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토 타쓰야' 사건, 사법농단 상황서도 인정된 언론자유
이명박·문재인 정부 때도 유사 사건…유죄 인정은 안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국회=이새롬 기자 (국회풀) |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검찰의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수사가 대대적으로 이뤄지면서 역대 대통령 명예훼손 사법처리 사례에 관심이 쏠린다. 역대 판례를 종합하면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은 대통령의 명백한 '처벌 의사 철회'만 없으면 사법 처리가 가능하다. 하지만 처벌에 앞서 △명백한 비방 목적 △'상당성을 잃은 공격'에 대한 엄격한 판단 기준 △정치적 논쟁·토론에 대한 법원의 소극적 개입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넓은 용인이라는 세 개의 벽을 넘어야 한다. 대선 직전 유력 후보자였던 윤 대통령의 부실 수사 의혹을 제기했다는 이번 사건 역시 실제 처벌에 이르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사법농단' 스친 가토 다쓰야 판례의 시사점
가토 다쓰야 전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은 2014년 세월호참사 당일 박 전 대통령 행적 관련 의혹을 제기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보수단체 고발로 촉발된 가토 전 지국장 사건의 첫 쟁점도 현직 대통령이었던 피해자의 처벌 의사였다. 명예훼손죄는 반의사불벌죄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피해자의 명시적 의사가 있으면 처벌할 수 없다. 가토 전 지국장 측은 박 전 대통령의 처벌 의사가 명확하지 않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처벌 의사를 확인하지 않았더라도 공소제기 절차가 위법하지 않다"라고 판시했다. 윤 대통령 사건 역시 검찰은 윤 대통령의 처벌 의사를 명확히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가토 전 지국장 사건과 뗄 수 없는 사건이 바로 '사법농단' 의혹이다.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 등 숙원 사업을 위해 박근혜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쌓기로 하고 강제동원 피해자 사건 등 재판에 개입했다는 내용이다. 박 전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를 받은 가토 전 지국장 재판도 예외는 아니었다. 검찰에 따르면 임성근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는 재판장에게 박 전 대통령과 관련한 의혹이 허위라는 점이 입증됐다는 '중간 판단'을 고지하도록 하고 비방 목적 등을 따지는 데 변론을 집중하도록 재판에 개입했다. 재판장에게 가토 전 지국장의 무죄 판결 이유와 무죄선고 시 재판장의 구술 내용을 변경하도록 요청했다고도 조사됐다.
이같은 과정을 거쳤는데도 가토 전 지국장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피해자에 대한 비방의 목적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지난 2015년 12월17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명예회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뒤 무죄를 선고받은 가토 전 지국장이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는 모습. /뉴시스 |
◆다른 사례도 대체로 무죄…'상당성을 잃은 공격'의 벽
박래군 4·16 재단 상임이사는 2016년 6월 기자회견에서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을 두고 "마약을 하거나 보톡스를 맞고 있었던 건 아닌지 궁금하다"는 취지로 발언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1·2심은 유죄를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2021년 3월 무죄 취지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마약과 보톡스라는 표현을 악의적이고 공격적으로 볼 순 있으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라고 볼 수 없다"라고 판시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피해자로 이름을 올린 바 있다. 당시 정부 민간인 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씨는 2008년 개인 블로그에 이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쥐코' 동영상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김 씨는 이에 불복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고, 헌재는 2013년 12월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하도록 결정했다. 헌재 역시 동영상의 내용이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라고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판단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2013년 1월 문 전 대통령을 "공산주의자" 등이라고 표현해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대법원은 2021년 9월 무죄 취지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정치적 이념에 관한 논쟁이나 토론에 법원이 직접 개입해 사법적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전광훈 목사도 비슷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무죄를 선고받았다. 전 목사는 2019년 10월 집회 등에서 문 전 대통령을 놓고 "간첩", "대한민국을 공산화하려 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혐의를 받았다. 법원은 "피해자는 현직 대통령으로서 국가·사회적 영향력과 정치적 영향력이 큰 만큼 비판적 발언이 용인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ilraoh@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