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728명 업무개시 명령 발령
전공의들, 긴급 임시대의원 총회
'대한전공의협의회 2024년도 긴급 임시대의원총회'가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가운데 각 병원 전공의 대표 및 대의원들이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박헌우 기자 |
[더팩트ㅣ조소현 기자]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추진에 반발하며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결국 집단행동에 돌입했다. 주요 병원 전공의들은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났고, 휴학을 신청한 전국의 의대생은 1000명을 넘었다. 정부는 업무개시 명령을 내리는 등 강경 대응하는 한편,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응급 전문의 진찰료 수가를 인상하고 입원 환자 진료 보상을 늘리는 등 정책 지원에도 나섰다.
2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날 오후 11시 기준 전국 주요 100개 수련병원 소속 전공의 55% 수준인 6415명이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사직서 제출자의 25% 수준인 1630명이 근무지를 이탈했다. 세브란스병원과 서울성모병원 등에서 상대적으로 근무지 이탈이 많았고, 나머지는 이탈자가 없거나 소수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세브란스병원과 서울성모병원을 비롯해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이른바 ‘빅5’ 대형병원에서는 1000명이 넘는 전공의가 사직 의사를 밝히고 20일 오전 6시부터 근무를 중단했다. 빅5 병원 소속 전공의는 총 2745명으로 전체 수련병원 전공의 1만3000명의 21%를 차지한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면서 현장에서는 수술과 진료에 차질이 빚어졌다. 필수의료를 맡는 인력이 줄면서 수술이 취소되거나 입원이 연기되는 등 혼란이 가중됐다. 입원 불가 통보를 받거나 퇴원을 권유받는 경우도 속출했다. 예약하지 않은 환자들의 외래 진료도 늦어졌다.
서울대병원에서 제왕절개로 아기를 출산한 30대 A 씨는 오는 23일 실밥을 풀기로 예정돼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남편 B(38) 씨는 "아내가 제왕절개 수술을 해서 금요일에 실밥을 제거해야 하는데 전공의가 파업했다며 갑자기 다른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며 "당황스러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세브란스병원 어린이병원에 입원한 소아 환자들은 줄줄이 퇴원 절차를 밟았다. 30대 C 씨는 "(아이가) 다행히 집단행동 직전에 수술을 받았다"며 "경과만 보면 되는 단계라 크게 문제는 없었다"고 했다. 다만 "주변에서 수술하려고 입원했다가 하루 이틀 만에 다시 짐을 싸서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사진은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집단행동 대응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 임영무 기자 |
병원들은 교수들로 대체 인력을 배치하는 등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응급도와 중증도에 따라 환자들의 진료 및 수술 일정도 조율했다. 세브란스병원에선 이달 말까지 예정된 수술 절반 이상이 취소됐으며, 삼성서울병원도 이날 예정된 수술 30% 정도가 취소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성모병원 관계자는 "어제까지 전공의 290중 190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오늘 실질적으로 근무하고 있는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며 "심혈관, 뇌혈관, 심장 수술 등 급한 환자의 경우 교수들이 애쓰고 있어서 차질은 없는 상태인데, 지금은 괜찮아도 사태가 장기간 이어질 경우 문제"라고 걱정했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도 "어제와 같이 비상체제로 대응하고 있다"면서 "응급수술을 절반 수준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은 한자리에 모여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은 이날 낮 12시부터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의협) 회관에서 '2024년도 긴급 임시대의원총회'를 열었다. 총회에는 박단 대전협 회장과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 대표자들이 참석했다. 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인 박 회장도 전날 사직서를 냈다. 대전협 관계자는 "오늘 할 얘기 다 할 것"이라며 "회의가 저녁 늦게까지 이어질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의대생들의 집단휴학 신청도 이어졌다. 이화여대 의대생 280여명은 이날 학교에 휴학계를 제출했다. 전체 재학생 중 1~2명을 제외한 전원이 휴학에 동참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양대와 동국대, 아주대, 경상국립대 의대생 등도 일제히 성명을 내고 휴학에 동참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날 오후 6시 기준 전국 40개 의대 중 총 7개 의대에서 1133명이 휴학 신청을 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4명은 군 휴학과 개인사정 휴학 등으로 요건과 절차를 준수한 것이라 휴학이 허가됐다고 교육부는 설명했다.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이 이어지면서 의대생들의 집단휴학도 확산할 전망이다. 정부는 엄정한 학사관리를 당부했으나 학교 측은 학생들이 절차상 요건에 맞게 휴학을 신청하면 막을 수 있는 근거가 없어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학교 측이 휴학 신청을 승인하지 않을 경우 수업 거부 형태로 집단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연세대 관계자는 "학생회에서 일괄 모아서 서면 제출하겠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언제일지는 모르겠다"고 전했다. 이화여대 관계자는 "휴학계를 제출하더라도 3월에 마지막으로 휴학을 할지, 등록을 할지 정하는 기간이 있다"며 "제출하면 학교가 거부할 수 없어 쉽지는 않겠지만 휴학하지 않도록 학생들을 설득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으로 '의료대란'이 가시화하면서 정부가 공공 의료기관과 군 병원을 총동원하기로 한 20일 오전 경기 성남시 분당구 국군수도병원 응급실에 민간 환자 응급진료 안내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2024.02.20 사진공동취재단 |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집단행동 본격화에 정부는 강경 대응했다. 복지부는 이날 728명에 대해 업무개시 명령을 발령했다. 앞서 업무개시 명령을 내린 103명을 포함하면 총 831명이 명령 대상에 해당한다. 복지부는 50개 병원을 대상으로 현장점검을 실시해 근무지에 나타나지 않은 전공의에게는 다시 업무개시 명령을 내릴 예정이다.
특히 정부는 이날 대형병원 응급실의 진료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권역·전문응급의료센터의 수술 등 응급의료 행위와 전문의 진찰료 수가와 경증환자 전원에 따른 회송 수가를 인상한다고 밝혔다. ‘입원환자 비상진료 정책지원금’을 신설해 입원 환자를 진료하는 전문의의 보상도 늘린다. 역외상센터 인력·시설·장비는 응급실의 비외상진료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인턴이 필수 진료과에서 수련 중 응급실·중환자실에 투입되더라도 해당 기간을 필수 진료과 수련으로 인정하는 등 수련 이수 기준도 완화한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현재 각급 병원들이 정상 체계에서 비상진료체계로 전환하는 과정에 있다 보니 (피해) 사례들이 발생할 수 있다"며 "비상진료 대응체계가 안착이 되면 좀 더 안정적으로 진료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sohyun@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