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 파장] 5월 최대 위기…교수, 전공의, 의대생 모두 떠나는데 ‘평행선’
입력: 2024.04.25 00:00 / 수정: 2024.04.25 00:00

의대 교수들 줄줄이 사직 재확인, 피로 누적에 휴진도
2000명 증원 vs 절차 중단…알맹이 빠진 의료개혁특위


25일 의료계에 따르면 이르면 5월부터 전국 의대 교수들의 사직이 본격화된다. 사진은 지난달 11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종합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기사 내용과 무관 /임영무 기자
25일 의료계에 따르면 이르면 5월부터 전국 의대 교수들의 사직이 본격화된다. 사진은 지난달 11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종합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기사 내용과 무관 /임영무 기자

[더팩트ㅣ조소현·이윤경 기자] 전공의에 이어 의대 교수들도 의료공백 장기화에 피로 누적을 호소하며 병원을 떠나기로 했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사 간 갈등이 10주째 이어지면서 진료 차질을 빚고 있는 환자들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수련 일수를 채우기 위한 전공의들 복귀 시한도, 휴학계를 내고 수업을 거부하고 있는 의대생들 집단 유급도 5월이 마지노선이라 본격 의료대란이 우려된다.

◆ 의대 교수들 5월부터 순차적 사직…주 1회 휴진도 확산

25일 의료계에 따르면 이르면 5월부터 전국 의대 교수들의 사직이 본격화된다. 의대 교수들은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지난달 25일부터 사직서를 제출했다. 의대 교수들은 전공의 집단 이탈에 따른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사직서 제출 이후에도 병원을 지켰지만 피로 누적으로 예정된 진료 및 수술 일정이 마무리되면 병원을 떠나겠다는 입장이다. 민법 660조에 따르면 고용기간 약정이 없는 근로자는 사직 의사를 밝힌 뒤 1개월이 지나면 사직 효력이 생긴다. 의대 교수들 사직서는 수리되지 않았지만 이날부터 순차적으로 사직 효력이 발생할 수 있다.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교 비대위)는 "예정대로 4월25일부터 사직이 시작된다는 것을 재확인했다"며 "정부의 사직 수리 정책과는 관계없이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의교 비대위에는 원광대, 울산대, 인제대, 서울대, 경상대, 한양대, 대구가톨릭대, 연세대, 부산대, 건국대, 제주대, 강원대, 계명대, 건양대, 이화여대, 고려대 안암, 고려대 구로, 전남대, 을지대, 가톨릭대 등 20개 의대가 참여하고 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교수 4명은 당장 5월1일부터 병원을 떠나기로 했다.

강희경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소아신장분과 교수는 오는 8월31일까지만 근무한다고 밝히며 환자들에게 전원을 준비해달라고 안내했다. 강 교수는 "의사가 떠날 수 있는 때는 자기 책임인 환자분들이 안 계실 때"라며 "오는 8월31일을 희망사직일로 적어낸 상황"이라고 밝혔다. 강 교수는 "중요한 것은 '이대 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 것인데 지금 정부 정책에는 이 부분이 없다"며 "'의사가 최선을 다하면 감옥에 가지 않는다', '말도 안 되는 소송 비용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이 부분이 해결돼야 전공의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대 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은 지난 2017년 12월 서울 이대 목동병원에서 신생아 4명이 감염에 의한 패혈증으로 사망한 사건이다. 이후 소아청소년과 담당 교수 등 의료진 7명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가 지난 2022년 12월30일 5년 만에 전원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의대생들의 소아과 기피 현상이 심화됐다는 게 강 교수 설명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지난 24일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출범을 통해 의료개혁이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고 오랜 기간 정체돼 온 보건의료시스템이 미래를 향해 한 발자국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임영무 기자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지난 24일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출범을 통해 의료개혁이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고 오랜 기간 정체돼 온 보건의료시스템이 미래를 향해 한 발자국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임영무 기자

서울아산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둔 울산의대 교수 400여명도 개별적으로 사직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최세훈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오는 5월9일 병원을 떠날 계획이다. 최 교수는 "당장 400여명이 한꺼번에 병원을 떠나지는 않겠지만 많은 훌륭한 교수님들이 떠난다고 한다. '정부발 의료대란'이 발생할 것"이라며 "교수들이 사직하는 이유는 환자들을 골탕 먹이기 위해서가 아닌 오히려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은 한 나라의 의료를 순식간에 망가뜨리는 일"이라며 "지금 상황에서는 (증원 규모) 숫자보다도 전공의와 의대생이 떠났다는 게 가장 중요한데, 정부는 증원 중단에 대해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고 강조했다.

