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청구권서 제3자 변제로…쟁점 늘어난 강제동원 배상
입력: 2023.03.07 05:00 / 수정: 2023.03.07 05:00

'재판개입 의혹' 난항에 소멸시효 판단도 '아직'
'동의 필요' vs '불필요' 변제 이뤄질 지도 미지수


지난 1월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지난 1월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윤석열 정부가 6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방안을 발표하면서 '제삼자 변제 방식'이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2012년 대법원 판결에 이르기까지 개인청구권 유무를 따졌던 피해자들은 승소 판결에도 배상을 받지 못한 채 제삼자 변제 가부까지 따지게 됐다. 이밖에도 '소멸시효'를 놓고 하급심 법원에서 판단이 엇갈리고 있지만 대법원은 좀처럼 기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개인청구권 인정되자 '재판 지연의 늪'

해방 후 20년이 지난 1965년 6월 22일 한일 정부는 국교정상화와 전후 보상을 합의한 한일청구권 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에 '국가와 국민의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음을 확인한다'라고 명기했다. 하지만 국가 사이 협상으로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되느냐 논란이 지속됐다.

2012년 5월 대법원이 '한일청구권 협정만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하지 않는다'며 관련 소송을 파기하고 2심으로 돌려보내면서 피해자들에게 승소의 추가 기울어지는 듯했지만 법원은 재판을 6년가량 미뤘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와 대법원 사이에 재판 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 등이 기소되기도 했다.

검찰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는 박정희 정권 때 체결한 청구권협정 취지를 유지하기 위해 배상 청구권을 인정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따라 당시 대법원은 원고 승소 판결을 막기 위해 재상고심 선고를 최대한 미뤘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실제로 당시 외교부 사무관의 2013년 12월 업무수첩에는 '장관 지시 전달 사항(청와대 보고+협의 결과)'라는 제목으로 "현재 송달 절차 몇 달 더 지연 가능", "운 좋으면 1년 이상 지연할 수 있을지도 모름"이라는 내용이 쓰였다.

◆엇갈리는 소멸시효 판단 속 '제삼자변제' 새로운 쟁점으로

2018년 10월 마침내 김명수 대법원장 등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012년 5월의 대법원 판결을 최종 확정했다. 하지만 하급심에 계류 중인 관련 소송은 소멸시효에 따라 희비가 교차했다. 민법상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가해자가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 또는 불법행위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이다. 소멸시효 계산 기준을 첫 대법 판단 시기인 2012년 5월로 볼 것인지, 재상고심 판결이 나온 2018년 10월로 볼 것인지에 따라 판단이 엇갈린 것이다.

2018년 12월 광주고법은 광주·전남 지역 강제동원 피해자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소멸시효가 지나지 않았다고 보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지만, 서울중앙지법은 2021년 8월 강제동원 피해자 자녀 등 5명이 미쓰비시 마테리아루(전 미쓰비시광업)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소멸시효 도과를 이유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이듬해 2월에도 서울중앙지법은 같은 이유로 강제동원 피해자 민모 씨 등 5명이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소멸시효에 대한 대법원 확정 판례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정부는 이날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받아야 할 소송 판결금 등을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 지급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는 민법이 규정하는 '제삼자 변제' 방식이다. 방식 자체는 합법적이지만 전범기업이 직접 배상하는 방식이 아니라 잡음이 크다. 배상이 이뤄질지에 대해서도 법률가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제삼자 변제에서 중요한 건 채무자(전범기업)의 의사"라며 "채무자 의사에 반하지 않는 한 배상이 가능하고, 채권자(피해자)가 거부할 경우 배상금은 공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6일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 발표로 청구권, 소멸시효에 이어 제3자 변제 가능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사진은 대법원. /더팩트DB
6일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 발표로 청구권, 소멸시효에 이어 제3자 변제 가능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사진은 대법원. /더팩트DB

◆'당사자 반대' 단서조항도 관건…대리인 "일방 공탁하면 법적 대응"

하지만 제삼자 변제를 규정한 민법 469조 단서조항에 걸린다는 의견도 있다. 469조는 △채무의 성질상 허용되지 않는 경우 △당사자가 반대의사를 표시한 경우 △채무자 의사에 반하는 경우 △제삼자가 이해관계가 없는 경우에 변제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전수미 변호사는 "이 소송은 금전 채무로 채무 성질상 제삼자 변제가 가능하고, 재단을 이해관계가 아예 없는 제삼자로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다만 당사자, 즉 채권자 의사에 반하면 변제가 이뤄질 수 없다. 이 경우 전범기업의 배상 책임도 그대로 유지된다"라고 설명했다.

피해자 대리인은 "오늘 정부가 발표한 강제동원 해법은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전범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책임을 인정한 2018년 대법원 판결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것"이라며 "한국 행정부가 일본 강제동원 가해 기업의 사법적 책임을 면책시켜 줬다"라고 비판했다.

또 "해법에 동의하지 않는 피해자들의 경우 한국 정부가 공탁 등의 방식으로 채권을 일방적으로 소멸시킬 수 없다. 만약 재단이 일방적으로 공탁을 한다면 집행절차에서 공탁의 무효를 확인하는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며 추가 대응을 예고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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