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구속은 '골인'?…영장 청구 10건 중 기소는 절반 뿐
입력: 2023.10.01 00:00 / 수정: 2023.10.01 00:00

'민주당 돈 봉투' 사건 "조사받아 증거인멸 우려"
"진술 확보 수단 관행화…영장 청구 신중해야'


구속영장 발부율이 지난해에 이어 80%를 넘긴 것으로 집계되면서 불구속 수사·재판이라는 형사소송법상 대원칙이 적절히 지켜지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대두된다. 사진은 영장실질심사에 앞서 설치된 포토라인. /더팩트DB
구속영장 발부율이 지난해에 이어 80%를 넘긴 것으로 집계되면서 불구속 수사·재판이라는 형사소송법상 대원칙이 적절히 지켜지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대두된다. 사진은 영장실질심사에 앞서 설치된 포토라인. /더팩트DB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수사기관은 피의자 구속을 이른바 '골인'이라고 부른다. 수사에서 구속을 얼마나 중요시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구속영장 발부율이 지난해에 이어 80%를 넘긴 것으로 집계되면서 불구속 수사·재판이라는 형사소송법상 대원칙이 적절히 지켜지고 있는지 관심이 쏠린다. 1995년 영장실질심사 시행 이후 구속 피의자가 현저히 줄었지만 법조계에서는 수사기관이 영장 신청·청구를 남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가 나온다.

◆수사기관 영장 신청·청구 사건 기소율 53% 그쳐

최근 발표된 2023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한 비율은 최근 5년 동안 모두 80%를 넘겼다. 영장이 청구된 피의자 10명 중 8명이 구속되는 셈이다. 구체적인 수치는 2018년 81.3% 2018년 81.1% 2020년 82.0% 2021년 82.0% 2022년 81.4%로 평균 81.5%다. 다만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와 구속기소율을 비교하면 △2018년 101.7% △2019년 102.3% △2020년 102.9% 2021년 102.1% △2022년 101.9% 등 평균. 102.2%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면 사실상 무조건 기소로 이어진다는 방증이다. 법원은 비교적 혐의가 중대하고 확실한 피의자만 구속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수사기관은 어떨까.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에서 발간한 '공정하고 인권친화적인 형사절차를 위한 형사사법의 선진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2010~2019년 영장 청구 및 신청 대비 기소율 평균은 53.1%에 그쳤다. 구속영장을 청구해도 기소조차 이뤄지지 못하는 사건이 절반에 가까운 것이다. 연구를 맡은 김유근 연구위원은 "구속영장 청구 및 신청 건수 대비 기소율이 50%대에 머무르는 것은 검사의 철저한 수사로 실체적 진실이 밝혀져 기소에 이르지 않았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다른 한편으로 결국 기소조차 되지 않는 사건에 인신구속이라는 가장 강력한 강제처분이 남용됐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동시에 내릴 수 있다"며 "인신구속은 헌법상 기본적 인권에 저촉될 위험이 큰 만큼 애초부터 기소할 가능성이 명백히 없거나 기소할 것인지가 불확실한 경우에도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수사권 남용에 해당할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피의자에게 증거 보여줘 '증거인멸 우려' 구속 사유

실제로 최근 '구속 사유'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를 둘러싼 '돈 봉투 의혹'과 관련해 검찰은 지난 5월 이성만·윤관석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검찰은 '검찰 조사과정을 통해 검찰이 가진 여러 증거를 파악했기 때문에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매우 크다'며 구속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의원은 "검찰이 요구한 조사에 성실하게 임한 것이 결국 검찰의 구속 사유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이라고 반발했다. 검찰이 피의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증거를 보여줬기 때문에, 이를 인멸할 우려가 있으니 구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 검찰 관계자는 "수사 전후를 막론하고 주요 혐의자 및 사건 관계인 사이에 정당한 방어권 행사를 넘어선 조직적 증거인멸 정황 및 우려가 있다고 판단돼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앞으로도 검찰이 관련 증거를 보여준 것만으로도 추후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닌가'라는 지적에는 "그렇게 극단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라고 일축했다. 검찰은 이 의원에 대해서 두 차례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청구서 기재와 같은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기각했다.

이성만(사진) 무소속 의원은 검찰의 첫 영장에서 검찰 조사과정을 통해 검찰이 가진 여러 증거를 파악했기 때문에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매우 크다는 취지의 사유가 기재됐다고 비판했다. /이새롬
이성만(사진) 무소속 의원은 검찰의 첫 영장에서 검찰 조사과정을 통해 검찰이 가진 여러 증거를 파악했기 때문에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매우 크다는 취지의 사유가 기재됐다고 비판했다. /이새롬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구속을 기소에 유리한 진술을 확보할 수단 내지 피의자 압박용으로 남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초동의 한 중견 변호사는 "증거인멸 염려도 도망할 염려도 없는데 구속하고 진술을 확보하는 것이 수사 관행으로 굳어져 버렸다"라고 밝혔다. 전수미 변호사(굿로이어스 공익제보센터) 역시 "최근 유명 사건에서 사건의 핵심 관계자가 구속 후 진술을 바꾸는 사례가 자주 있다. 수사기관의 회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수사를 굉장히 오래 해 사실상 모든 증거를 확보했다고 보이는 사건도 증거인멸 염려를 표면적 이유로 영장을 청구하는 경우도 있는데 무리하다고 볼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인권 매뉴얼' 마련부터 '수사 중 보석'까지 해결책 거론

구속은 수사 절차 가운데 심적 중압감이 가장 크다.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피의자가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사례도 적지 않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의 여론조작 사건을 은폐한 혐의로 수사를 받던 변창훈 당시 서울고검 검사는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변호사 사무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2015년 성완종 옛 새누리당 의원 역시 횡령 혐의로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북한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때문에 영장을 신중히 신청·청구하는 수사 관행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형사소송법상 틀에 박힌 구속 사유를 벗어나 피의자가 처한 상황을 다각도로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장윤미 변호사는 "피의자는 구속되면 일상이 완전히 마비되고 생업이 즉시 중단된다"며 "수사기관이 주먹구구식으로 영장을 청구할 게 아니라 피의자 인권을 보장할 세부적 매뉴얼을 마련해 사안을 유연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법원의 역할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영장 단계에서의 조건부 석방제는 영장전담 판사가 △보증금 납부 △주거제한 △제3자 출석보증서 △전자장치 부착 △피해자 접근 금지 등 일정한 조건을 붙여 피의자를 석방하는 제도다. 구속된 피의자를 풀어주는 보석 제도를 구속영장 발부 단계에서 도입하는 것이다.

사후적으로는 수사 단계에서 보석 제도를 강화하는 방식도 검토안으로 제시된다. 보석 제도는 애초 피고인에게만 인정됐지만 1995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구속된 피의자의 출석을 보증할 만한 보증금 납입을 조건으로 보석 석방이 가능하게 됐다. 하지만 피고인 보석과 비교하면 여전히 피의자 보석은 '바늘구멍'이다. 권오걸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민의 인권보호를 위한 형사소송법상 체포·구속제도 개선 방안 연구'에서 "피의자보석이 피고인보석과 비교하면 상당히 제한적이어서 피의자의 인권보장에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그간의 실무에서 초동수사의 경우 수사 편의를 위해 구속수사 방법을 많이 이용하려는 행태가 나타나는데 피의자 보석을 더 확대하면 구속수사에 내재된 강압수사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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