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재판 마무리…내년 2월 선고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사법농단 사건 1심 245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 인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이 5년 만에 마무리됐다. 검찰은 징역 7년을 구형했고, 임 전 차장은 울먹이며 무죄를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1부(김현순 조승우 방윤섭 부장판사)는 27일 심리로 임 전 차장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사건 결심 공판을 진행했다.
검찰은 "법관에 의한 법 파괴가 일시적·예외적임이 입증되기를 앙망한다"며 임 전 차장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변호인은 최종변론에서 핵심 혐의인 재판 개입에 대해 재판부에 도움을 주기 위한 의견 개진 내지 기존 판례 검토였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옛 통합진보당 의원의 지위 확인 소송에 개입한 혐의에 대해서는 "선례가 없는 사건이라 법관에게 참고 자료를 제공한 것"이라며 "법원행정처 의견을 따르라고 강요하거나 따르지 않으면 불이익을 가하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고 상대방이 편하게 전달받도록 방식을 고민해 자연스럽게 전달하려 노력했다"라고 해명했다. 실제 담당 법관이 법원행정처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는 부담은 없었다고 증언한 사례도 들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에 박근혜 정부의 의견을 반영하려 한 혐의에 대해서도 "대법원이 유엔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대상이 될 수 있는지 검토하기 위함이었다"며 "관련 문건 작성 역시 역시 외교부 작성의 과거사 계류 현안 문건, (또 다른 전범국인) 독일의 기업 책임 등 문건을 취합한 것으로 직무 집행을 보조한 사실 행위에 불과해 직권남용죄가 성립할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국제인권법연구회 내 소모임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와해를 위한 핵심 전략으로 꼽힌 중복가입해소 조처의 경우 법관 연구회는 주제에 맞는 연구만을 해야 한다는 대법원 예규를 따른 것이라고 변론했다. 변호인은 "어느 연구회든 모든 주제를 연구할 수 있다는 해석은 대법원 예규와 규칙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며 "법원 내 다른 모임과 달리 예산을 지원받는 전문분야 연구회가 일정한 제약을 받는 건 당연하다"라고 강조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사법농단 사건 1심 245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
임 전 차장은 최후진술에서 "피고인이 법원행정처에 근무할 때 발생한 일로 오랜 기간 구축해 놓은 사법부의 신뢰를 일거에 훼손하고 사법부 구성원들에게 큰 충격과 실망감을 안겨드린 데 대해 참으로 죄송스러운 마음"이라면서도 검찰의 과도한 수사와 사실 왜곡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사건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사법부 블랙리스트와 재판 거래 행위를 사법농단이라는 거창한 프레임 아래 기정사실임을 전제로 시작된 사건"이라며 "검찰 수사로 왜곡된 사실과 증거 조사를 통해 밝혀진 사건 진상에 대해 (양승태 전)대법원장님과 (고영한·박병대 전)대법관님들께서 관련 사건 최후진술에서 충분히 말씀하셨음을 언론 보도를 통해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1997년 2월부터 사법행정 업무에 발을 들이면서 국회와 행정부, 법원 사이에서 힘든 줄다리기를 해야 했다는 소회도 밝혔다. 임 전 차장은 "변화무쌍한 사법행정과 대외 업무를 수행하면서 당장 대책 수립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도 가상의 상황을 예측해 복수의 시나리오와 대응 방안을 선제적으로 검토해야 했다"며 "판사이면서 판사가 아닌 신분으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긴박하게 살았다"라고 회고했다.
사태 이후 구속 상황 등을 회상하면서 울먹이기도 했다. 임 전 차장은 "500일 넘는 구금 생활을 통해 작은 창으로 보이는 맑은 하늘과 햇살, 모퉁이 구석에 피어난 야생화에 고마움을 느꼈고 평소 너무 무관심했던 가족과 따뜻한 재회를 통해 달콤한 행복을 맛봤다"며 "왜 이처럼 엄혹한 세월을 보내야 하는지 원망하면서도 이 또한 피고인의 업보이고 더 성숙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는 비애라고 마음의 위안을 삼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소장 곳곳에 난무하는 신기루와 같은 허상과 과도한 상상력에 기한 주관적 추단이 점철된 공소사실보다 엄격한 형사법상 증거법칙에 따라 증명되는 사안의 실체를 파악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판결을 내려주시라"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임 전 차장은 2018년 11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재판 개입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 소송 개입 △국제인권법연구회 등 법원 내 진보 성향 학술모임 와해 시도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은 2018년 12월부터 약 5년 동안 243차례 이뤄졌다. 재판 도중 잇따라 재판부를 상대로 기피 신청을 하고,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여러 차례 재판이 중단되기도 했다.
선고는 내년 2월 5일 오후 2시다.
ilraoh@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