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카법 등 피해자 중심 법안들
"국회에서 더 잘 추진할 수 있을 것"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사퇴하면서 한 장관이 재임기간 동안 법무부가 입법예고했던 법안 등 장관으로서 발자취에 이목이 쏠린다. 한 장관이 21일 오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대강당에서 진행된 이임식에 참석해 이임사를 하고 있다./배정한 기자 |
[더팩트ㅣ정채영 기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사퇴했지만 재임기간 동안 역점 추진했던 법안들은 빛을 볼 날을 기다리고 있다. 주로 피해자들의 입장을 존중하는 법안이라는 점에서 많은 공감을 샀으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받았다.
21일 오후 5시 한 장관은 장관 이임식을 치르고 정부과천청사를 떠났다. 한 장관은 이임사를 통해 "동료시민들의 삶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게 하고 싶었다"며 "특히 서민과 약자의 편에 서고 싶었다"고 밝혔다.
1년 7개월 재직 기간 동안 한 장관은 △스토킹의 반의사 불벌죄 조항 폐지 △성범죄자 주거를 제한하는 한국형 제시카법 △촉법소년 연령 하향 등의 법안을 입법예고했다.
◆한국형 제시카법·스토킹 범죄 반의사불벌죄 폐지 등 피해자 중심
지난 10월 법무부가 입법 예고한 이른바 '한국형 제시카법'은 13세 미만 아동 상대 범행을 3번 이상 저지른 성범죄·전자장치 부착 대상자 중 성범죄로 10년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사람에게 '국가 등이 운영하고 법무부 장관이 정한 지정거주시설'을 출소 후 거주지로 지정하는 내용이 뼈대다.
미국의 경우 유치원이나 학교 등 아동 시설과 거리 기준을 두고 거주를 제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한 장관이 내놓은 한국형 제시카법은 일정 지역에 거주할 수 없는 형식을 뼈대로 한다. 한 장관은 "거주지 제한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도 국가의 관리를 강화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도출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은 피하지 못했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아동 대상 성범죄자더라도 일정한 지역에 주거를 제한하는 것은 인권 침해 여지가 너무 크다"이라며 "현실성이 떨어지는 법안"이라고 지적했다.
'신당역 살인사건'과 '신변보호 여성 가족 살인사건' 등 스토킹 강력범죄가 계속되자 '스토킹 반의사 불법죄 조항 폐지에 대한 개정안'을 내놓기도 했다. 반의사불벌죄 규정에 따른 합의가 2차 스토킹 범죄나 보복 범죄를 부른다는 이유에서다. 이 법안은 올해 6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최근에는 '국가배상법 개정안'이 화두였다. 이달 15일 군 복부 중 제때 백혈병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고 홍정기 일병의 유족을 만난 한 장관은 "이 법에 기대를 거시는 분들이 많다"며 "분명히 답을 낼 거라는 약속을 드린다"고 말했다.
홍 일병의 유족은 군 의료당국의 과오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사망보상금 외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손해배상 소송을 냈으나 법원은 이중 배상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가배상법 개정안은 홍 일병처럼 전사·순직한 군인·경찰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공무원이라고 해서 실질적인 배상을 다 받지 못한다면 문제가 있다"며 "입법적인 개선 의지를 보인 것만으로 국가가 국민에 대한 책임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1일 오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대강당에서 진행된 이임식에 참석해 직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청사를 떠나고 있다./배정한 기자 |
◆ 같은 미성년자도 가해자는 '처벌 강화' 피해자는 '보호 강화'
촉법소년 연령 하향 논란도 뜨거운 이슈다. 법무부는 지난해 11월 형사 미성년자 기준을 현행 만 14세 미만에서 만 13세 미만으로 낮추는 내용을 담은 소년법·형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촉법소년 기준을 현실화해 소년범죄 예방효과를 기대한다는 목적이었다.
무작정 연령을 낮추기보다는 제도적 보완이 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연령을 낮추더라도 가정에서 보호 내지 지도를 받지 못하면 결국 아무 소용이 없다"며 "국가가 이처럼 사회적으로 소외된 아이들을 어떻게 뒷받침할지 논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처벌만능주의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법원행정처 또한 "13세 소년이 형사책임능력을 갖췄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며 반대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국무회의를 통과한 빚대물림 방지법(민법 개정안)은 한 장관이 발의한 법안은 아니다. 미성년자 관련 법안으로서 보호를 강화한다는 의미에서 촉법소년 하향과는 정 반대의 결을 가진다. 이 개정안은 상속받는 재산보다 빚이 더 많다면 상속을 포기하거나 한정승인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 장관은 "지난 정부부터 추진돼 온 것을 이어가는 것으로 미성년자 보호를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이라며 "법무부는 정치나 진영논리가 아니라 오직 국민의 이익만을 기준으로 좋은 정책은 계속 이어나가고 나쁜 정책은 과감히 바꿀 것"이라고 의지를 보였다.
21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사의를 밝힌 한 장관은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수락했다. 국민의힘은 이르면 22일 비대위원장으로 임명할 것으로 보인다. 한 장관의 후임이 지명되기 전까지 법무부는 당분간 이노공 차관 대행체제로 운영된다. 한 장관은 지금까지 해오던 역점 사업의 향방을 묻는 질문에 "국회에서 더 잘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chaezero@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