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전쟁' 가장 바쁜 검사…"마약음료도 최대 14년, 충분할까요"
입력: 2023.06.27 05:00 / 수정: 2023.06.27 06:09

김보성 대검찰청 마약과장 인터뷰
마약 확산 원인은 비대면 거래 보편화
청정국 회복 위해 인력·예산 투입해야


김보성 대검찰청 마약과장은 2006년 검찰 입문 후 줄곧 마약·조폭과 싸워온 강력통이다. 역대 두번째 여성 대검 마약과장으로서 검찰 마약수사의 컨트롤타워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지난 2월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마약범죄 특별수사팀 출범 브리핑을 하는 김보성 과장./뉴시스
김보성 대검찰청 마약과장은 2006년 검찰 입문 후 줄곧 마약·조폭과 싸워온 '강력통'이다. 역대 두번째 여성 대검 마약과장으로서 검찰 마약수사의 컨트롤타워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지난 2월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마약범죄 특별수사팀 출범 브리핑을 하는 김보성 과장./뉴시스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검찰이 마약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지난 1년간 대검찰청에서 마약범죄 소탕에 가장 바빴던 사람은 김보성 마약과장(부장검사)이라는 데 토를 달 사람은 별로 없다.

김보성 과장은 2006년 검찰 입문 후 줄곧 마약·조폭과 싸워온 '강력통'이다. 역대 두번째 여성 대검 마약과장으로서 검찰 마약수사의 컨트롤타워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김 과장의 첫 임지는 항구도시 군산이었다. 20대 젊은 검사는 불법 게임장을 운영하던 조폭을 파헤쳤다. 바지사장이던 피의자가 범행을 자백하더니 구속해달라고 애원했다. 나가면 조직에 보복 당할 게 뻔하니 목숨을 부지하려면 차라리 교도소가 낫다고 하소연했다. "내가 정말 '나쁜 놈'을 잡고 있구나"라고 어깨가 무거워졌다.

"강력 수사는 무엇보다 민생과 밀접하죠. 그리고 별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누가 봐도 '나쁜 놈'을 잡고 있으니까요. 초임 때 강력이 제 갈 길이라고 느꼈습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 시절인 2018년 국내 최초로 다크웹 마약 사이트 운영자를 검거해 9명을 구속기소한 것도 그다. 1년 간 추적 끝에 서버를 압수해 사이트를 폐쇄시켰다. 그 이전 다크웹 사이트 운영자를 검거한 사례는 '웰컴투비디오' 손정우 사건이 있다. 다만 FBI가 한국 경찰에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시 그런 수사를 할 수 있을까"라는 김 과장 말처럼 이후 다크웹 마약 사이트를 문 닫게 한 수사는 나오지 않고 있다.

◆'마약수사 한길' 강력통도 혀를 내두른 사건

이렇듯 마약 수사라면 이골이 날 그에게도 요즘 국내 마약범죄의 심각성은 피부로 다가온다. 대표적인 사건으로 강남 학원가 마약음료 사건, 인천 고3 마약상 사건을 꼽는다.

"마약음료 사건은 검사 생활하면서 가장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사람은 24~25살 정도 뇌가 완성됩니다. 마약을 하면 뇌세포가 손상되고 특히 전전두엽이 파괴되죠. 청소년기 투약한 사람은 전전두엽 대뇌피질 크기가 성인 투약자 1/7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청소년을 상대로 돈벌이하겠다고 마약을 투약했으니까요."

고3 마약상 사건도 마찬가지다. 수험생이 직접 텔레그램 방을 만들어 마약을 팔았다. 성인 '드라퍼' 6명도 고용했다. 청소년이 마약의 대상이 되고 마약으로 돈벌이에 나서는 꼴이다. 김 과장은 "마약수사하면서 전혀 본 적 없는 사례"라고 혀를 찼다.

한때 마약청정국이던 대한민국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김 과장은 여러 요소가 복합됐다고 본다.

그가 꼽는 가장 큰 원인은 '인터넷 마약거래 플랫폼'의 보편화다. 과거는 '알음알음' 마약을 사고팔았다. 주변에 전과자가 없으면 구할 방법이 없었다. 이제 텔레그램, 다크웹, 가상화폐 등이 등장했다. 비대면 거래가 이뤄지면서 누구나 접근하기 쉬워졌다. 최근 필로폰 투약 혐의로 적발된 서울 중3 여학생도 호기심에 텔레그램에 들어갔다 늪에 빠졌다.

