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회 가능성 놓고 고등교육법 해석차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해 한덕수 총리의 발언을 들으며 시간을 확인하고 있다. /임영무 기자 |
[더팩트ㅣ조소현·이윤경 기자] 정부가 2025학년도 대학별 의과대학 정원 배정안을 발표, 2000명 증원을 못박으면서 정부와 의사 간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의사들은 수시 원서 접수가 시작되는 9월 전까지 정원 변경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정부에 증원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이미 대학별 배정이 완료돼 변경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라 증원 철회 가능성에 관심이 모아진다.
26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는 고등교육법에 따라 의대 정원 변경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21일 "의대 정원은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국가가 인력수급과 관련해 정책적으로 결정하는 사안으로 대학이 임의적으로 정원을 변경할 수 없다"고 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지난 22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수시 원서 접수가 시작되는) 9월 전에 대학별 의대 정원을 변경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사실이 아니다"며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은 대학의 신청과 위원회 심의를 거쳐 이미 대학별 배정이 완료됐다. 고등교육법령에 따라 국가가 인력 수급과 관련해 정책적으로 결정하는 사항으로 대학이 임의로 정원을 변경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법적 근거로 든 고등교육법 시행령 28조 3항은 '대학은 학칙으로 모집단위별 입학정원을 정할 때 교육부장관이 정하는 인력양성 정책을 따라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같은 증원 규모 변경 불가 사유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미가 아닌 의지의 표명이라고 입을 모았다. 증원 철회 여부와는 관계 없다는 주장이다.
이동찬 더프렌즈법률사무소 의료전문 변호사는 "(증원 철회가)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며 "정부 의지로 정원을 변경할 수 있다. 정부의 표현은 정원을 줄이기 쉽지 않다는 뜻과 정원을 줄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한 것이다. 법률상 불가능함을 표현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정부의 행위는 행정행위, 행정처분으로 행정청의 판단에 의해 취소할 수 있다"며 "학교가 정원을 늘려서 늘린 정원으로 교수를 더 뽑거나 건물을 더 짓거나, 모집공고를 했거나, 수능 변화를 줬거나 하면 증원을 철회할 수 없겠지만 지금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서울 소재 대학 교육학과 A 교수도 "(증원 철회가 안 된다고) 법에 정해진 게 없다"며 "증원은 탄력적인 것이다. 법에 명시된 것이 없기 때문에 정책적 판단"이라고 전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측 소송대리인인 이병철 법무법인 찬종 변호사도 "각 대학은 4월 말에서 5월 초 쯤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발표한다"며 "5월 초쯤 입시요강을 발표한다. (입시요강을) 취소하면 대혼란이 생기겠지만 그 전까지는 (증원을) 언제든지 철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가 자발적인 사직서 제출을 예고한 지난 25일 서울 한 대학병원 인턴 전공의 공간에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 기사 내용과 무관 /배정한 기자 |
문제는 2000명 증원을 두고 정부와 의사가 각각 증원 철회 불가와 전면 백지화를 굽히지 않고 있어 대화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향후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승인을 받아 대학별 모집인원을 확정하겠다는 방침이다. 대학은 변동된 정원을 반영해 2025학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 변경을 신청하고 대교협에서 승인해 2025학년도 대학별 모집인원이 확정된다. 해당 절차는 2025학년도 대학입학전형 기본사항에 따라 올해 5월 말까지 마무리돼야 한다.
정부가 지금과 같이 2000명 증원 방침을 밀고나갈 경우 대교협 승인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A 교수는 "대학이 원래는 50명을 뽑으려고 했는데, 이젠 150명을 뽑겠다고 한 것"이라며 "숫자만 올려서 대교협의 승인을 받으면 된다. 형식적으로 승인해주는 절차만 남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도 "대교협이 승인을 하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그랬던 적은 거의 없다. 정부가 발표한 대학별 (증원 규모) 숫자에 따라 승인을 한다"고 말했다.
반면 전의교협은 "입학정원 2000명 증원은 수용 가능하지 않다. 교육을 도저히 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올바른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고 병원에서 적절한 수련을 받을 기회도 박탈하는 것을 협의의 대상으로 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은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서류상 만들어진 숫자에 불과하다는 게 일관된 입장"이라며 "행정소송과 가처분 신청을 낸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