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엮일까봐 마약 제작?…재판부, '마약음료 주범' 질책
입력: 2023.08.28 16:03 / 수정: 2023.08.28 16:03

마약 지식 없다더니 과거 대마 구매 이력 드러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정진아 부장판사)는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필로폰이 섞인 마약음료를 나눠준 혐의(마약류관리법 위반 등)를 받는 길모 씨(26)의 3차 공판을 열었다./박헌우 기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정진아 부장판사)는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필로폰이 섞인 마약음료를 나눠준 혐의(마약류관리법 위반 등)를 받는 길모 씨(26)의 3차 공판을 열었다./박헌우 기자

[더팩트ㅣ김시형 인턴기자]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마약 음료를 나눠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이 마약에 대한 지식이 없어 마약음료인 줄 몰랐다고 주장했지만 과거 '대마 구매' 이력이 드러났다. 보이스피싱 가담 사실을 신고하겠다는 총책의 협박으로 마약을 제작했다고 주장했다가 재판부의 질책을 받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정진아 부장판사)는 마약류관리법 위반(향정) 등 혐의를 받는 길모(26) 씨의 3차 공판을 열었다.

길씨는 지난 4월3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행사'를 가장해 아르바이트생들을 시켜 미성년자 13명에게 마약 음료를 마시게 하고 학부모들에게 협박 전화를 해 금품을 갈취하려 한 혐의를 받는다. 길씨는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과 공모해 필로폰 10g을 우유와 섞어 마약 음료를 제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길씨는 마약 음료를 제작·운반한 것은 인정하지만 영리 목적으로 미성년자들이 마시도록 한 것은 몰랐다는 입장이다. 학부모를 협박한 혐의도 부인하고 있다.

길씨는 중학교 동창이자 중국 보이스피싱 '총책'인 이모(26) 씨의 협박 때문에 범행에 가담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길씨는 "이씨가 자신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 저를 보이스피싱범으로 엮겠다고 협박했고, 제 가족들의 정보도 갖고 있다고 해 할 수 없이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길씨를 포함한 조직원들에게 마약음료 제조 등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이씨는 5월24일 중국에서 검거돼 현재 국내 송환 추진 중이다.

이씨에게 받은 택배 내용물이 마약인 줄도 몰랐다고 주장했다. 길씨는 "이씨가 보낸 택배 주소로 가보니 주택가 지하층 신발장에 봉투로 둘러싸인 택배가 붙어있었고, 음료 제조 전까지 내용물이 필로폰이라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며 "마약과 관련된 지식 정보가 없어 잘 몰랐다"고 말했다.

이에 검찰은 길씨의 '대마 구매 이력'을 문제삼았다. 검찰은 길씨에게 "과거 대마를 구매한 적이 있지 않느냐"며 구매 경위를 추궁했고, 길씨가 "판매자가 지목한 장소인 지하주차장 난간에 자석으로 붙어있던 (대마를) 수거했다"고 답하자 "이 사건(마약음료)을 위한 필로폰 수거 경위와 비슷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서울 강남 학원가에서 학생들에게 마약음료를 마시게 해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혐의를 받는 피의자 길 모 씨가 지난 4월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박헌우 기자
서울 강남 학원가에서 학생들에게 마약음료를 마시게 해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혐의를 받는 피의자 길 모 씨가 지난 4월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박헌우 기자

재판부도 길씨의 필로폰 수거 경위를 추궁하며 "이씨가 보낸 택배를 발견한 곳은 주택가 지하 공간에 눈에 띄지 않고 쭈그려 앉아야 발견할 수 있는 장소"라며 "그런 장소에 택배가 있을 거라고 쉽게 생각하기 어렵고, 일반적인 택배 물건이라고 생각하기도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길씨는 "솔직히 별 생각이 없었고 가루 형태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고 답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보이스피싱범으로 엮겠다고 협박해 마약음료를 제작했다'는 길씨의 주장을 놓고도 "보이스피싱범과 마약범 중 어느 범행이 더 중한 범죄라고 생각하느냐"고 추궁했다. 이에 길씨가 "둘다 비슷하다고 생각했다"고 답하자 "보이스피싱범 가담 신고 협박이 무서워서 마약 범행을 저질렀다는 건가"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범행 후 자수하려 했으나 수사기관이 전화를 받지 않아 하지 못했다'는 길씨의 주장을 놓고도 "자기 잘못을 외부 사람의 잘못으로 회피하고 있는 듯 보인다"며 "형사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112에 직접 전화해 신고할 수 있었다"고 질책했다.

길씨 측은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길씨의 변호인은 "수사 협조가 반성의 일환이라고 느끼고 적극 협조했고 범행에 쓰인 중계기를 임의 제출하기도 했다"며 조사 협조에 대한 사실조회를 수사기관에 신청할 뜻을 밝혔다.

다음 공판은 내달 11일 열린다.

rocker@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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