 사례가 확인됐다.

환자들 사이에서는 연휴 기간 응급실 진료를 제대로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연휴를 앞두고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이모(43) 씨는 "연휴 때 쓰러져 병원에 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된다"며 "언제든 쓰러질 수 있는데 흔히 말하는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가 잘못될까봐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이 씨는 응급실 앞 진료 지연 안내문을 가리키며 "큰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오죽하겠냐"며 "오늘 진료도 예약이 두 번이나 취소됐다가 다시 잡혔다. (응급실도) 차질이 안 생길 것이란 보장이 없다"고 했다. 응급실 앞 안내문에는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 외에 일반진료는 제한되거나 장시간 지연될 수 있다'고 적혔다.

목디스크로 정형외과를 방문했다는 60대 남성 A 씨도 불안감을 호소했다. A 씨는 "사고는 누구에게나 우연히 온다"며 "갑자기 아팠을 때 치료를 받을 수 있을 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상황이다. 과거에는 가까운 병원 응급실을 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받아줄까' 하는 불안감이 있다"고 말했다.

두 살 아이가 아파서 소아과에 방문했다는 윤모(36) 씨는 "소아과 자체가 전문의가 별로 없는 것으로 안다"며 "정부가 응급의료 체계를 강화한다고 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병원들도 연휴 기간 응급실 운영에 차질이 없게 하기 위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빅5' 병원 등은 평소와 같이 24시간 응급실을 운영할 방침이지만 연휴 기간에는 평소보다 환자가 늘어날 수 있어 긴장 상태다.

빅5 병원 관계자는 "병원도 걱정하고 있다"며 "최대한 차질 없이 운영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도 "환자가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sohyu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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