사직에 앞서 의대 교수들의 주 1회 휴진 등 진료 축소 움직임도 확대되는 모양새다. 전의교 비대위는 "장기화된 비상 상황에서 현재 주당 70~100시간 이상 근무로 교수들의 정신과 육체가 한계에 도달해 다음 주 하루 휴진을 하기로 했다"며 "이후 주 1회 휴진 여부는 병원 상황에 따라 오는 26일 정기 총회 때 상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서울의대 교수들은 오는 30일 응급·중증·입원 환자를 제외한 일반 환자의 진료를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방재승 서울의대 교수협 비대위원장은 "두 달 이상 지속된 초장시간 근무로 인한 체력 저하와 의료공백 사태의 끝이 보이지 않은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진료를 위해 하루하루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 의료인으로서 몸과 마음의 극심한 소모를 다소라도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울산의대 교수협 비대위는 오는 5월3일부터 주 1회 휴진하기로 결정했다. 충남의대·충남대병원·세종충남대병원 비대위도 오는 26일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휴진하기로 했다. 성균관의대 교수 비대위도 전날 '환자 진료 퀄리티 유지 및 교수 과로사 예방을 위한 적정 근무안'을 배포하고 진료 교수들에게 주 1회 휴진을 권고했다.

◆ 의대생 집단 유급 가시화…의사 공급 차질 불가피

전공의들에 이어 교수들마저 병원을 떠나면서 의료현장은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교수마다 사직 시기는 다르지만 향후 환자들 진료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수련을 하는 전공의와 달리 교수는 병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일부 진료과는 환자 감소에 따른 심각한 경영난을 겪을 수 있다.

더욱이 5월 이후에는 의대 학칙상 수업 일수를 채우지 못한 의대생들 집단 유급도 가시화되는 상황이다. 5월 이후에는 전공의들도 올해 수련 일수를 채울 수 없게 돼 돌아올 이유가 사라진다. 추가 수련을 받아야 하는 기간이 3개월을 초과하면 전문의 자격 취득 시기가 1년 지연된다. 향후 몇 년간 연쇄적으로 의사 공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비대위는 "5월이 되면 경험하지 못했던 대한민국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며 "일부 병원은 도산하고 파산하게 될 위험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전국 40개 의대 1만8000명의 의대생들이 1년 동안 사라질 것이고, 전국 수련병원 1만2000명의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못한다"며 "전공의라는 축을 잃어버린 수련병원은 대체인력으로 축소된 진료행태를 유지하게 될 것이며, 의대 인증평가를 통과하지 못해 학생들이 의사국시에 지원하지 못하는 대학들도 속출하게 되고 이는 의사 수 증가가 아닌 감소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황 악화에도 정부와 의사는 좀처럼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내년도 의대 입학 모집인원을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한 것을 '마지막 양보'라고 못박고 2000명 증원 원칙을 재확인했다. 반면 의사들은 의대 증원 절차 중단을 요구하며 원점 재논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첫 회의를 열고 의료개혁을 본격 추진한다. 의협과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등 당사자인 의사들이 빠지면서 의정 갈등의 핵심인 의대 증원 규모 타협안을 도출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특위 출범을 통해 의료개혁이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고 오랜 기간 정체돼 온 보건의료시스템이 미래를 향해 한 발자국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의협과 대전협도 열린 마음으로 특위에 참여해 주시기를 다시 한번 당부드린다"고 호소했다. 그는 '핵심 당사자인 의료계 참여 없이 시작되는 특위가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냐'는 지적에 "의료계가 6자리를 차지하는데 의협과 대전협, 의학회 등 참여가 불투명한 상황"이라며 "조속히 참여해 주시기를 당부드린다. 정부도 설득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sohyu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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