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예고 2년 감감무소식…'형사공공변호인' 산 넘어 산
입력: 2023.08.16 00:00 / 수정: 2023.08.16 00:00

변호인 조력 '수사 단계'로 확대
공단 설립에 비용…공감대 형성 문제
민주당 박주민 의원실 새로 발의 예정


2016년 11월17일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에 대한 재심에서 16년만에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된 가운데 박준영 변호사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2016년 11월17일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에 대한 재심에서 16년만에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된 가운데 박준영 변호사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더팩트ㅣ정채영 기자] 20년 전 8월 10일 전북 익산시 영등동에서 택시 운전기사 유모 씨가 흉기에 찔려 살해됐다. 당시 범인으로 지목된 16세 최모 씨는 징역 10년을 확정받고 수감생활을 했다. 2003년 수사기관은 진범이 따로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으나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사건은 마무리됐다. 이후 용의자가 진범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최 씨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최 씨는 경찰의 강압에 못 이겨 허위 자백했다고 밝혔다. 그 유명한 '약촌오거리 사건'이다.

사회적 약자가 수사 과정의 실수로 당할 수 있는 억울한 피해를 막기 위해 법무부가 내놓은 방법이 바로 '형사공공변호인제도'다. 2021년 7월 13일 법무부는 헌법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강화하기 위한 취지로 범죄혐의로 수사를 받게 된 국민 중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이 '재판 단계'부터가 아닌 '수사 단계'에서도 국선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입법 예고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형사공공변호인제는 국제적으로 검증된 제도다. 미국, 영국 등 OECD에 속한 35개 국가 중 29개국(85.9%)이 이 제도를 시행한다. 미국은 1964년, 영국은 1949년부터 공적 형사변호 기구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5~2019년 경찰 피의자 조사단계에서 변호인 참여 비율은 약 1%로 미미하다. 경찰 수사 범위가 커진 상황에서 인권침해 방지와 수사적법성 감시를 위해서도 도입을 검토해야한다는 취지다.

이같이 2021년 법무부의 입법예고안이 발표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제도 도입은 감감무소식이다.

법무부는 2021년 7~8월 형사공공변호인제도 도입을 위한 법률 구조법·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해 입법예고 및 관계부처 의견조회를 실시했다. 공청회를 개최해 관계부처, 관계기관, 국민 의견을 수렴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당시 제도의 도입 여부, 운영방식 등에 대해 도입 반대 의견을 포함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된 바 있으나 그 후 추가적인 입법 절차가 진행된 바는 없다"고 설명했다.

진척이 더딘 이유는 예고안 발표 당시 제기된 쟁점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제도의 취지는 좋지만 그만큼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점이 있다.

◆이미 법률구조제도 다양해 실효성 논란

현행 국선변호제도는 재판 단계에서만 도움을 줄 수 있다. 형사공공변호인 제도의 취지는 피의자가 재판 전 수사 단계에서도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형사당직변호사(경찰서), 형사소송법상 국선변호인, 법률구조공단 등 다양한 법률구조제도가 있는 상황에 형사공공변호인 제도까지 도입하는 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형사 사건은 대부분 '자백 사건'이다. 형사공공변호인을 지원받기 위한 대상은 자백하지 않고, 경제력이 없는 피의자다. 제도가 보호하고자 하는 대상이 크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세금을 들여 피의자를 변호할 제도와 공단을 만드는 데 국민 공감대를 만드는 것도 큰 과제다.

법률사무소 태룡의 김태룡 변호사는 "사실 형사공공변호인 제도가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비용 문제가 클 것"이라며 "법원의 판단을 위해서는 변호인 조력의 필요성이 높지만, 수사 단계에서 수사 기관이 중립을 유지해 준다면 형사공공변호인 제도의 필요성이 높을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같은 법무부 아래 '검찰'과 '변호 공단'…변호의 질 하락 우려

2021년 법무부는 형사공공변호인 제도 운영을 위해 법무부 산하의 형사공공변호공단 설립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법무부가 대척점에 있는 검찰과 변호인을 함께 통제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일로 청량리 법률사무소 정구승 변호사는 "하나의 기관이 수사, 기소 및 변호를 모두 담당하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의 근간인 견제·균형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선변호인의 경우 한 건당 40만 원 정도의 수임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선변호인 처우 개선은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선거 단골 공약이다. 이 와중에 형사공공변호인 제도까지 도입되면 질 높은 변호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 변호사는 "자백 피의자에게까지 변호를 제공한다면, 당연히 투입해야 할 노력의 양이 적기 때문에 그 필요성이 적고, '부인'하는 사건만 변호를 제공한다면 노력에 비해 대가가 적을 것"이라며 "개별 변호사 입장에서 질 높은 노력을 투입하기 어렵다"고 예상했다.

지난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였다는 점도 추진력에 의문부호를 남긴다. 이 제도는 2017년 대선 문재인 후보의 공약이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주요 정책으로 꼽혔으나 이후 정국 혼란으로 동력을 잃은 상태다.

입법예고 당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형사공공변호인 제도 운영에 대한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지만 정권 교체 이후 소식이 없었다. 박 의원실 측은 "형사공공변호인 제도와 관련한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에는 도입까지 여러 산을 넘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chaeze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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