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만나자는 제의, 진정성 없어"
"전공의들 요구는 2000명 증원 재논의"
3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전공의들은 전날 윤 대통령의 대화 제안에도 불구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이날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박헌우 기자 |
[더팩트ㅣ조소현·이윤경 기자] "2000명 증원 규모에 대해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 그것보다 과학적인 근거를 가져오라는 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윤석열 대통령이 의대 증원에 반발해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을 직접 만나겠다고 제안했으나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의사들은 대체로 대통령의 대화 제안은 환영한다면서도 2000명 증원 철회와 진정성 있는 의료정책이 선행돼야 전공의들이 대화에 응할 것으로 내다봤다.
3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전공의들은 전날 윤 대통령의 대화 제안에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이날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박단 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도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대전협 관계자는 "정부와 예정된 만남 일정이 없다"며 "전공의들의 (만남) 의향도 별도로 파악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의사들은 정부의 대화 제안과 복귀 호소에도 전공의들이 꿈쩍하지 않고 있는 이유를 정부 불신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정부는 열려 있고 의대 정원 역시 논의할 수 있다는 말의 진정성을 담보하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2025년 의대 증원 배정을 중지해야 한다"며 "그러나 오늘 국립의대 교수 증원 신청을 받는다는 발표가 나오는 등 후속 조치가 계속되는 것을 보며 정원 조정의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교 비대위)는 "대통령실에서 대통령과 전공의 대화를 제안한 것을 환영한다"면서도 "무조건 만나자고 하면 진정성이 없다.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의료계와 협의해 합리적인 방안을 만들겠다고 먼저 제안해달라"고 요청했다. 전의교 비대위는 "대통령께서 목표하는 의료개혁과 필수·지역의료 살리기는 지금의 전공의가 해나갈 일"이라며 "이들이 돌아올 수 없다면 의료의 미래는 없다. 대통령이 직접 대화의 장을 열어 전공의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달라"고 강조했다.
김창수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회장도 "2000명 증원 규모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 (의사들에게) 그것보다 과학적인 근거를 가져오라는 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이미 대통령이 강경한 의지를 보인 상태에서 협상이 가능하고 2000명 조정도 있을 수 있다고 하는 건 정치적 수사가 아닐까 싶다"고 했다. 이어 "전공의 요구는 재논의인데 정부가 받아들일 의향이 있는지를 얘기해주고 검토해보자고 해야 만남이 의미가 있을 것"이라며 "단순하게 만나자 해서 만난다고 해도 서로 자기 얘기만 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전날 의대교육 지원 T/F에서 국립대 의대 전임교수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며 "내년도 대학별 교수의 증원 규모는 4월8일까지 각 대학에서 제출한 수요를 토대로 종합 검토 후 반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영무 기자 |
이에 의사들은 대통령과 전공의 간 대화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안석균 연세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정부와 전공의 만남이 성사돼서 잘 해결되길 소망하고 있다"면서도 "대화의 출발점인 7대 요구안이 받아들여져야 전공의들이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7대 요구안에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의대 증원 계획 전면 백지화, 수련병원 전문의 인력 채용 확대, 전공의에 대한 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 등이 담겼다.
배우경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언론대응팀장도 "전공의가 응답하지 않는 것은 (정부의 대화 제안이) '총선을 위한 정치적 쇼'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이 대통령의 언어로 직접 '2000명 증원 규모도 의제로 올릴 수 있다'고 얘기해주면 전공의들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식 경희의대 교수의회장은 "정부가 비용 문제 등 앞으로 의료정책을 어떻게 하겠다는 게 있어야 한다. 솔직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윤정 고대안암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전공의들이 아무 조건 없이 만나는 건 아니다"며 "법과 원칙은 작은 부분이고 전공의들 요구사항을 들어주고 힘을 가진 쪽이 명령과 처분을 다 취소하고 안아주며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날도 전공의와 만남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대통령께서도 집단행동 당사자인 전공의들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며 "합리적인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와 대화 및 소통에 나서달라"고 당부했다. 다만 박 차관은 전공의 측과 연락이 됐는지, 어떤 내용을 소통 중인지를 놓고는 "구체적인 사항은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복지부에 따르면 전날 자정 기준 상반기 임용 등록을 한 의대 졸업생은 총 131명으로 집계됐다. 올해 수련병원 인턴 시험 합격자 3068명의 약 4.3%에 불과한 수치다. 2937명은 임용 등록을 하지 않아 올해 상반기 수련이 불가능해졌다. 정부는 전날 임용 등록 '데드라인'을 언급하며 조속한 등록을 요청했지만 인턴 계약을 포기한 이들 대부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인턴 합격자들이 상반기 수련을 받으려면 전날까지 수련환경평가위원회에 임용 등록을 해야 했다.
의협 비대위는 "신규 인턴으로 들어와야 하는 분들이 등록을 대부분 하지 않았다"며 "이는 이들이 아직 정부의 진정성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