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의 오름사랑 분투기②] 암·치매도 이기는 소중한 고백 "엄마 딸이라 행복해요"
입력: 2023.05.09 00:01 / 수정: 2023.05.09 10:15

암투병 어머니 돌보는 50대 장성남 씨
치매 어머니 보살피는 60대 허은성 씨
간병하며 더욱더 깊어지는 모녀 사랑


장성남(53) 씨는 간암 수술을 받은 어머니를 돌보고 있다. /장성남 씨 제공
장성남(53) 씨는 간암 수술을 받은 어머니를 돌보고 있다. /장성남 씨 제공

병든 부모 곁을 딸들이 지킨다. 국내 등록된 가족요양보호사 10명 중 4명은 딸. 배우자와 아들, 며느리 비중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개인의 안락함을 뒤로 하고 내리사랑을 오름사랑으로 보답한다. 하지만 무거운 짐은 온전히 그들만의 몫. <더팩트>는 어버이날과 가정의달을 맞아 부모 간병을 전담하는 딸들의 삶을 3회에 걸쳐 들여다봤다. 이제 사회가 그들에게 손을 내밀 때다. 두번째 순서는 각각 암투병과 치매로 투병하는 노모를 돌보는 장성남, 허은성 씨의 이야기다.<편집자주>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50대 장성남 씨의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하며 집안 살림을 책임졌다. 어린 성남 씨는 어머니 대신 아버지 농사일도 거들고, 밥상도 차렸다. 세 명의 동생을 돌보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불평한 적은 없었다. 당연히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일찍 어른이 됐다.

성남 씨는 어머니에게 늘 미안함이 앞선다. 식당에서 1000원씩 모은 돈으로 성남 씨를 대학에 보냈다. 어머니는 희생만 했다. 그런 어머니가 올해 1월 간암 진단을 받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예고없이 찾아온 암이라는 불청객에 어머니의 인생이 너무 가여웠다. 후회하고 싶지 않았던 딸은 모든 걸 다 제쳐두고 간병에 뛰어들었다.

"제가 어릴 때부터 엄마가 자주 아프셨어요. 내가 돌봐야 할 사람이라는 생각이 많았어요. 엄마의 희생을 너무 잘 알고, 엄마도 자녀의 사랑과 보살핌을 충분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입원부터 회복까지 매 순간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지켰다. 화장실 가는 것부터 몸을 돌려 눕는 것까지 일거수일투족에 손길이 필요했다. 성남 씨는 "수술이 끝나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제가 다 돌봐드려야 했다. 저한테 모든 일을 믿고 맡겨야 하는데 그런 걸 통해서 엄마랑 서로 더 신뢰하게 된 것 같다"며 "생사를 넘나드는 과정에서 엄마가 하나씩 나아지는 걸 보니 행복했다.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퇴원 전날, 어머니는 눈물을 훔쳤다. 성남 씨가 시집갈 때도 울지 않았는데 딸과 같이 지내다 막상 헤어지려니 서운했다. 어머니는 자신의 집에 모시겠다는 성남 씨의 제안을 한사코 거절했다. 딸에게 또 피해를 줄까 봐. 어머니의 고집을 보면서 딸의 가슴은 또 찢어졌다.

반면 허은성 씨는 조금 쿨한 딸이다. 60대 은성 씨는 80대 어머니를 돌본다. 남동생이 세 명이나 있지만 은성 씨는 아픈 어머니를 맡았다. 책임감 때문이다.

2년 전 어머니는 치매 진단을 받았다. 슬픔이나 걱정보단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은성 씨는 "엄마가 좀 이상하다 싶어 병원에 갔는데 급성 당뇨였다. 또 '치매가 있는 거 아닐까'해서 치매 검진도 받았는데 확실히 진단이 나왔다. 원래 엄마랑 같이 살아왔으니까 간병을 한다"고 말했다.

어머니를 대신해 은성 씨는 어릴 때부터 동생들을 돌봤다. 동생들 옷을 모아 깨끗이 빨래하고, 하교 시간에 맞춰 밥을 해 먹였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면 동생들 손에 용돈부터 쥐여줬다. '누나니까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다. 늙은 어머니를 돌보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은성 씨의 하루는 바쁘다. 어머니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챙겨야 해서 약속 잡기도 어렵다. 체력적으로도 힘들지만, 병에 걸린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머니를 보는 게 마음 아프다. 배변 실수가 잦아지면서 어머니는 심적으로 위축됐다. 일주일에 세 번은 수영장, 세 번은 성당에 나갔지만 어느새 외출하길 꺼려했다.

"안타까울 때가 많죠. 당신이 이제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못 받아들일 때가 많아요. '내가 왜 이러냐' '내가 왜 달력도 못 보고, 시계도 못 보냐' 그러세요. 자존심이 세서 기저귀도 안 하려 하더라고요. 그럴 때 마음이 안 좋아요."

성남 씨는 어버이날을 전후로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올 예정이다. 사진은 어머니를 간호하는 성남 씨. /장성남 씨 제공
성남 씨는 어버이날을 전후로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올 예정이다. 사진은 어머니를 간호하는 성남 씨. /장성남 씨 제공

어버이날이라고 성남 씨와 은성 씨에게 특별할 것은 없다.

성남 씨는 어머니에게 고백하려 한다. "엄마 사랑합니다. 엄마의 딸로 태어나 행복합니다. 잘 길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히 사세요." 말로 잘 표현하지 못했던 것을 꼭 전해주고 싶다. 성남 씨는 지난해 딸과 함께 다녀온 40일의 산티아고 순례, 올해 어머니와 함께한 40일의 간병 일기를 책으로 엮어낼 계획이다.

은성 씨는 어머니와 맛있는 식사나 한 끼 하겠다고 했다. 그는 "어버이날이라고 별 건 없어요. 동생들이 집에 와서 같이 밥 먹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오늘도 '할 수 있는 것만큼만 하자'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한다.

[딸들의 오름사랑 분투기①] '스물아홉 막내딸' 치매 아버지 간병에 뛰어들다

sejungki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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