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변시생 울리는 '5년 제한' …”1년 유예" vs ”형평성 어긋나”
입력: 2023.09.11 00:00 / 수정: 2023.09.11 16:05

여변 "저출산으로 이어질 수밖에"
헌재 "5년 적정·과도한 제한 아냐"
변호사시험법상 군 복무 기간만 예외


2021년도 제10회 변호사시험이 열리는 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관에 마련된 고사장으로 응시생들이 입실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2021년도 제10회 변호사시험이 열리는 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관에 마련된 고사장으로 응시생들이 입실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더팩트ㅣ정채영 기자] 최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 후 임신·출산으로 변호사시험법에 규정된 5년 내 5회 응시 기회를 놓친 응시자가 국가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패소하면서 변호사시험법 개정을 두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최수진 부장판사)는 지난달 25일 로스쿨 졸업생 김모 씨가 정부를 상대로 낸 변호사시험 응시 지위 확인 청구 소송을 기각했다.

2016년 2월 로스쿨을 졸업한 후 5년간 두 자녀를 출산한 김 씨는 같은 해 변호사시험에서 탈락한 후 임신, 출산으로 2017년~2019년 시험을 응시하지 못했다. 마지막 시험이었던 2020년 변호사시험에서 탈락한 김 씨는 임신과 출산도 군 복무와 마찬가지로 응시하지 못한 불가항력 사유가 명백하므로 추가 기회가 부여돼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변호사시험법 제7조는 '법학전문대학원의 석사학위를 취득한 달의 말일부터 5년 내 5회만 응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경우는 이 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2016년 헌재는 이같은 변호사시험법 조항에 대해 "응시자의 자질·능력을 입증한 기회를 5년으로 제한한 것은 입법재량 범위 내 적정한 수단이고 변호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가능성을 과도하게 제약한다고 볼 수 없다"며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행정법원은 헌재의 판결에 달리 판단할 사정 변경이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의 판결에 변호사 단체는 반발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여변)는 지난달 29일 성명서를 내고 "임신·출산을 포함하는 내용의 변호사법 개정을 촉구한다"며 "출산 과정에 있는 응시생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진행되는 5일간의 변호사시험 일정을 소화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응시 기간 선정에서 임신, 출산에 따른 불이익이 존재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수많은 이들은 임신, 출산을 선택하기 어려워지고, 저출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미래를 위한 청년변호사 모임(새변)도 성명서를 통해 "양성평등을 통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신, 출산 기간 중 1년 동안 응시 유예를 허용해 줘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법원 판결에 대해서는 "저출산 시대에도 변호사시험 응시 유예 사유로 출산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입법적 개선이 필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법조계도 유예 기간을 줘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저출산 문제도 유예기간 부여에 힘을 보탠다. 원의림 변호사는 "일단 임신하고 출산하게 되면 임신 단계부터 신체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변화들이 몰려온다"며 "정신적으로도 힘든 상태에 놓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가에서 다양한 출산 대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세심한 데서부터 변화가 시작돼야 한다"며 "가산점을 주는 방식이 아닌 단순히 기간을 유예해 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정향 이승우 변호사는 "저출산 국가로 가면서 여성에 대한 배려가 아이에 대한 보호라고 봐야 한다"며 "출산이 선택이 됐고, 선택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단순히 혜택을 주는 걸로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변호사는 "1년 정도까지만 부여하는 게 다른 응시자들과의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기혼자에게만 특혜를 준다는 비판도 나올 수 있다. 법률사무소 사월 노윤호 변호사는 "출산이 아니더라도 아파서 시험을 못 본다거나 저마다 사정은 있다. 유예를 해주다 보면 끝도 없다"며 "고시낭인이 생기지 않기 위한 5회 제한의 취지가 흐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 변호사는 "미혼자의 경우 기혼자에게만, 여성에게만 특혜를 준다는 지적도 있을 것"이라며 "1년 더 유예시키고자 육아를 악용하게 되는 사례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22일 도종환 의원 외 10명의 국회의원은 '임신 및 출산을 하는 경우 자녀 1명 대해 각 자녀의 임신 시부터 출산 후 1년까지의 기간 중 1년을 유예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의안을 제출했다. 본격 논의가 시작되면 개정안이 받아들여질지 주목된다.

chaeze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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