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 파장] 한 치 양보 없는 의·정…'당근과 채찍' 효과는 아직(종합)
입력: 2024.02.27 16:22 / 수정: 2024.02.27 16:22

정부, 진료유지명령 및 의료부담 완화 특례법 제시
의협 "공익 위해 사직 제한? 공산독재 정권"


2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6일 오후 7시 기준 주요 99개 수련병원에서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는 전체의 80.6% 수준인 9909명으로 집계됐다. 사진은 지난 26일 경기 수원시의 한 대학병원. 기사 내용과 무관 /이동률 기자
2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6일 오후 7시 기준 주요 99개 수련병원에서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는 전체의 80.6% 수준인 9909명으로 집계됐다. 사진은 지난 26일 경기 수원시의 한 대학병원. 기사 내용과 무관 /이동률 기자

[더팩트ㅣ조소현 기자]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확대 추진에 반발해 집단 이탈한 전공의들을 향해 진료유지명령을 발령하고 사법처리 기조를 유지하는 한편 의료부담 완화를 위한 특례법 제정을 제시했다. 의사단체는 파국으로 몰아가는 건 정부라며 의대 증원 무효화 없이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양측이 한 치의 양보 없이 팽팽히 맞서면서 위기가 고조되는 모양새다.

27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지난 26일 자로 정당한 사유 없이 수련병원과 계약을 갱신하지 않거나 수련병원 레지던트 과정에 합격하고도 계약을 포기하는 방법으로 진료를 중단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진료유지명령을 발령했다.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을 3월부터 사법처리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복지부는 전날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들을 향해 3월부터 최소 3개월 면허정지 처분과 관련 사법절차를 진행하겠다고 경고하면서도 오는 29일까지 복귀하면 현행법 위반을 최대한 정상 참작하겠다고 밝혔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진료유지명령이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현행 의료법 체계에서 충분히 명령 가능하다는 자문을 받았다"며 "헌법상 기본권인 직업 선택의 자유라는 것은 법률에 따라서, 또 공익이나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서 일정한 범위 내에서 제한이 가능하다. 현재 법적 검토를 마친 상태"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환자의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는 상황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즉각대응팀도 설치했다. 즉각대응팀은 지원팀과 현장출동팀으로 구성, '응급실 뻉뺑이' 등으로 사망 사고가 발생했을 시 응급실 상황 등 병원 측의 대응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파악한다. 현장 출동 시에는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건강보험공단, 소방청, 응급의료센터, 경찰 등과 협업해 업무를 수행한다.

다만 정부는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제정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특례법은 의료인이 책임·종합보험과 공제에 가입할 경우 의료사고에 대한 공소 제기를 면제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료진이 보험과 공제에 가입했을 경우 업무상과실치상과 중과실치상 혐의에 대해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공소 제기를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는 필수의료 분야와 전공의에 대해서는 보험료도 지원할 예정이다.

박 차관은 "법무부와 복지부는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료진들의 사법 위험을 낮추기 위해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안을 함께 성안했다"며 "그간 의료 현장에서 제기한 의견을 반영한 것이며, 의사단체가 요구한 의사 증원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조규홍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차장(보건복지부 장관)이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행정안전부 서울상황센터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임영무 기자
조규홍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차장(보건복지부 장관)이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행정안전부 서울상황센터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임영무 기자

정부의 정책 발표에도 의사들 이탈은 여전한 상황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전날 오후 7시 기준 주요 99개 수련병원에서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는 전체의 80.6% 수준인 9909명으로 집계됐다. 사직서 제출 후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는 8939명(72.7%)이다.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와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는 전날보다 각각 125명과 67명 줄었다. 이는 복지부가 기존에 집계해오던 100곳의 병원 중 자료를 부실하게 제출한 1곳을 제외했기 때문이다. 박 차관은 "1개 병원이 자료를 부실하게 제출했다"며 "시정명령을 내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의대 증원에 반대해 휴학를 신청하는 의대생도 소폭 늘었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날 14개 대학에서 515명의 의대생이 추가로 휴학계를 제출했다. 3개 대학 48명이 휴학을 철회했으며 1개교에서는 요건을 충족하지 않은 휴학 신청자 201명에 대해 반려 조치를 했다. 이에 따라 지난 19일 이후 휴학계를 제출한 의대생은 1만2527명으로 집계됐다.

의사단체는 이날 정부 발표에 즉각 반발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에서 정례 브리핑을 열고 "아무런 문제 없던 의료 현장을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정부"라며 "무리하게 추진하는 의대 정원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먼저 무효화하면 의료계는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나설 수 있음을 알아달라"고 했다.

특히 "공익을 위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 대표적인 국가가 북한이다. 정부가 이같은 주장을 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며 "공산독재 정권에서나 할 법한 주장"이라고 규탄했다.

주수호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이 주장이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라면 4.19 혁명과 87년 민주화 항쟁의 결과로 얻어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는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라며 "정부는 의사라는 직역뿐 아니라 국민 누구에게도 이러한 조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국민 앞에 선포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한 축이 되는 것을 포기했음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것과 다름이 없다"며 "의료 정상화를 위한 행동을 넘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행동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sohyu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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