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2000명 증원 조정 불가…의사 집단행동 피해 사례 509건
의대 교수들도 잇따라 사직 결의…개원의도 "동참 가능"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국민의 우려와 정부의 거듭된 당부에도 이런 의사를 표명한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어떤 경우라도 국민 생명을 두고 협상을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사진은 지난 14일 한 대학병원에서 의과대학 교수가 연구동으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 기사 내용과 무관 /뉴시스 |
[더팩트ㅣ조소현·황지향·이윤경 기자] 의과대학 증원 추진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5주째를 맞았지만 정부와 의사들은 여전히 첨예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전공의와 의대생, 의대 교수들을 향해 연일 경고장을 날리는 정부에 맞서 서울의 이른바 '빅5' 병원 교수들까지 사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간 대한의사협회(의협) 차원의 대응을 제외하고 사실상 사태를 관망했던 개원의들조차 단축진료 등 형태로 지원사격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 "교수들 사직 표명에 심각한 우려"
정부는 18일에도 의사들을 향한 압박을 이어갔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국민의 우려와 정부의 거듭된 당부에도 이런 의사를 표명한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어떤 경우라도 국민 생명을 두고 협상을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우리 국민들은 생명이 위급한 환자를 진료하는 교수님들이 실제로 환자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다"며 "국민의 믿음을 부디 저버리지 말아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도 중대본 브리핑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대비하고 있다"면서도 "교수들이 떠나게 되면 중증 진료 의료체계에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 현실이 일어나리라고 믿고 싶지도,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특히 박 차관은 전날 한 방송 인터뷰를 통해 의대 증원 2000명 방침을 "절대 조정할 수 없다"며 "이번엔 다르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00년과 2020년 의료정책 추진이 무산된 사례를 거론하며 "(전공의) 다음 순서로 교수들이 제자들을 건드리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집단행동 선언을 하는 것은 (과거와) 아주 똑같은 패턴"이라며 "이런 잘못된 의료계의 집단행동 문화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번에는 다르게 대응하고자 한다"고 역설했다.
전공의 이탈에 따른 환자들 피해도 이어지고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전공의 집단사직이 시작된 지난달 19일부터 지난 15일까지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 지원센터에 접수된 상담 건수는 총 1414건으로 이 중 509건이 피해 사례로 접수됐다. 절반 이상인 350건이 수술 지연 신고였다. 이어 진료 취소 88건, 진료 거절 48건, 입원 지연 23건 등으로 조사됐다. 진료 과목별로는 외과와 정형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등 외과 계열이 전체의 39%인 197건이었다.
다만 최근 들어 피해 사례는 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차관은 "피해 접수 사례는 감소 추세에 있다"며 "운영 첫 주인 2월19일부터 23일까지는 하루 평균 45.4건으로 가장 많았으나 3월11일부터 15일까지는 하루 평균 13건으로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공의 집단사직이 시작된 지난달 19일부터 지난 15일까지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 지원센터에 접수된 상담 건수는 총 1414건으로 이 중 509건이 피해 사례로 접수됐다. 절반 이상인 350건이 수술 지연 신고였다. 사진은 박민수 복지부 2차관 /임영무 기자 |
◆ 서울대·연세대 의대 교수들 이날 사직 논의
정부의 강경 대응에 의대 교수들의 집단행동은 오히려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오후 5시 서울대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 보라매병원을 온라인으로 연결해 총회를 열고 구체적인 사직서 제출 시기 및 방법, 사직 이후 진료 형태 등을 논의한다.
당초 서울의대 교수협 비대위는 이날까지 정부가 사태 해결을 위한 방안을 도출하지 않을 경우 교수들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그러나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되고 오늘 25일부터 대학별로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합의하면서 일정에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방재승 서울의대 교수협 비대위원장이 전국 의대 교수 비대위원장도 맡고 있다.
방재승 교수는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교수가 사직서를 내는 것은 교수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라며 그 전에 해법을 찾아달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방 교수는 "인생의 모든 것을 걸어 온 교수직을 던지는 것인데 오죽하면 그렇겠냐"며 "이 사태가 4월로 넘어가면 의대생 유급, 전공의 행정처분 명령, 대형병원 줄도산 파산으로 이어지고 의료는 완전히 무너진다"고 강조했다.
세브란스병원과 용인세브란스병원, 강남세브란스를 수련병원으로 두고 있는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도 이날 오후 5시 전체 교수회의를 개최하고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이날 회의에는 전임교원, 비전임교원, 진료교수 등 총 1336명이 참석하며 비공개로 진행된다. 연세의대 교수평의회는 지난 11일 안석균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비대위원장으로 선출하고 비대위 체제로 전환했다.
앞서 또 다른 빅5 병원인 서울성모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둔 가톨릭의대 교수협 비대위와 울산의대 교수협 비대위도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삼성서울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두고 있는 성균관의대 교수협도 비대위를 출범, 정부가 의료공백 사태 해결에 나서지 않으면 의료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이날 성명을 내고 정부를 향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합리적 의료정책을 원한다"며 "조건 없는 대화를 원한다"고 요구했다. 전의교협은 지난 14일 긴급총회를 열고 집단사직이 아닌 개별사직으로 방향을 정했다.
개원의들도 의사 집단행동에 동참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장은 "지금까지 개원의들이 환자들 접근성을 위해 주말이나 야간에 진료를 해왔는데, 이번에 자연스럽게 단축진료를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며 "자발적으로 그런 의견이 나오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 회장은 "이번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해결이 돼도 과거처럼 돌아가진 않을 것"이라며 "의사들이 너무 상처를 받았다. 동네에서 주말이나 야간에 진료하는 것이 아마 점점 축소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휴학 신청하는 의대생도 증가 추세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날 기준 학칙상 요건에 맞게 휴학을 신청한 의대생은 누적 7594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의대생의 40.4%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