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중도의 길 걸으려 노력"…'대법관' 조희대 판결 보니
입력: 2023.11.19 00:00 / 수정: 2023.11.19 06:59

유책 배우자 이혼 청구 엄격히 차단…가정 존립 엄호
'원심 오타' 바로잡은 원칙주의자…'미스터 소수의견' 별명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가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에 마련된 후보자 사무실로 출근에 앞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가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에 마련된 후보자 사무실로 출근에 앞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조희대 전 대법관이 차기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대법관 조희대'의 판례에도 관심이 쏠린다. 조 후보자는 대법관 시절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엄격히 차단하는 등 가정을 엄호했다. 원심 판결문의 오타를 바로잡고, 당시 대법원장이 만든 판결을 깨는 등 원칙주의자의 면모도 보여줬다.

조 후보자는 대법관으로 취임한 지 2년 차가 된 2015년 12월 30년 넘게 배우자와 별거한 남편 A 씨의 이혼 소송 상고심을 맡았다. A 씨는 원래 장래를 약속한 애인이 있었지만 상대가 출산을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결혼을 접었다.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해 3남매를 뒀지만 외도와 외박을 거듭한 끝에 1984년 별거를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옛 애인과 함께 고향에 내려가 부부처럼 살았다. A 씨는 이 과정에서 세 자녀에게 아무런 경제적 지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1심은 A 씨의 유책성도 세월이 흘러 약해졌다면서 이혼하라고 판결했다. 혼인관계를 유지해도 외형만 남을 뿐 A 씨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계속 줄 수도 있다는 판단도 근거로 들었다. 2심은 판결을 뒤집어 이혼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A 씨의 배우자가 오직 오기나 보복의 감정으로 이혼에 응하지 않는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예외를 인정하지 않았다. 2심 판결 이후 판례 변경으로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하는 예외기준이 확대됐지만 조 후보자는 A 씨가 여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A 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조 후보자의 판단은 재벌가 이혼 소송에서도 변함없었다. 현대그룹 일가 2세대이자 대형 제조업체 사장 B 씨는 다른 여성과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있다며 배우자를 상대로 이혼을 청구했다. B 씨는 배우자가 평소 반복적으로 인격 모독성 발언을 하는 등 혼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호소했지만 1·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혼인 관계가 사실상 파탄에 이르렀지만 중혼 관계를 유지한 A 씨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였다. 상고심 사건을 받아 든 조 후보자는 본안 심리도 하지 않고 사건을 마무리하는 '심리 불속행 기각' 판결을 내렸다.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가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에 마련된 후보자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가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에 마련된 후보자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조 후보자는 엄격한 원칙주의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같은 면모를 보여준 에피소드도 있다. 조 후보자는 2015년 12월 조 후보자는 사기와 무고 혐의로 기소된 B 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는 한편 2심 판결문의 오기를 정정했다.

맹 씨는 2012년 남의 명의로 자동차 할부금융 대출 1억 2000여만 원을 받아 챙기는 등 여러 건의 대출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보다 앞서 같은 수법으로 1억 3000여만 원을 불법 대출받은 혐의(사기)로 기소돼 2013년 1월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형집행을 마친 상태에서 또 기소됐다. 2심 재판부는 B 씨가 이미 확정판결을 받은 적이 있는 점을 감안해 형량을 정했는데, 양형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2013년 확정된 판결의 죄명을 '특정경제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사기)'라고 잘못 적었다. 설령 맹 씨가 과거 범죄액수가 5억 원 이상인 경제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이라고 썼어야 맞다. 조 후보자는 원심 판결문의 죄명은 '사기죄'의 오기임이 분명하다며 직권으로 이를 정정했다.

당시 대법원장이 선고한 사건을 파기환송하기도 했다. 2017년 8월 조 후보자는 육아휴직급여 반환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휴직급여를 환수해 간 고용노동청의 처분이 정당하다는 2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2심 재판장이었던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은 아이와 떨어져 거주한 육아휴직자가 받은 휴직급여는 부정하게 받은 급여라며 반환이 정당하다고 봤지만, 대법원은 구체적·개별적 사정에 따라 '부정수급'에 해당하는지를 따져보고 판단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남용희 기자
서울 서초구 대법원. /남용희 기자

대법관 시절 조 후보자의 별명은 '미스터 소수의견'이었다. 2018년 1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양심적 병역거부는 정당한 사유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조 후보자는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임진왜란, 병자호란으로 수많은 백성이 죽임을 당하는 등 외세에 고통을 받았다"며 "우리 헌법은 참혹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국방의 의무를 규정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포함해 일체의 예외를 규정하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체복무 등 시혜적인 조치를 강구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병역법의 정당한 사유로 양심적 병역거부가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해 무죄 선고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되고 맞지 않는다"며 "다수의견으로 제시된 양심에 대한 심사 기준을 고집하면 특정한 종교에 대한 특혜가 될 수도 있다"라고 우려했다.

2017년 12월에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에서도 집행유예를 확정한 전합 판결과 반대로 더 무거운 처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조 전 부사장은 2014년 미국 뉴욕의 공항을 이륙하려던 대한항공 여객기를 되돌리도록 지시하는 등 정상적 운항을 방해한 혐의(항공보안법 위반)로 구속 기소됐다. 쟁점은 항공기가 다니는 길, '항로'에 지상 활주로도 포함되는지였다. 김 전 대법원장 등 10명은 하늘길만 항로에 포함된다고 본 반면 조 후보자 등 3명은 항공기가 다니는 길은 지상과 공중을 불문하고 모두 항로라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조 후보자는 다수의견을 반박하는 소수의견에서 "항공기는 배와 달리 이륙 전과 착륙 후에는 당연히 지상을 다닐 수밖에 없다"라며 조 전 부사장에게 더 무거운 형사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봤다.

ilraoh@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
인기기사
실시간 TOP10
정치
경제
사회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