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거부권에 간호사들 거리로…간호법 논란 쟁점은
입력: 2023.05.19 00:00 / 수정: 2023.05.19 00:00

단독개원 우려에 전문가들 "의료법상 불가"
국회 재상정되면 폐기 예상


김영경 간호협회장(가운데)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관에서 열린 간호법 거부권에 대한 단체행동 계획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박헌우 기자
김영경 간호협회장(가운데)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관에서 열린 간호법 거부권에 대한 단체행동 계획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박헌우 기자

[더팩트ㅣ조소현 기자] 간호사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간호법 제정안' 거부권 행사에 단체행동을 예고했다. 의료 공백과 함께 향후 더 큰 칼등이 빚어질 수 있어 관심이 집중된다.

19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간호협회는 이날 서울 광화문에서 '간호법 거부권 규탄 및 부패정치 척결을 위한 범국민 규탄대회'를 개최하고 단체행동에 나선다. 지난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간호법 제정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데 따른 것이다.

간호법은 의료법에서 간호사에 대한 규정을 따로 떼어내 만든 법이다. 본래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의 자격이나 업무는 의료법에 명시돼 있었으나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정확히 규정하고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별도로 제정됐다.

그동안 간호사는 '의료기관'에서만 일할 수 있었다. 노인·장애인 가정이나 사회복지시설 등에서 간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제한됐다. 그러나 인구 구조가 고령화되면서 의료기관이 아닌 요양원이나 사회복지시설, 가정 등에서도 간호 서비스가 필요해졌다. 간호법에는 간호사가 의료기관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서도 활동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간호계는 간호사가 환자를 찾아가 간단한 의료행위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의사단체 등 '지역사회 간호'라는 표현때문에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간무협) 등 13개 단체로 이뤄진 보건복지의료연대(의료연대)는 '지역사회 간호'로 인해 간호사가 단독 개원을 할 수 있게 되고, 의사 없는 진료 행위로 이어져 의료사고의 위험성을 높인다며 반대한다.

의료연대는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간호법으로 간호사들이 지역사회에서 돌봄기관을 열면 1차 의료기관은 경쟁에 내몰리고 2·3차 의료기관은 간호사 구인난을 겪게 된다. 임상병리사 등 약소 직역들은 간호사에게 업무 범위를 침탈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간호조무사의 학력 상한 조항도 문제삼고 있다. 간호법 5조는 간호조무사의 자격을 '초중등 교육법령에 따른 특성화고의 간호 관련 학과를 졸업한 사람', '고등학교 졸업자로 간호조무사양성소 교육을 이수한 사람', '평생교육시설에서 고등학교 교과 과정에 상응하는 교육과정 중 간호 관련 학과를 졸업한 사람'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간무협은 이 조항이 간호조무사의 자격을 '고졸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며 간호법을 '한국판 카스트법'이라고 비판한다.

보건복지의료연대는 간호사의 활동 영역에 지역사회를 명시했다는 이유로 간호사들이 독자적인 의료행위를 할 수 있게 됐다고 우려했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보건복지의료연대의 간호법 저지 촉구 총궐기대회. /남윤호 기자
보건복지의료연대는 간호사의 활동 영역에 '지역사회'를 명시했다는 이유로 간호사들이 독자적인 의료행위를 할 수 있게 됐다고 우려했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보건복지의료연대의 '간호법 저지 촉구 총궐기대회'. /남윤호 기자

◆전문가들 "우려 지나치고 허위 사실 많아"

전문가들은 의협 등의 우려가 과하다고 지적한다. '지역사회' 표현을 근거로 간호사 단독 개원이 가능해졌다는 논리는 비약이라는 것이다.

이주열 남서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시행령이나 법 개정을 통해 간호사의 업무 영역이 확장될까 우려하는 것"이라면서도 "(간호사 단독 개원은) 의료법이 바뀌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우려를 과대 포장해 단독 개원이라는 프레임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법 33조는 '의사는 종합병원, 병원, 요양병원, 정신병원 또는 의원을, 치과의사는 치과병원 는 치과의원을, 한의사는 한방병원, 요양병원 또는 한의원을, 조산사는 조산원만 개설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간호법이 간호조무사의 학력을 '고졸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는 지적도 근거가 약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성화고 관련 학과를 나오거나 간호조무사 학원을 이수하도록 하고 있을 뿐 대졸 이상 학력자의 간호조무사 자격을 막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김원일 대한간호협회 정책자문위원은 "(자격 제한은) 완전히 허위 사실"이라며 "해당 문구는 의료법 관련 규정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심지어 이 규정을 만든 건 보건복지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과 복지부가 이 규정을 근거로 간호법을 '차별법'이라고 하고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는 건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라고 덧붙였다.

대한간호사협회 관계자들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관에서 열린 간호법 거부권에 대한 단체행동 계획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해 피켓을 들고 있다. /박헌우 기자
대한간호사협회 관계자들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관에서 열린 간호법 '거부권에 대한 단체행동 계획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해 피켓을 들고 있다. /박헌우 기자

◆ 간호계 단체행동 예고에 병원들 예의주시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간호법은 다시 국회에 재상정되는데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해 사실상 폐기가 유력하다.

간호계 반발은 거세다. 간협은 지난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힘과 복지부는 (간호법을)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한 입법독주법',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의료체계 붕괴법', '간호조무사 학력을 고졸로 제한한 신카스트 제도'라며 어처구니없는 허위 사실을 제시했다"고 지적했다.

PA(진료지원인력) '준법투쟁'과 면허증 반납 등 단체행동 계획도 발표했다. PA는 대학병원에서 전공의 등과 함께 수술·시술 보조를 하는 간호사를 지칭하는데, 대리 처방 같은 업무는 불법이지만 현장 사정을 고려해 사실상 묵인되고 있었다. 준법투쟁은 이러한 업무를 거부하는 행위다.

이들의 단체행동 참여 정도에 따라 의료 공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간호사 업무 중 진료 보조가 개념이 광범위해 어디까지 합법으로 볼지 논란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PA가 단체로 빠질 경우 수술 행위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병원들은 상황을 주시 중이다.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현재까지 특별한 움직임은 없다"며 "간호부에서도 입장 표명이 없었다. 조용하다"고 했다. 다른 대형병원 관계자 역시 "평소와 다름이 없다"며 "PA 간호사들은 보통 팀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진료에 차질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단체로 행동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sohyu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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