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의 오름사랑 분투기<끝>] 임박한 초고령사회…'독박간병' 딸들은 외롭다
입력: 2023.05.10 00:00 / 수정: 2023.05.10 00:00

간병 스트레스에 우울증↑ 무기력↑
전문가 "가족 아닌 사회가 부담해야"


한국은 오는 2026년 인구 5명 가운데 1명이 만 65세 이상인 초고령 사회에 들어설 전망이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 /더팩트 DB
한국은 오는 2026년 인구 5명 가운데 1명이 '만 65세 이상'인 초고령 사회에 들어설 전망이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 /더팩트 DB

병든 부모 곁을 딸들이 지킨다. 국내 등록된 가족요양보호사 10명 중 4명은 딸. 배우자와 아들, 며느리 비중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개인의 안락함을 뒤로 하고 내리사랑을 오름사랑으로 보답한다. 하지만 무거운 짐은 온전히 그들만의 몫. <더팩트>는 어버이날과 가정의달을 맞아 부모 간병을 전담하는 딸들의 삶을 3회에 걸쳐 들여다봤다. 마지막 순서로 간병의 책임을 딸들에게 떠넘긴 우리 사회가 해야할 일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60대 여성 김모 씨는 '딸셋맘'이다. 막내딸이 태어난 1992년, 주변 사람들은 "또 딸이야? 딸만 있어서 나중에 어떡하냐"는 소리를 한마디씩 늘어놨다. 그런데 지금은 부럽단다. "늙으면 보살펴 줄 딸들이 세 명이나 있어서 좋겠다"는 말을 한다. 김씨는 30년 만에 확 달라진 반응이 "신기하면서도 웃기다"고 했다. 내리 딸 셋을 낳으면서 한편으로 아쉬운 마음도 있었다. 그래도 아프다면 서로 먼저 걱정해 주는 딸들이 있어 든든하다.

실제 가족 요양보호사 중에는 환자의 딸이 가장 많다. 가족 요양보호사는 요양보호 자격을 취득한 후 가족을 돌본다. 이들은 요양보호사 급여를 받는다. 쉽게 말해 내 가족을 돌보면서 급여도 받는 셈이다. 2021년 기준 건강보험공단에 등록된 가족 요양보호사 9만4520명 중 딸은 40.6%로 가장 많았다. 이어 아내가 28.5%, 며느리 15%, 남편 6%, 아들 5.1% 순이었다. 통계가 보여주듯 <더팩트>가 만난 부모 간병에 뛰어든 여성들은 "당연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내 생활보다는 "우리 엄마, 아빠는 내가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이 앞선다.

'내 몫'이라는 생각에 간병을 시작했지만 힘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반복되는 일상에 스트레스를 받고, 때때로는 자신을 놓치기도 한다. 우울증과 죄책감, 부담감이 몰려올 때가 있다.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가 지난 4월 19~25일 전국 만 19세 이상 간병 경험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족 간병 경험자 466명 중 61.2%는 '간병 부담으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등 정신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아이 돌봄, 집안일 등 가족 내 갈등을 겪었다'(16.5%),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13.1%),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5.2%) 등의 순이었다. 노조는 "간병 고통이 극심하다는 현실을 뒷받침해 준다"고 지적한다.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나이에 간병을 떠안은 청년층(영케어러)에게 이같은 현상은 두드러진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조사한 가족돌봄청년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일반 청년보다 삶의 만족도가 낮고 미래 계획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삶에 불만족한다'는 응답이 22.2%로 일반청년(10.0%)의 2배 이상이었다. 우울감은 61.5%로 일반청년(8.5%)의 7배 이상으로 나타났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간병하는 딸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두려움이라든지 무력감이 생긴다. 오히려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잘못한다고 생각하면 죄책감을 호소할 수도 있다"며 "실제 간병이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자신을 소진하는 경우도 많다. 부모가 우울하면 그 감정이 간병인에게도 그대로 전염된다. 심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수면질환 같은 증상도 일반인보다 높다"라고 설명했다.

내 몫이라는 생각에 부모 간병을 시작했지만 자녀들은 반복되는 일상에 스트레스를 받고, 때때로는 자신을 놓치기도 한다. /이동률 기자
'내 몫'이라는 생각에 부모 간병을 시작했지만 자녀들은 반복되는 일상에 스트레스를 받고, 때때로는 자신을 놓치기도 한다. /이동률 기자

노인성 퇴행 질환은 대체로 좋아지기보다는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 지켜보는 간병인도 함께 우울함에 빠질 가능성이 더 높다. 임 교수는 "아픈 노인 환자의 경우 퇴행성 질환이 있는 경우가 많다. 상태가 점점 나빠지면 내가 간병을 잘못해서 더 나빠지나 자책하게 된다. 환자의 모습은 본모습이 아니다. 아프기 때문에 신경질을 내고 퇴행적 행동을 보이는데 간병인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감정에 취약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동욱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회장은 "부모의 도움을 받고 자라다가 전적으로 돌보는 상황이 되는데 어린아이처럼 성장하거나 더 좋아지는 게 아니라 점점 더 악화하는 모습을 봐야 하니까 (우울감 등에 빠진다). 더 나아지지 않는다는 한계, 경제적으로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다 돌봐야 한다는 부담감 등이 있다"며 "충분히 자신이 다 못한다고 생각하면 (죄책감 등의) 마음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짧게라도 자기 시간을 갖고, 본인을 힘들게 하는 것과 거리를 둬야 하고, 건강관리도 열심히 잘해야 한다. 비슷한 불편을 겪고 있는 사람들끼리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도 좋은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오는 2026년 인구 5명 가운데 1명이 '만 65세 이상'인 초고령 사회에 들어선다. 가족 간병은 큰 사회적 문제가 될 전망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임 교수는 "가족 중심 사회가 장점도 있지만 단점이 있다. 간병은 가족이 아니라 사회가 맡아야 한다. 사회나 국가가 간병을 부담하는 공적 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간병하는 사람들을 위한 장기요양보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독일 같은 경우는 간병하는 사람들에게 휴가를 준다던가 간병수당 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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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jungki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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