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용서 필요없는 공탁 감형…'유전무죄' 논란
입력: 2023.07.13 00:00 / 수정: 2023.07.13 00:00

'강남 스쿨존' '30대 가장 치사 10대' 공탁 감형
피해자 2차가해·무분별한 배상 요구 방지 효과도


지난해 12월부터 형사공탁특례제도가 시행되면서 형사 피고인이 피해자와의 합의 없이 공탁이 가능해졌다./이새롬 기자
지난해 12월부터 형사공탁특례제도가 시행되면서 형사 피고인이 피해자와의 합의 없이 공탁이 가능해졌다./이새롬 기자

[더팩트ㅣ김시형 인턴기자] 지난 5월 '강남 스쿨존' 음주 사고의 가해자는 1심에서 검찰 구형량인 징역 20년보다 훨씬 낮은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에 3억 5000만원의 공탁금을 내 유리한 양형 요소로 참작됐다. 이 사고로 사망한 피해자 이모(당시 9세) 군의 아버지는 "공탁금을 받을 생각이 전혀 없는데 형량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라며 반발했다.

같은 달 부산 서면에서 몸싸움 도중 의식을 잃은 20대 남성을 모텔에 방치해 숨지게 한 가해자들 역시 공탁금 수천만원을 내 항소심에서 감형을 받았다. 유족은 "합의한 적도 없고 합의할 의사도 없는데 공탁금을 냈다는 이유로 감형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경기 의정부에서 30대 가장을 때려 숨지게 한 10대들도 공탁금을 내 감형을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3부(이창형 부장판사)는 지난 4월 공동상해·상해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의 항소심에서 원심 형량보다 1년 감형해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유족들이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면서도 "가해자가 범행을 인정하고 총 5000만원을 공탁한 점 등을 참작했다"고 감형 이유를 밝혔다.

형사공탁이란 피고인이 법원에 공탁금을 맡기고 피해자가 추후 가져갈 수 있는 제도다. 판사는 양형 참작 사유로 고려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형사공탁특례제도가 시행되면서 형사 피고인이 피해자와의 합의 없이 공탁이 가능해졌다. 이전까지는 피해자 인적사항을 알아야 공탁을 할 수 있어서 피해자가 합의를 원하지 않으면 공탁이 어려웠다.

공탁법이 개정되면서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용서받지 않고도 공탁을 하면 재판부가 감형 사유로 고려할 수 있어 자칫 '꼼수 감형'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피고인의 경제력 자체가 피해 회복 노력으로 평가될 수 있어 '무전유죄 유전무죄' 논란도 제기된다.

'합의 없는' 공탁 감형에 피해자들의 반발이 커지면서 '피해자의 피해 회복'이라는 공탁 제도의 시행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나온다. 앞선 '서면 방치 사망' 사건 피해자 측도 "공탁금은 피해자의 피해 복구를 위한 제도로 알고 있는데 (피고인의) 감형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 같다"고 꼬집었다.

반면 피해자가 피해 규모를 훨씬 뛰어넘는 금전적 배상을 요구하거나 가해자의 각종 피해 회복 노력을 피해자가 모두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현 공탁 제도를 합리적이라고 보는 쪽의 근거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과도한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피해자의 (피해보상 거부 의사가) 완강할 때 가해자가 공탁을 통해 객관적으로 피해 회복에 노력했다면 감형 요인으로 삼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피해자 역시 공탁법 개정으로 가해자에게 인적사항을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 '2차 가해'를 막을 수 있는 효과가 있는 셈이다. 차 교수는 "(법 개정 전에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가해자를 보고 싶지도 않고 인간적으로 접촉하고 싶지도 않을 수 있는데 가해자는 공탁이 감형 요인이다보니 무리하게 피해자 접촉을 시도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공탁법 개정으로 이러한 '2차 가해'를 차단할 수 있다는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5월 강남 스쿨존 음주 사고의 가해자는 검찰 구형량인 징역 20년보다 훨씬 낮은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에 3억 5000만원의 공탁금을 내 유리한 양형 요소로 참작됐다. 서울 언북초등학교 앞 스쿨존 음주운전 사고현장에 친구들의 추모 메시지가 붙어 있다. /뉴시스
지난 5월 '강남 스쿨존' 음주 사고의 가해자는 검찰 구형량인 징역 20년보다 훨씬 낮은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에 3억 5000만원의 공탁금을 내 유리한 양형 요소로 참작됐다. 서울 언북초등학교 앞 스쿨존 음주운전 사고현장에 친구들의 추모 메시지가 붙어 있다. /뉴시스

양형기준을 정책적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진규 형사전문변호사는 "공탁을 양형요소로 삼지 말아달라고 피해자 쪽에서 요청을 해도 양형기준상 감형 요소에 들어가 있으니 재판부도 고려하는 것"이라며 "양형기준에 공탁이 들어가 있는 것 자체를 문제삼을 순 없겠지만 (재판부가) 맹목적으로 적용하는 건 문제"라고 밝혔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양형기준을 획일적으로 적용해선 안된다는 지적이다.

피해자가 공탁금을 찾아가지 않는 경우 양형 사유에 반영하지 않는 보완책도 있다. 검찰 출신 공일규 변호사는 "피고인이 공탁을 했는데 피해자가 거부하고 판결 선고 기일까지 찾아가지 않는다면 양형 사유로 보지 않고 피고인이 다시 가져가는 방식 등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공 변호사는 "피고인이 공탁한 경우 판결문에 설시되지만, 양형에 얼마나 반영이 됐는지 제도상 알 수 없다"며 "변호인 입장에서도 의뢰인(피고인)에게 공탁 안내를 할 때 양형에 얼마나 반영될지 예측되지 않아 곤란할 때도 있다"며 제도 보완 필요성을 강조했다.


rocker@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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