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 전공의 증가…전임의·인턴 이탈 조짐
정부 "3월부터 면허정지·사법절차 불가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2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주재하고, 전공의들을 향해 "정부는 상황의 엄중함을 직시하고 마지막으로 호소한다"며 "29일까지 여러분들이 떠났던 병원으로 돌아온다면 지나간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24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의 접수 창구에서 대기 중인 환자들. 기사 내용과 무관 /서예원 기자 |
[더팩트ㅣ사건팀]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한 전공의들 이탈이 일주일째 이어지는 가운데 임용을 포기하는 전임의와 인턴까지 속출하고 있다. 정부는 병원 복귀 마지노선을 오는 29일로 제시하며 의사들을 향해 사실상 최후통첩했지만 의사단체는 협박성 발언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전임의들 재계약 시점인 3월 이후 최악의 의료대란이 닥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2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전공의들을 향해 "정부는 상황의 엄중함을 직시하고 마지막으로 호소한다"며 "29일까지 여러분들이 떠났던 병원으로 돌아온다면 지나간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밝혔다.
특히 중대본은 3월부터는 법과 원칙에 따라 최소 3개월 면허정지 처분과 관련 사법절차를 진행하겠다고 경고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면허정지 처분은 사유가 기록에 남아 해외 취업 등 이후 진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달라"며 "3월부터는 수사와 기소 등 추가적인 사법 처리도 불가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사실상 최후통첩에도 전공의들 이탈은 확산하고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3일 오후 7시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에서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는 전체의 80.5% 수준인 총 1만34명으로 집계됐다. 사직서 제출 후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는 9006명으로 조사됐다.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는 전체의 72.3% 수준이다. 발표일을 기준으로 사직서 제출자가 1만명, 근무지 이탈자가 9000명을 넘은 건 처음이다.
이에 따라 의료현장 혼란도 이어졌다. 중앙응급의료센터 '응급의료 현안대응 현황판'에 따르면 26일 오후 1시 기준 전국 409개 응급의료기관의 응급실 일반병상 가동률은 37.0%로 나타났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기 직전인 지난 19일 오후 1시 48.4%보다 하락한 것이다. 이날 오후 1시 기준 응급실 소아병상 가동률은 13.2%, 응급실 수술실 가동률은 34.3%까지 떨어졌다. 지난 19일 오후 1시 응급실 소아병상과 수술실 가동률은 각각 27.2%와 45.9%였다.
서울의 이른바 '빅5' 병원들은 중증·응급 환자에 우선순위를 두고 수술을 30~50% 정도 줄였으나 교수와 전임의 등 남은 인력으로 대처하기에 역부족인 모양새다. 세브란스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은 전공의 이탈이 본격화한 지난 20일 이후 수술 일정을 평소의 절반 정도인 45~50%만 유지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수술 일정을 평소 대비 40% 정도 줄였으며, 서울성모병원도 30% 정도 축소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환자들 중증도나 응급도를 고려해 응급 및 필수의료 유지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며 "가용할 수 있는 인력 내에서 최대한 정상 진료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내달 3일 서울 여의도에서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를 진행하기로 했다. 사진은 지난 25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전국 의사 대표자 확대 회의' 후 대통령실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는 의사들 /서예원 기자 |
문제는 전공의에 이어 전임의와 인턴들마저 무더기 이탈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주요 병원에서는 내달 1일 재계약을 앞둔 일부 전임의들이 계약을 포기하고 병원을 떠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공의 수련을 시작해야 하는 의대 졸업생들도 대부분 병원 인턴 임용을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아산병원은 신규 인턴 132명, 삼성서울병원은 신규 인턴 123명 중 대부분이 임용을 포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대병원도 내달 1일 첫 출근 예정이던 신규 인턴들이 무더기로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전공의들 집단 이탈의 빈자리는 교수와 전임의가 메우고 있다. 전임의와 인턴까지 집단행동에 동참할 경우 3월부터 최악의 의료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한 빅5 병원 관계자는 "인턴 합격 상태에서 대다수가 임용을 포기할 것 같다"며 "정확한 건 이번 주까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빅5 병원 관계자는 "현재 교수와 전임의 위주로 수술과 진료 등이 운영되고 있지만 3월이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근무에 대한 부담이 큰 상황에서 2주 정도 지나면 한계점이 올 수 있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수들 중재에 의·정 협상 돌파구? '글쎄'
정부와 의사단체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전국 의대 교수들은 중재 역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오전 전공의들과 긴급 회동을 하고 사태 출구전략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 의대 교수협 비대위는 "전공의들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현장을 떠나고 있는 것이며, 이를 돌리기 위한 대책은 협박이나 강제가 아니라 설득에 의해야 한다"며 정부에 대화를 요구했다.
성균관대 의대 교수협의회도 전날 "현 의료대란의 피해는 모두 중증·난치성 환자에게 돌아가고 내달이 되면 의료대란은 재앙으로 바뀔 것"이라며 정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 모두 양보할 것을 촉구했다. 연세대와 순천향대 등 의대 교수들도 잇따라 성명을 발표, 정부와 의협 간 대화를 촉구했다.
정부는 오는 29일까지 마지막 협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정부와 의사단체 서로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다, 특히 의대 2000명 증원을 두고 양측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면서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에게 3월부터 사법절차를 진행하겠다는 정부 발표에 "믿을 수 없는 수준의 협박"이라고 규탄했다. 비대위는 "정부가 의료계와 충분한 대화를 통해 순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정부는 현 사태의 모든 책임을 의사에게 뒤집어 씌우고, 오로지 처벌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불통 행보만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협 비대위는 내달 3일 서울 여의도에서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를 진행하기로 했다.
검찰과 경찰은 전공의 집단행동 주동자에 대한 엄정 수사 기조도 재차 강조했다. 서울중앙지검과 서울경찰청 등은 이날 검경 실무협의회를 열고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의료계의 불법 집단행동을 신속·엄정하게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향후 긴밀히 협력해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