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미참여 의료기관 61%
현장 간호사 "간호사가 간호사를 가르치는 상황" 토로
탁영란 대한간호협회장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서울연수원에서 '의사 집단행동에 따른 의료현장 문제 간호사 법적 위협 2차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
[더팩트ㅣ이윤경 기자]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추진에 반발해 전공의가 이탈한 뒤 현장 간호사들 10명 중 6명이 전공의 업무를 강요받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대한간호협회(간협)는 20일 오전 서울 중구 간협 서울연수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4월부터 최근까지 전국 의료기관 간호사 200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의료 공백 위기 대응 간호사의 근무 환경 위협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참여한 간호사 62.4%는 근무 중인 병원에서 전공의 업무를 강요받았다고 응답했다. 응답자 중 37.2%는 '사전에 설명을 듣기는 했으나 일방적으로 이뤄졌다'고, 25.2%는 '사전에 어떠한 설명조차 듣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전체 응답자의 67.9%에 해당하는 수련병원 간호사들은 강제적인 연차 사용과 함께 무급휴가에 내몰리고 있다고 조사됐다. 나머지 비수련병원에서도 간호사들이 의사 집단행동으로 업무 부담 고통이 컸다. 특히 간호사 업무 시범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는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다고 한다. 이 시범사업은 의사 집단행동 이후 간호사에게 응급환자 약물 투여나 수술 보조를 허용하는 내용이 뼈대다.
간협이 지난 6월19일부터 7월8일까지 수련병원 등 385개 의료기관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 조사에선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대상 의료기관이면서도 참여하지 않는 병원은 6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미참여 의료기관과 지난해 운영한 '불법진료 신고센터'에 의료법 위반사례로 신고된 의료기관을 비교한 결과 88%가 일치했다.
현장 간호사들은 "점점 더 일이 넘어오고 교육하지 않은 일을 시킨다. 시범사업 과정에서 30분~1시간 정도만 교육한 후 업무에 투입되고 있다"며 "업무 범위도 명확하지 않고 책임 소재도 불명확한데다 교육 프로그램도 따로 없어 간호사가 간호사를 가르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간협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건강보험통계' 자료를 재구성해 분석한 결과 최근 5년간(2019년~2023년) 1분기 대비 2분기 근무 간호사 평균 증가율은 크게 감소했다. /서예원 기자 |
의료공백 사태 이후 병원들은 경영 악화를 이유로 신규간호사 발령도 미루고 있다. 간협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건강보험통계' 자료를 재구성해 분석한 결과 2019년~2023년 1분기 대비 2분기 근무 간호사 평균 증가율은 크게 감소했다.
상급종합병원은 5년 평균 1334명이 증가했으나 올해는 194명이 줄었다. 종합병원 역시 지난 4년 평균보다 근무 간호사 수가 2046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병원급 이상 전체 간호사 증가 인원도 5년 평균의 65% 수준에 머물렀다.
이 결과 지난 13일 47개 상급종합병원 중 조사에 참여한 41개 의료기관의 경우 올해 발령 인원을 8390명 선발했으나 지금까지 발령 못한 신규 간호사는 전체의 76%(6376명)에 달했다.
조사에 응답한 상급종합병원 가운데 31개 의료기관은 간호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인 예비간호사들을 대상으로 올해 실시되는 신규간호사 모집 계획마저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간협은 "국민의 생명과 환자 안전을 위해 끝까지 의료 현장을 지키고 있는 간호사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체계가 너무 허술하고 미흡하다"라며 "정부 시범사업 지침에는 '근로기준법 준수'라고 분명하게 명시됐지만 간호사들의 근무 환경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료 현장을 묵묵히 지키며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간호사가 환자 간호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간호사들이 직면한 문제 해결에 국회와 정부, 의사 단체가 함께 나서달라"며 "간호사가 더이상 희생만을 강요받지 않고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간호법안이 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