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복귀 기대 어려워…자구책 마련 모색
수련병원들은 9일 올해 하반기 전공의 추가모집을 시작했다. 사진은 지난 6월1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남윤호 기자 |
[더팩트ㅣ장혜승·조소현·황지향·이윤경 기자] 수련병원들이 올해 하반기 전공의 추가모집을 시작했지만 이번에도 지원은 저조할 것으로 점쳐진다. 수련병원들은 전공의 복귀를 기대하기 보단 의료공백에 따른 경영난·인력난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고심 중이다.
9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등 이른바 '빅5'를 비롯한 전국 수련병원들은 이날부터 올해 하반기 전공의 추가모집을 시작했다. 레지던트 1년 차는 오는 14일까지, 레지던트 2~4년 차와 인턴은 오는 16일까지 모집한다.
앞서 수련병원들은 지난달 22~31일 하반기 전공의 모집을 진행했다. 그러나 모집인원 7645명 중 지원자는 104명(1.36%)에 그쳤다. 지원자 중 인턴은 13명, 레지던트는 91명이었다.
이에 정부는 '전공의에게 복귀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제공하겠다'며 하반기 모집기간 연장을 결정했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복귀 의사가 있었으나 짧은 신청 기간과 주변의 시선 때문에 모집에 응하지 못한 전공의들은 추가 모집에 적극 지원해 주길 바란다"며 "(하반기 수련이) 다음달 1일에 시작된다. 이후에는 추가적으로 (모집을) 진행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기 때문에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복귀를 당부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의대 증원 계획 전면 백지화, 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 등 요구안이 수용되지 않으면 병원 현장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사진은 지난 2월20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대한전공의협의회 2024년도 긴급 임시대의원총회' /박헌우 기자 |
정부 호소에도 전공의 지원율은 저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진행한 하반기 모집 이후 상황이 바뀐 게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방안 등을 논의, 연이어 관련 내용을 발표하고 있지만 전공의들이 복귀 조건으로 내걸었던 7대 요구안은 진전된 사항이 없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의대 증원 계획 전면 백지화, 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 등 요구안이 수용되지 않으면 병원 현장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빅5 병원 관계자는 "첫번째 모집 때도 지원자가 거의 없었는데 추가로 모집한다고 지원자가 늘겠냐"며 "(전공의 지원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도 "(전공의 복귀와 관련해)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았다"며 "현장 의료진도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고 한다"고 했다.
수련병원들은 전공의 공백이 장기화할 것이라고 보고 경영난·인력난을 타개할 방안을 찾는데 고심하고 있다. 비상경영체제로 운영 중이던 병원들은 최근 몸집을 더욱 줄이는 추세다. 연세의료원은 지난 1일 세브란스병원과 강남·용인세브란스병원의 일반직 직원 대상 무급휴직 기간을 기존 40일에서 80일로 확대했다. 일반직 직원엔 의사를 제외한 간호사, 물리치료사, 임상병리사 등 보건의료직역 노동자들도 포함된다. 서울성모병원도 병상축소 등을 검토 중이고 서울아산병원도 의사를 제외한 일반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자에 한해 무급휴가 신청을 받고 있다.
일부 수련병원은 인력난 해소를 위해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전환 등도 다각도로 검토 중이다. 빅5 병원 한 관계자는 "전공의 빈자리를 촉탁진료 전문의나 진료지원간호사 위주로 대체하라는 게 정부 지침"이라며 "세부적으로 논의된 바는 없지만 결국 정부 방침대로 방향성을 정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수련병원에서는 전공의 공백을 퇴직한 교수의 재고용으로 해결하자는 방안이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해 검토하지 않기로 했다.
수련병원 관계자는 "전공의가 돌아오지 않았을 때 가장 큰 문제는 당직"라며 "전공의가 당직을 섰는데 퇴직한 교수는 당직에 들어가지 않는다. 외래진료만 본다"고 말했다. 퇴직한 노년의 교수가 당직 업무를 대체하는 건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당직을 서고 있는 교수들이 너무 힘들어 한다"며 "오전 2~3시까지 당직을 서는데 피로를 회복할 틈도 없이 다음날 오후 외래를 또 본다. 병원이 환자 안전을 위해 일정을 조정하고 있지만 힘든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세브란스병원 교수들이 무기한 휴진에 들어간 27일 서울세브란스병원과 강남세브란스병원 현장에 혼란은 없었다.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진료실에 불이 꺼져 있다. /장혜승 기자 |
결국 경영난·인력난 극복을 위해서는 정부가 수가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전문의를 더 채용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전문의는 전공의보다 급여 수준이 높다. 진료 수익으로 (전문의) 인건비를 충당하려면 진료 수가가 올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5월 전공의 이탈 후 경영난에 직면한 수련병원에 건강보험 급여 3개월분을 선지급하기로 했다. 경영상 어려움, 필수의료 유지, 필수 진료 체계 유지를 위한 자구 노력 등을 전제로 6~8월 3개월간 기관별 전년 동월 급여비의 30%를 우선 지급하고 내년에 정산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서울아산병원 등 9곳 병원의 경우 일부 교수의 무기한 휴진 선언과 진료·수술 축소로 '필수 의료 유지' 조건을 만족하지 못한다고 판단해 6월분 선지급을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사단체는 정부의 의료 정책으로 병원들이 도산 위기에 처했다고 지적한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전날 "정부의 잘못된 의료 정책으로 진료 축소가 발생하고 있다"며 "국민의 의료 불편과 중증·응급 환자들의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 일부 병원은 도산 위기에 처했으며 경제 파탄도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다음해에는 전문의 배출이 없을 수 있다"라며 "앞으로 필수과 전문의가 더 줄어 의료 환경이 심각하게 무너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의비는 오는 15일 오후 2시 서울시청 대한문 광장에서 의학교육 정상화를 촉구하는 궐기대회를 연다.
sohyun@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