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이 감옥가면 끝일까…중대재해 첫 실형이 남긴 과제
입력: 2023.04.30 00:00 / 수정: 2023.04.30 00:00

방열판에 깔려 노동자 사망…한국제강 대표 징역 1년
처벌 수위 가장 높지만…벌금은 매출액의 '0퍼센트대'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원청 대표이사에게 첫 실형 판결이 나와 노동 현장 안전에 얼마나 큰 경종을 울릴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낮은 양형에 아쉬움은 있으나 첫 실형 판결에 큰 의의가 있다는 입장이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실질적인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무거운 벌금형이 더 현실적인 방안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중대재해처벌법 첫 실형 판례… 핵심은 '고질적 구조'

창원지법 마산지원 형사1부는 지난 26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국제강 대표이사 A 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에서 구속했다. 한국제강 법인에게는 벌금 1억 원을 부과하고 하청업체 대표에게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의 판례 '2호'다.

중대재해처벌법 '1호 판결'의 형량은 집행유예였다. 지난 6일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온유파트너스 대표 B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두 사건 모두 노동자 사망 사고와 관련해 안전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혐의를 받았다. A 씨 등은 지난해 3월 한국제강 공장에서 설비 보수를 하는 협력업체 소속 60대 노동자가 무게 1.2톤짜리 방열판에 깔려 사망한 사고와 관련해 안전보건 조치의무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혐의로 같은 해 11월 재판에 넘겨졌다. B 씨는 지난해 5월 요양병원 증축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하청노동자 추락 사고와 관련해 안전보건 조치의무 등을 지키지 않은 혐의를 받았다.

두 피고인 모두 피해자 측과 합의했으나 판결은 법정구속과 집행유예로 엇갈렸다. 실형을 선고받은 A 씨의 경우 원만하게 합의한 피해자 유족이 선처를 탄원하기도 했지만 구속을 피할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고질적 구조' 때문이었다. 앞서 안전사고가 여러 차례 일어났고 형사처벌까지 이어졌음에도 위험한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을 소홀히 했다는 이유다.

A 씨는 2011년과 2021년 3월, 2021년 11월 사업장에서의 안전조치 의무 위반 혐의로 세 차례 벌금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2022년 1월에도 산업재해 사망사고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었다. 재판부는 "한국제강 사업장에서 수년간에 걸쳐 안전조치의무위반 사실이 여러 차례 적발되고 산업재해 사망사고까지 발생한 것은 위 사업장에 근로자 등 종사자의 안전권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고 "피고인의 죄책은 상당히 무거우므로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고, 피고인 한국제강에도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경제적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원청 대표이사에게 첫 실형 판결이 나온 가운데, 이 판결이 노동 현장 안전에 얼마나 큰 경종을 울릴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 /남용희 기자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원청 대표이사에게 첫 실형 판결이 나온 가운데, 이 판결이 노동 현장 안전에 얼마나 큰 경종을 울릴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 /남용희 기자

◆처벌 수위 세계에서 가장 센 한국…처벌이 능사일까

지난해 12월 사법정책연구원에서 발행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재판 실무상 쟁점' 보고서에 따르면 유사한 법률을 도입한 국가 중 개인 처벌 수위는 한국이 가장 세다. 영국은 한국과 같이 개별법 형태로 중대재해의 책임을 묻고 있지만 법인만 처벌한다. 호주와 캐나다는 형법 등에 관련 조항을 추가해 개인과 법인을 모두 처벌하고 있지만 개인 처벌의 하한형(징역 1년)을 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호주의 경우 범죄 성립 조건이 △심각한 부주의 △노동자의 사망 △사인의 중요한 원인 제공 등 국내보다 까다롭다. 개인 처벌에 대해서도 최대 선고할 수 있는 형량인 상한형만 규정하고 있다. 보고서는 "영국과 호주 관련법과 비교해 범죄성립은 가장 쉽지만 처벌 수위는 가장 높은 특징이 있다"라고 한국의 중대재해처벌법 구조를 분석했다.

실제로 법조계 일각에서는 형사처벌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곽준호 변호사(법무법인 청)는 "완전히 별개의 회사인 원청, 하청과 달리 모자 관계에 있는 회사 사이에서 자회사의 불법 행위에 대한 민사 책임을 모회사에 묻는 것도 쉽지 않다"며 "하물며 형사처벌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대원칙에 입각했을 때 원청 책임자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건 처벌 범위가 너무 광범위한 측면이 있다. 노동 현장 개선은 책임자 개인 처벌이 아니라 고용노동부 등 정부의 노력으로 이뤄져야 할 사안이라는 점까지 종합하면 개인에 대한 처벌은 벌금형 수준에서 그치는 게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개인에 대한 처벌보다 막대한 벌금형이 노동자 안전권 확보라는 입법 목적에 더 충실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벌금을 내는 것보다 환경을 개선하는 게 더 이득'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법원은 한국제강 법인에 벌금 1억 원을 선고했는데, 이는 한국제강의 지난해 매출액(8340억 원)의 0.1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다. 중대재해처벌법상 벌금형 상한은 50억원으로 한국제강 한해 매출액의 0.5퍼센트 수준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중견 변호사는 "처벌이 기업의 각성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경영책임자 1명에 대한 형사처벌이 작업 현장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특성을 고려해 환경 개선 비용의 곱절은 되는 벌금을 물리는 게 더 현실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고,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목적에도 부합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내다봤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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