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최윤종‧최원종 결국 무기형…사형 선고 신중한 이유
입력: 2024.02.12 00:00 / 수정: 2024.02.12 00:00

27년간 사형 집행하지 않은 '실질적 사형 폐지국'
'특별한 사정' 있을 때만 사형 인정한 대법원 판례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사상자를 낸 조선(33)이 지난달 31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사진은 조선이 지난해 7월28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관악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는 모습./뉴시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사상자를 낸 조선(33)이 지난달 31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사진은 조선이 지난해 7월28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관악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는 모습./뉴시스

[더팩트ㅣ김시형 기자] 서울 관악구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 등 큰 공분을 일으킨 흉악범죄 피고인들이 1심에서 잇따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검찰 구형량은 모두 사형이었으나 법원은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한국이 '실질적 사형폐지 국가'인데다 사형 선고에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는 기존 판례에 충실했다는 분석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2부(조승우 부장판사)는 지난달 31일 이른바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의 피고인 조선의 선고 공판에서 검찰의 사형 구형에 대해 "범행 책임 정도와 형벌에 비춰 정당하다고 볼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분명히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양형 이유를 설명하며 조선의 '가정환경'도 언급했했다. 재판부는 "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친척 집을 전전하며 불안정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성인이 된 후에도 원만한 사회 활동을 하지 않은 채 대부분의 시간을 게임과 동영상 시청으로 보냈다"고 덧붙였다.

최윤종 사건을 심리한 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정진아 부장판사)도 "어렸을 때부터 가정의 따뜻한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은둔형 외톨이로 수년 간 생활했던 점, 우울증과 인격장애를 앓고 제때 치료받지 못해 왜곡된 사고로 충동적 행동 통제 능력이 부족했던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검찰 요청대로 사형을 선고하지 않은 이유를 놓고는 "우리나라는 1997년 이후 사형 집행이 되지 않아 사실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돼 있다"며 "생명을 박탈하는 형벌을 내릴 땐 매우 신중해야 하기에 사형보다는 사회에서 영구히 격리시켜 재범 가능성을 차단하고 수형 기간동안 진심으로 참회할 시간을 갖게 하는게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지난 1997년 12월30일 23명을 마지막으로 27년 동안 사형 집행을 하지 않은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된다. 법원으로서는 이같이 전 세계적으로 공인된 상태를 깨기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곽준호 형사전문 변호사는 "재판부 입장에서는 27년간 사형이 실제로 집행되지 않는 현실을 가장 의식할 수밖에 없다"며 "아무리 선고를 한다고 한들 집행이 되지 않으면 법원 권위에 우려도 있기에 현실적으로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등산로에서 30대 여성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를 받는 최윤종(30)이 지난달 22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사진은 최윤종이 지난해 8월25일 오전 서울 관악구 관악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송치되는 모습. /장윤석 기자
서울 관악구 신림동 등산로에서 30대 여성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를 받는 최윤종(30)이 지난달 22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사진은 최윤종이 지난해 8월25일 오전 서울 관악구 관악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송치되는 모습. /장윤석 기자

대법원 판례도 사형 선고에 신중을 기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대법원은 사형을 "인간의 생명을 박탈하는 냉엄한 궁극의 형벌로서 사법제도가 상정할 수 있는 극히 예외적인 형벌"이라고 정의한다.

이에 따라 "범행에 대한 책임의 정도와 형벌의 목적에 비춰 누구라도 그것이 정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허용된다"고 판시한다.

'특별한 사정'이라는 판단을 위한 조건은 범인의 나이, 직업과 경력, 성행, 지능, 교육정도, 성장과정, 가족관계, 전과의 유무,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의 동기, 사전계획의 유무, 준비의 정도, 수단과 방법, 잔인하고 포악한 정도, 결과의 중대성, 피해자의 수와 피해감정, 범행 후의 심정과 태도, 반성과 가책의 유무, 피해회복의 정도, 재범의 우려 등 20개에 이른다.

이같은 사항을 철저히 심리한 뒤 사형의 선고가 정당화될 수 있는 사정이 밝혀진 경우에 한해 비로소 사형을 선고할 수 있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사형제의 대안으로 논의되는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도 작용한다. '가석방 없는 무기형'을 신설한 형법 개정안은 지난해 10월30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14명의 사상자를 낸 '분당 흉기 난동범' 최원종 재판부도 지난 1일 1심 선고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된 수형자에게 가석방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사회에서 완전히 격리하는 효과를 달성하는 방법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현행법상 무기징역을 선고받아도 20년이 지나면 가석방이 가능하다. 이에 최윤종 사건 피해자 유족은 "무기징역 결과가 실망스럽지만 가석방은 더더욱 절대 없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가석방 없는 종신형도 도입까지 갈 길이 멀다. 대법원은 사형제 폐지 없이 이 제도를 도입하면 일반 범죄까지 선고가 남용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운영하다가 폐지하는 국가들도 적지않다는 설명이다.

가석방 없는 무기형이 실현되면 현재 남아있는 무기수들을 통제할 유일하다시피한 수단이 사라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으로 구속된 피의자 최원종이 10일 오전 경기 성남 수정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성남=임영무 기자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으로 구속된 피의자 최원종이 10일 오전 경기 성남 수정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성남=임영무 기자

이같은 한계에도 법원이 과감히 사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검찰 출신의 공일규 변호사는 "가석방 없는 무기형은 아직 사법이 아닌 입법의 영역"이라며 "법원이 사형 선고에 부담이 있더라도 입법자가 아직 사형을 존치시켜두고 있는 이상 법원에게 사형을 선고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형 집행을 못하는 것과 사형 선고를 하지 않는 건 별개"라고 강조했다. 공 변호사는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이 지난해 사형 집행시설을 점검하기도 했고 법정형으로서 사형 선고는 양형 측면에서 충분히 의미 있다. 집행을 못한다는 이유로 선고를 하지 않는 건 법원이 책무를 방기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은 조선‧최윤종‧최원종 1심 판결에 모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검찰은 "사안이 중대하고 재범 위험성이 높으며 유족과 피해자들이 법정 최고형 엄벌을 호소하고 있다"고 사형 필요성을 강조했다.

rocker@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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