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 파장] 전공의 사직 한 달, 끝이 안 보인다
입력: 2024.03.17 00:00 / 수정: 2024.03.17 00:00

남은 의료진 피로 누적…PA 간호사·공보의로는 역부족
전공의 면허정지·의대생 유급 위기에 교수들 25일부터 사직


정부의 의과대학 증원 추진에 반발한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촉발된 의료공백 사태가 어느덧 한 달이 됐다. 전체 전공의의 93%에 달하는 1만1994명이 근무지를 이탈했고, 전국 40개 의대에서는 휴학을 신청한 학생이 7000명에 육박했다. /박헌우 기자
정부의 의과대학 증원 추진에 반발한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촉발된 의료공백 사태가 어느덧 한 달이 됐다. 전체 전공의의 93%에 달하는 1만1994명이 근무지를 이탈했고, 전국 40개 의대에서는 휴학을 신청한 학생이 7000명에 육박했다. /박헌우 기자

[더팩트ㅣ조소현·황지향 기자] 정부의 의과대학 증원 추진에 반발한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촉발된 의료공백 사태가 어느덧 한 달이 됐다. 전체 전공의의 93%에 달하는 1만1994명이 근무지를 이탈했고, 전국 40개 의대에서는 휴학 신청 학생이 7000명에 육박했다. 의대 교수와 전임의, 간호사 등이 의료현장을 지켰으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피로도는 극에 달했다. 설상가상 정부의 전공의 면허정지 처분 절차 돌입과 의대생 휴학 승인 불허 방침으로 양측 갈등의 골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의대 교수들마저 제자들을 지키기 위해 집단사직을 결의하고 있어 이번 사태의 중대 고비가 될 전망이다.

◆ "이런 식으로 가면 견디지 못할 것"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한 달이 지난 17일 의료현장은 한계에 도달했다. 전공의 복귀 움직임이 미미하고 사태가 기약 없이 길어지면서 남은 의료진의 불만은 쌓이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A 교수는 "오전 7시30분 출근해 외래를 보고 오후에는 회진을 돈다.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는 당직을 선다"며 "이번 달에 7번 야간당직을 하고 3번 주간당직을 설 것 같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나올 것 같다"고 했다.

전공의들 업무를 떠맡고 있는 간호사들도 피로 누적을 호소하고 있다. 수도권 모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B 간호사는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가 지금 의사 일을 하고 있다"며 "기존 병동 간호사를 PA 간호사로 데려갔기 때문에 그 공백은 남아 있는 간호사들이 채우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 모 상급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C 간호사는 "병원 상황이 아주 혼란스럽다"며 "당일에 결정되는 사항들이 많아서 부서 이동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정부가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PA 간호사를 적극 활용하고, 최근에는 공중보건의사(공보의)와 군의관까지 파견했지만 역부족인 모양새다. 서울의 이른바 '빅5' 병원에 파견된 한 2년차 공보의는 "전공의는 교수들 지도 아래 수련하고 전문성을 쌓는 의사인데, 그 빈자리에 들어가는 게 모순"이라며 "우리처럼 1차 병원에 종사하는 일반의와는 전혀 다른 분야다. 너무 준비된 게 없는 상태에서 병동에 혼자 투입돼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5일부터 수련병원 100곳에 대한 현장점검을 실시, 업무개시명령 위반이 확인된 전공의를 대상으로 등기우편을 통해 면허정지 행정처분 사전통지서를 보냈다. 통지서를 받은 전공의들은 명시된 기한까지 의견을 제출해야 한다. /임영무 기자
보건복지부는 지난 5일부터 수련병원 100곳에 대한 현장점검을 실시, 업무개시명령 위반이 확인된 전공의를 대상으로 등기우편을 통해 면허정지 행정처분 사전통지서를 보냈다. 통지서를 받은 전공의들은 명시된 기한까지 의견을 제출해야 한다. /임영무 기자

정부의 미복귀 전공의 무더기 면허정지 처분도 임박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5일부터 수련병원 100곳에 대한 현장점검을 실시, 업무개시명령 위반이 확인된 전공의를 대상으로 등기우편을 통해 면허정지 행정처분 사전통지서를 보냈다. 통지서를 받은 전공의들은 명시된 기한까지 의견을 제출해야 한다.

