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 파장] "전공의도 쉽지않은데"…무리한 PA 간호사 업무에 '혼란'
입력: 2024.03.21 00:00 / 수정: 2024.03.21 09:53

기관 삽관부터 중심정맥관 삽입까지
"실패하면 엄청난 손상, 간호사로 안돼"


사진은 지난달 24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기사 내용과 무관 /서예원 기자
사진은 지난달 24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기사 내용과 무관 /서예원 기자

[더팩트ㅣ조소현·이윤경 기자]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하면 안 되는 일이에요."

수도권 한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A 씨는 보건복지부의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보완지침'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무리 전문간호사더라도 간호사에게 중환자 대상 기관 삽관부터 중심정맥관 삽입까지 허용했기 때문이다. A 씨는 "기관 삽관은 전공의들도 실패하고 잘못하면 기도가 손상될 가능성이 높다"며 "환자가 숨넘어가는 응급상황에서 신속·정확하게 삽관해야 하는데 전공의도 실패할 수 있는 업무를 이제 막 맡게 된 전문간호사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기관 삽관은 기도의 확보를 위해 기관 속에 튜브를 넣는 것이다. 입 또는 코를 통해 삽입할 수 있다. 삽관 과정이 전문적인 해부학 구조를 잘 알고 후두경으로 성문을 정확히 찾아 삽입해야 해 고난도 시술에 꼽힌다. 중심정맥관 삽입도 쇄골하 정맥과 경정맥, 대퇴정맥 등에 관을 넣는 것이라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A 씨는 "실패하면 환자의 기도에 엄청난 손상을 주기 때문에 간호사가 해서는 안 된다"며 "중심정맥관 삽입도 숙련된 의사가 초음파를 보고 혈관에 맞춰 미세하게 조절해 넣어야 하는데 잘못 삽입하면 엄청난 출혈이 발생한다. 간호사가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고개를 저었다.

◆ '간호사 업무 시범사업 보완지침' 배포…"무리한 업무 많아"

21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7일 전공의 집단사직에 따른 업무공백을 메우기 위해 간호사의 업무범위를 한시적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시범사업을 실시하기로 했다. 관행이지만 불법인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가 합법적으로 의사 업무의 일부를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복지부는 전국 종합병원 및 수련병원에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보완지침을 배포했다. 지침에 따르면 정부는 숙련도와 자격에 따라 전문간호사와 전담간호사, 일반간호사로 구분해 이들이 할 수 있는 업무범위를 설정했다.

전문간호사는 관절강 내 주사와 방광조루술, 요로 전환술, 배액관 삽입, 대리 수술(집도), 골절 내고정물 삽입·제거, 사전의사결정서 작성, 전문의약품 처방 정도를 제외하고 검사와 중환자 관리, 처방 및 기록 등 총 83개 업무가 가능하다. 전문간호사는 최소 3년 이상의 임상경력을 갖추고 2년 이상의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 후에 복지부 장관이 실시하는 전문간호사 자격 시험에 합격한 간호사다.

전담간호사는 응급상황에서의 동맥혈 채취, 석고 붕대(통깁스), 부목(반깁스), 복합 드레싱, 봉합, 배액관 관리·장루 관리, 호흡 치료, 수술 부위 봉합 또는 봉합 매듭, 위험한 수술 보조행위, 수술 보조, 검사 및 판독 의뢰 초안 작성, 진단서 초안 작성 등 75개 업무를 할 수 있다. 일반간호사도 문진과 예진, 병력 청취 등 단순 이학적 검사, 회진 시 입원환자 상태 파악 및 보고, 단순 드레싱, 응급상황 심폐소생술, 응급약물 투여, 환자, 보호자 교육 및 상담 등 40개 업무를 담당할 수 있다.

사진은 지난달 24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기사 내용과 무관 /서예원 기자
사진은 지난달 24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기사 내용과 무관 /서예원 기자

문제는 지침 발표 이후 간호사들 사이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할까 두렵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B 씨는 "병원마다 다르겠지만 배액관 관리·장루관리를 비롯해 최소 20~25개 업무는 하고 있다"며 "PA로 이동한 간호사들은 업무에 바로 투입되는 상황이다. 트레이닝 없이 곁눈질로 본 업무들을 그대로 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간호사들은 환자들에게 사고가 발생할까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간호사 C 씨도 "배액관 제거는 흉수 같은 경우 잘못 뽑으면 폐에 기흉이 생겨 사망할 수 있다"며 "I&D도 절개와 배농, 병소 부분을 메스로 절개해 그 안의 고름을 꺼내는 처치이기 때문에 간호사가 하기에는 무리"라고 하소연했다. 배액관은 상처부위와 수술 및 시술부위 등 고름이나 용액, 혈액 등이 모인 것을 빼내기 위해 삽입한 관으로, 이를 제거하는 것은 의사 업무다. I&D(절개배농·Incision and drainage)도 피부를 자르고 고름을 배출시키는 업무로 간호사가 하기에는 쉽지 않다고 한다.

C 씨는 "봉합과 발사 여부 결정도 수술 부위 상태를 보고 전문적인 외과 의사가 결정해야 한다"며 "수술 상태에 따라서 발사 여부는 의사가 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봉합은 상처를 꿰메는 것이고 발사는 실밥을 푸는 것이다.

◆ 3년 이상 임상 경력 보유자 전담간호사 차출…"인력난 심화로 휴일도 취소"

PA 간호사 차출에 따른 업무공백으로 인력난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B 씨는 "각 의료부문의 전문성도 필요하기 때문에 각 부서에서 간호사 핵심인력인 4~6년차를 PA로 데려갔다"며 "기존 숙련된 간호사들만 차출돼서 부서 내 빈자리가 생기는 실정이다. 남아있는 간호사들의 업무부담이 더 커진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로 '간호사는 소모품'이라는 게 명확해졌다"며 "정부는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마음에 환자가 없어져서 문을 닫은 병동의 간호사 인력을 차출했고 기존 간호사의 인력난이 심화했다. 이로 인해 계획된 오프(쉬는날)가 취소되는 사례도 발생했다"고 덧붙였다.

PA 간호사들도 불만이 있다. B 씨는 "전문간호사들은 '왜 본인을 전문간호사가 아닌 전담간호사로 사용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전담간호사를 하려고 전문간호사 석박사를 딴 것이 아니다'라는 의견이 많다"며 "전문간호사의 직무를 인정해주지 않고 '전담간호사'라는 이상한 직무를 만들어서 아무 교육 없이 차출, 투입시키고 있다. 비용이 덜 들고 일회성으로 사용하기 좋은 방향으로 정책을 꾸린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간호사들은 무급휴가를 강요받는다고도 했다. C 씨는 "하루 전 또는 당일에 '응급휴가'를 통지받기도 한다"며 "한달 간 무급휴가를 주기도 한다. 전세 이자와 월세, 생활비 등 때문에 돈이 매달 있어야 하는 선생님들은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원래 시간 외적으로 일을 하게 되면 따로 수당을 신청하는 게 있었는데 하루 동안 생기는 병원 적자에 대해 이야기하며 최대한 쓰지 말라고 눈치를 주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sohyu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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