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 살해 못 막는 '영아살해죄''…70년 만에 폐지 논쟁
입력: 2023.07.10 00:00 / 수정: 2023.07.10 00:00

"아이 인권 중요" vs "출산 당시 산모 상태 고려"
살인죄 비해 형량 경미…아이 보다 부모 사정 우선


일명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 발생 이후 하루가 다르게 영아 유기와 살해 적발 건수가 늘어나고 있다./더팩트 DB
일명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 발생 이후 하루가 다르게 영아 유기와 살해 적발 건수가 늘어나고 있다./더팩트 DB

[더팩트ㅣ정채영 기자] 일명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 발생 이후 하루가 다르게 영아 유기와 살해 적발 건수가 늘어나고 있다. 사회적 파장이 커지자 경찰은 적용 혐의를 비교적 형량이 낮은 '영아살해죄', '아동학대치사' 등에서 '살인죄'로 변경하고 있다. 제정 70년이 넘은 영아살해죄가 제 몫을 못 해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A씨는 지난 2018년 11월과 2019년 11월 병원에서 아이를 출산한 후 목 졸라 살해한 뒤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내 냉장고에 시신을 보관해 온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당초 A씨에게 적용했던 혐의를 '영아살해죄'에서 '살인죄'로 변경했다. 아이를 살해한 시점이 분만 과정과 직후가 아닌 분만 후 하루가량이 지난 점을 고려한 판단이다. 또 살인죄보다 영아살해죄의 형량이 낮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생긴 사회적 파장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영아살해죄는 살인죄에 비해 형량이 경미하다. 살인죄의 형량은 상한선이 없이 최소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한다. 그에 비해 영아살해죄는 10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게 된다.

◆ 만든 지 70년, 폐지와 유지 갑론을박

형법 251조 '영아살해'는 '직계존속이 치욕을 은폐하기 위하거나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하거나 특히 참작할 만한 동기로 인하여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의 영아를 살해한 때' 적용한다고 명시한다.

영아살해죄의 입법 취지는 참작할 동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6.25 직후인 1953년 만들어진 영아살해죄는 시대적 배경이 뒤따른다.

전문가들은 영아살해법이 만들어진 배경을 이유로 폐지를 주장한다. 법무법인 심목 김예림 변호사는 "영아살해죄가 만들어졌을 때는 범행이 빈번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이라며 "최근에는 평범한 가정에서 영아를 유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미 변호사는 "입법 취지에 따라 출산 이후 사정을 고려해서 형을 낮게 정한 것이다. 아이의 생명보다는 부모의 사정을 더 고려한 입법"이라며 "지금은 아이의 인권도 부모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에 키우기 힘들다고 아이를 죽여도 선처한다는 것 잘못됐다"고 폐지를 주장했다.

낙태죄 폐지도 영아살해죄 폐지에 힘을 싣는다. 김예림 변호사는 "낙태죄 폐지로 산모가 아이가 배 속에 있을 때 어느 정도 자기 결정권을 갖게 됐다. 굳이 낳아서 살해한다는 건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며 "살인죄를 적용하되 영아를 살해하는 건 살인죄 중에서도 양형 사유로 참작하는 방법도 있다"고 부연했다.

반면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신진희 변호사는 "출산 당시 분별력이 떨어지는 산모의 인권을 존중해서 만들어진 법"이라며 "사례에 따라 아동학대치사, 아동학대 살해죄 등 적용 가능한 혐의에서 어떤 법을 적용할지 판단할 문제다. 굳이 폐지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 검거된 피의자 80% 여성…국가의 역할 알려야

지난 2일 공개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최근 9년간 영아 살해·유기 검거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영아 살해·유기 피의자로 총 검거된 인원은 447명으로 그중 78명이 남성, 369명이 여성이었다. 10명 중 약 8명이 여성인 셈이다.

이 때문에 관련 수사와 처벌이 여성에게만 향한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행위의 주체가 여성이다 보니 불가피한 구조다. 김영미 변호사는 "출산하는 사람은 당연히 여성이기 때문에 출산 직후에 불안한 상황에 놓이기 쉬운 것"이라며 "행위자 책임주의 때문에 아이의 생명을 빼앗은 사람이 처벌받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다만 같은 사례가 반복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처벌 강화 외에도 사회적인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혼자 아이를 낳아서 키우더라도 제도나 정책이 뒷받침해준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신 변호사는 "아이를 낳으면 국가가 어떻게 해서든지 아이를 살려서 키워준다는 정보가 있어야 한다"며 "그렇게 되면 굳이 아이를 살해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chaeze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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