IT기술 발전으로 전세계적 유통도 손쉬워졌다. 다크앱에서 '해외직구'가 가능하고 가상자산으로 지불한다. 갱 영화처럼 국제조직이 비밀리에 만나 마약과 돈가방을 교환할 필요가 없다. 실제 2021년 필로폰 900kg이 멕시코~부산~호주를 거쳤는데 호주 국적 주범은 베트남에서 검거된 사건도 있었다. 마약의 글로벌화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검찰 수사권·마약수사조직 축소도 영향을 줬다. 김 과장은 "경찰·관세청·해경 마약 수사인력은 순환보직 근무인 반면 검찰 마약수사관은 입직에서 퇴직까지 마약만 수사하는 전문가들"이라며 "30년 축적된 수사역량이 활용되지 못 했고 수사권 제한으로 조직이 축소된 영향도 있었다"고 분석했다.

연쇄작용으로 마약 가격 인하도 확산에 한 몫 했다. '마약이 피자 한 판 값'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실제 필로폰 하루 투약분 값은 3만~4만원대로 파악된다. 김 과장은 "동남아, 멕시코, 중남미에 대규모 마약공장이 들어서고 있다. 그들에게는 마약이 옷 공장, 망고 농사보다 수익이 훨씬 높다"며 "생산시설이 계속 늘어나면서 유입 단가는 더욱 낮아지고있다"고 설명했다.

대검찰청 자료사진 / <사진=임세준 기자 / 20200707 / 서초구 대검찰청>
대검찰청 자료사진 / <사진=임세준 기자 / 20200707 / 서초구 대검찰청>

이같은 심각성을 법원도 모를리 없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최근 마약범죄 양형을 강화하기로 했다. 김 과장이 제출한 의견서도 신중한 사법부를 움직이는 데 일조했다. 현재 양형기준에 따르면 마약 공급범죄는 최대 14년, 투약 범죄는 최대 4년 수준에 그친다.

김 과장은 2021년 호주 필로폰 사건을 예로 든다. 1톤에 가까운 필로폰 900kg이 부산에 들어왔다. 대한민국 전국민이 한꺼번에 맞을 만한 양이다. 현재 양형기준이면 범인은 징역 14년만 살고 나오면 된다. 청소년 100명이 필로폰을 마실 뻔 했던 강남 학원가 마약음료 사건도 지금 기준이면 '솜방망이 처벌'이 될 수밖에 없다.

◆'마약 수출국' 오명 지운 대검 강력부 5년 만에 돌아왔지만

'마약조직은 제트기 타고 도망가는데 우리는 자전거 타고 쫓아간다.' 김 과장이 종종 하는 말이다. 대한민국이 마약청정국 지위를 잃을 무렵인 2015년. 이미 국제 마약조직은 다크웹, 보안메신저, 가상화폐를 이용해 전세계에 마약을 돌리고 있었다. 국내 수사환경을 보면 수년째 인력은 그대로이고 일부 예산은 오히려 줄어들기도 했다. 마약 수사는 인력·예산과 정비례하는데 장비 하나가 아쉽다.

"요즘은 신종 마약이 많이 나옵니다. 압수수색 나가면 겉만 봐서는 마약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것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압수할 수도, 심지어 먹어볼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이럴 땐 현장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휴대용 감정기가 참 아쉽습니다."

지난달 임명된 박재억 대검 마약·조직범죄부장은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에서 부장과 평검사로 손발을 맞춘 사이다. 1980년대 마약수출국이던 한국에서 제조조직의 뿌리를 뽑은 대검 강력부가 2018년 반부패부와 통합된 지 5년 만에 마약·조직범죄부로 돌아왔다. 이제 마약범죄 수사에 대한 전문적이고 장기적인 정책 수립과 신종범죄에 대한 신속한 대응이 기대된다. 최근 정부의 강도높은 대응으로 텔레그램 등 SNS에서 마약광고가 조금씩 줄어드는 등 '마약청정국' 회복의 징후가 보인다는 말도 들린다.

하루가 달리 교묘해지는 마약범죄의 유행을 먼저 읽고 유입에 대비해 수사기법과 장비를 개발하는데 박차를 가해야 할 시점이다. 이를 집행할 인력도 교육·양성해야 한다. 김보성 과장의 바람은 소박하게 들린다. "마약조직보다 너무 먼발치에서 따라가는 상황은 벗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lesli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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