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5 병원, 20일 비상체제 돌입
정부, 728명 대상 업무개시 명령
"오죽하면 싶지만 환자만 힘들어"
20일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이른바 '빅5' 대형병원 소속 전공의들 중 1000명이 넘는 전공의가 사직 의사를 밝히고 오전 6시부터 근무를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지난 19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기사 내용과 무관 /장윤석 기자 |
[더팩트ㅣ사건팀] 20일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인 30대 A 씨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다. 지난 15일 입원해 다음 날 제왕절개로 아기를 출산한 A 씨는 오는 23일 실밥을 풀기로 예정돼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남편 B(38) 씨는 "아내가 제왕절개 수술을 해서 금요일에 실밥을 제거해야 하는데 전공의가 파업했다며 갑자기 다른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며 "당황스러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전날 종양 제거 수술을 마친 김모(46) 씨도 이날 갑자기 병원을 옮기라는 통보를 받았다. 담당 전공의는 김 씨에게 '파업 때문에 오지 못할 것 같으니 상급기관으로 가라'고 했다. 김 씨는 "(전공의) 선생님이 '다른 선생님이 오셔서 처치를 해주실 거니 걱정 말라'고 해 괜찮았다"며 "무책임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신장이 좋지 않아 검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을 찾은 60대 이모 씨는 의사 면담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다행히 검사는 받았지만 구체적인 상담을 받지는 못했다. 이 씨는 "선생님 면담이 안 된다고 하니 불편했다"며 "전공의들이 업무를 중단하면 암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나 생명이 위급한 환자들은 어쩌라는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추진에 반발하며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난 이날 오전 서울 주요 대형병원에서는 수술과 진료에 차질이 빚어졌다. 필수의료를 맡는 인력이 줄면서 수술이 취소되거나 입원이 연기되는 등 혼란이 가중됐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면서 입원 불가 통보를 받거나 퇴원을 권유받는 경우도 속출했다.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어린이병원에 입원한 소아 환자들은 줄줄이 퇴원 절차를 밟았다. 30대 C 씨는 "(아이가) 다행히 집단행동 직전에 수술을 받았다"며 "경과만 보면 되는 단계라 크게 문제는 없었다"고 했다. 다만 "주변에서 수술을 하려고 입원했다가 하루 이틀만에 다시 짐을 싸서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도 병실에 입원 중이던 일부 환자들이 퇴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간염 환자인 60대 윤모 씨는 "병실이 많이 비었다. 앞 쪽 6인실 병실에서 환자들이 다 빠졌다"고 했다. 간암 환자인 안모(60) 씨도 "나이가 많으신 분들을 요양병원으로 이전시키고 아주 급하지 않으신 환자분들에게는 퇴원했다가 3월에 다시 오라고 했다"며 "6인실을 쓰는데 3명이 빠졌다"고 했다.
사진은 지난 19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기사 내용과 무관 /장윤석 기자 |
서울대병원에서도 퇴원 사례가 속출했다. D(62) 씨는 "원래 하루 이틀 후에 퇴원하기로 돼 있었는데 갑자기 무조건 퇴원하라고 했다"며 "치료를 더 받아야 하는데 절반만 받고 나가는 느낌"이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또 다른 환자 E 씨도 "다른 병실에도 사람을 다 내보내고 있다. 6인실을 쓰는데 지금 2명만 남았다"고 했다.
이날 예약하지 않은 환자들의 외래 진료도 늦어졌다. 오전 7시35분 서울아산병원을 찾은 조모(30) 씨는 접수처에서 대기번호 29번을 뽑았다. 전날 밤부터 배가 아파 경기 분당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 아산병원까지 왔다는 조 씨는 진료가 가능하냐고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오늘 진료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였다. 접수처 직원은 "오늘 전공의 파업 여파도 있다"며 "오전 8시30분부터 진료 시작이고 본격적으로는 9시부터인데, 확답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오전 8시30분 서울성모병원을 찾은 40대 고모 씨도 불편을 겪어야 했다. 류마티스 관절염 때문에 병원 찾았는데 평소보다 대기 시간이 길어서 1시간을 넘게 기다린 후에야 진료를 받았다. 고 씨는 "평소와 달리 대기 시간이 길었다"며 "의사들이 얼마나 답답하면 그럴까 생각도 하지만 이러면 환자만 더 힘들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이른바 '빅5' 대형병원 소속 전공의들 중 1000명이 넘는 전공의가 사직 의사를 밝히고 오전 6시부터 근무를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빅5 병원 소속 전공의는 총 2745명으로 전체 수련병원 전공의 1만3000명의 21%를 차지한다.
이에 따라 병원들은 교수들로 대체 인력을 배치하는 등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응급도와 중증도에 따라 환자들의 진료 및 수술 일정도 조율했다. 세브란스병원에선 이달 말까지 예정된 수술 절반 이상이 취소됐으며, 삼성서울병원도 이날 예정된 수술 30% 정도가 취소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성모병원 관계자는 "어제까지 전공의 290중 190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오늘 실질적으로 근무하고 있는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며 "심혈관, 뇌혈관, 심장 수술 등 급한 환자의 경우 교수들이 애쓰고 있어서 차질은 없는 상태인데, 지금은 괜찮아도 사태가 장기간 이어질 경우 문제"라고 걱정했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도 "어제와 같이 비상체제로 대응하고 있다"면서 "응급수술을 절반 수준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날 오후 11시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 소속 전공의 55% 수준인 6415명이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사직서 제출자의 25% 수준인 1630명이 근무지를 이탈했다. 복지부는 728명에 대해 업무개시 명령을 발령했다. 앞서 업무개시 명령을 내린 29명을 포함하면 총 757명이 명령 대상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