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의대생 향한 정부 유화책에 반발
"몽둥이 들었다가 내려놓은 것에 불과해"
보건복지부는 10일 보도자료를 내고 "정부는 지난달 4일부터 사직서 수리금지명령을 철회했다"며 "사직의 효력은 명령을 철회한 지난달 4일 이후 발생한다"고 밝혔다. 수련병원들이 전공의들 사직서 수리 시점을 2월29일로 정한 것에 선을 그은 것이다. /뉴시스 |
[더팩트ㅣ조소현·이윤경 기자] 정부가 사직서 수리금지명령 철회와 의대 학사 탄력운영 가이드라인 등 의사들을 달래기 위한 유화책을 연일 내놓고 있지만 정작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 모양새다. 첨예한 입장차는 변함이 없어 의정 갈등 해법의 실마리를 찾기 쉽지 않다.
보건복지부는 10일 보도자료를 내고 "정부는 지난달 4일부터 사직서 수리금지명령을 철회했다"며 "사직의 효력은 명령을 철회한 지난달 4일 이후 발생한다"고 밝혔다. 수련병원들이 전공의들 사직서 수리 시점을 2월29일로 정한 것에 선을 그은 것이다.
전국 211개 수련병원장 모임인 대한수련병원협의회는 전날 전공의들의 사직서를 2월29일자로 일괄 수리하는 방안을 정부에 제안하기로 합의했다. 협의회는 2월 기준으로 사직서를 수리해야 전공의들이 복귀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전공의 입장에서는 2월 기준으로 사직서가 수리돼야 업무개시명령 불응에 따른 법적책임을 피할 수 있고 퇴직금도 받을 수 있다. 또 전공의들은 사직할 경우 1년 이내 동일 연차, 동일 과목으로 복귀할 수 없는데 2월 기준으로 사직서가 수리되면 다음해 3월 복귀가 가능하다. 통상 전공의는 3월과 9월에 모집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사직서 수리금지명령을 철회한 지난달 4일 이후 사직만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2월 사직을 허용하면 정부가 내린 업무개시명령 등 기존의 행정처분이 위법하다는 것을 자인하는 셈이 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수련병원이 정부의 사직서 수리금지명령에 반해서 사직서를 소급해 수리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의대 교수들은 즉각 반발했다. 강희경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3월에 수련을 재개할 생각이 있는 전공의들이 있다면 (병원 판단은) 긍정적"이라며 "애초에 전공의들이 수련을 중단한 건 2월 중순인데 (사직서 수리를) 6월에 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울산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 관계자도 "사직서 수리가 2월 말이 돼야 전공의들이 다른 일을 할 수 있고 다음해 3월에 복귀할 수 있다"며 "퇴직금도 받을 수 있는 등 실질적인 면에서 여러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수련병원이 정부의 사직서 수리금지명령에 반해서 사직서를 소급해 수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임영무 기자 |
복지부는 이날 정부가 마련한 수련 특례가 사직 후 오는 9월 수련에 재응시하는 전공의에 한해서만 적용된다고도 했다. 복지부는 "사직 전공의에 대한 수련 특례는 9월 하반기 모집에서 복귀하는 경우에 한해 적용하기로 했다"며 "9월 하반기 모집에 응시하지 않는 전공의는 다음해 3월 복귀가 불가하다"고 설명했다. 앞서 정부는 전공의 복귀를 유도하기 위해 사직 후 오는 9월 수련에 재응시하는 전공의들은 다른 수련병원에서 같은 과목·연차로 수련을 이어갈 수 있도록 특례를 마련했다.
결국 의사들 사이에선 전공의들 복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울산의대 교수협 비대위 관계자는 "전공의들이 9월 모집에 지원을 많이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위원장도 "사직 수리 시기가 언제가 됐든 전공의가 당장 복귀하지는 않을 것 같다"며 "정부 발표는 위헌적인 사직서 수리금지명령에 대한 후속 처리지 전공의 요구와 관련된 게 아니다. 몽둥이를 들었다가 내려놓은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했다.
사직 전공의 A 씨는 "정부 발표는 무의미하다"며 "사회적인 합의 과정에서 과학적인 추계를 요구했는데 아무 것도 바뀐 게 없다"고 비판했다.
설상가상 지난 2일 교육부가 입법 예고한 대학교원 자격기준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도 의정 갈등에 불을 지폈다. 개정안에는 개인병원을 운영하거나 동네병원에서 봉직의로 일한 기간을 100% 연구실적으로 인정하고 교수 채용 시 반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성명서를 내고 "교육부는 시설이나 인력 준비가 미비한 의대에 연간 20~325%까지 입학정원을 증원하는 정책을 강행하며 의학교육 현장을 파괴하고 있다"며 "연구 및 교육 경력을 무시하고 진료경력만으로 교수를 채용하겠다는 시행령 개정을 당장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교육과 연구 역량 없어도 진료경력을 100% 연구, 교육 실적으로 인정해 교수로 채용하겠다는 교육부 시행령이 실행된다면 대학의 연구 역량은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며 "양질의 의학교육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또 이로 인한 피해는 국민이 고스란히 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대 증원에 반발해 수업을 거부하고 있는 의대생들 역시 복귀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부는 이날 1학기 성적처리 기한을 학년 말까지 미뤄 'F' 등급 처리를 미룰 수 있게 했다. 의대생이 일부 과목에서 F 등급을 맞더라도 1년치 수업 전체를 다시 듣는 유급이 없도록 올해 의대생들에 한정한 한시적 특례조치도 마련할 수 있게 했다.
의대생 집단유급을 막기 위한 조치지만 정작 의대생들 사이에서는 당초 정부에 요구했던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복귀하지 않을 것이란 분위기가 확산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은 조만간 공식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sohyun@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