전공의들은 민법 660조를 근거로 사직서를 제출한지 한 달이 지나는 오는 19일부터 사직서 효력이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해당 조항이 '고용기간 약정이 없는' 근로자의 경우에만 해당된다고 판단, 수련기간이 정해진 전공의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르면 이달 말부터 면허정지 처분 사례가 나올 것이란 관측이다.

전병왕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에서 "현재 행정처분 예고가 나가고 의견 제출 기회를 주는 등 절차를 진행 중"이라며 "처분 통지가 우편으로 도달해야 하고 반송되면 재차, 3차 진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지만 원칙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강조했다.

◆ "서울대 교수 사직서 제출 이후 전국적으로 봇물 터질 것"

의대 증원 추진에 반발해 휴학 신청 및 수업 거부 등으로 집단행동에 나선 의대생들은 유급 위기에 처했다. 이번 주 휴학 신청 마감일을 앞둔 대학들은 의대생 집단유급을 우려하고 있다. 개강을 연기한 대학은 다소 여유가 있지만, 이미 지난 4일 개강한 연세대와 경희대, 한양대 의대 등은 당장 비상이 걸렸다. 절차에 맞지 않은 휴학 신청 이후 수업 거부 등으로 단순 결석 처리될 경우 유급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통상 대학들은 수업일수의 4분의 1 또는 3분의 1을 초과해 결석하면 F 학점을 부여한다. 의대는 F 학점이 하나라도 있으면 유급 처리한다. 휴학 신청 마감일이 지나 결석에 따른 F 학점으로 인해 유급될 경우 등록금은 돌려받을 수 없다.

일부 대학은 비대면 수업 등으로 유급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실시간이 아닌 정해진 기간 내 강의를 들어도 출석이 인정되는 비대면 수업으로 추후 돌아올 학생들의 출결을 관리해 유급을 막겠다는 의도다. 서울에 있는 한 의대 교수는 "학생들이 수업에 오지 않아 유급되면 곤란하다"며 "비대면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늦게 돌아오더라도 언제든지 출석이 인정되도록 강의를 인터넷에 올려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대 교수들의 집단행동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전공의와 의대생 등 제자들이 위기에 놓이자 의료현장 최후의 보루인 의대 교수들이 사직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기사 내용과 무관 /뉴시스
의대 교수들의 집단행동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전공의와 의대생 등 제자들이 위기에 놓이자 의료현장 최후의 보루인 의대 교수들이 사직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기사 내용과 무관 /뉴시스

의대 교수들의 집단행동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전공의와 의대생 등 제자들이 위기에 놓이자 의료현장 최후의 보루인 의대 교수들이 사직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지난 14일 긴급총회를 열고 의대생 집단휴학과 전공의 미복귀 사태에 따른 교수들의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교수들 대부분이 "사직 외 방법이 없다"는 입장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빅5 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둔 가톨릭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와 울산의대 교수협 비대위도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세브란스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을 각각 수련병원으로 둔 연세대와 성균관대 의대 교수들도 집단행동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연세의대 교수 비대위는 오는 18일 회의를 열고 대응 방안을 결정할 방침이다. 성균관의대 교수협도 비대위를 출범, 다른 대학과 협력하기로 했다.

특히 전국 의대 교수 비대위는 지난 15일 온라인 회의를 열고 25일 이후 대학별로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결정하면서 이번 사태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25일은 면허정지 사전통지서를 받은 전공의들의 의견 제출 마지막 날이다. 복지부가 발송한 통지서에는 수령 후 기한 내 의견을 제출하지 않으면 의견이 없는 것으로 간주해 직권으로 처분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의대 교수들은 사직서를 내더라도 환자 진료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지만 25일 이후 전공의 면허정지가 현실화할 경우 사직서 수리 전 병원을 떠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국 의대 교수 비대위 회의에는 강원대·건국대·건양대·계명대·경상대·단국대·대구가톨릭대·부산대·서울대·아주대·연세대·울산대·원광대·이화여대·인제대·전북대·제주대·충남대·충북대·한양대 등 20개 의대가 참여했다.

전국 의대 교수 비대위원장이자 서울의대 교수협 비대위원장인 방재승 교수는 "사직서 수리가 완료되기 전까지 환자 곁을 떠날 생각은 없다. 응급실과 중환자실 진료를 할 수 있는 선까지 최선을 다해서 환자들을 지킬 생각"이라면서도 "서울대 교수가 사직서 제출을 시작하면 전국적으로 봇물 터지듯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sohyun@tf.co.kr

hya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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