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는 다를 뿐 틀린 게 아니다" 동성부부 부양 자격 인정 (종합)
입력: 2023.02.21 14:18 / 수정: 2023.02.21 14:18

1심 패소서 승소 반전…사실혼 관계 인정은 안해

결혼 5년차 동성부부 소성욱 씨와 김용민 씨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민건강보험공단 상대 보험료 부과 취소 처분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후 입장을 말하며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결혼 5년차 동성부부 소성욱 씨와 김용민 씨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민건강보험공단 상대 보험료 부과 취소 처분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후 입장을 말하며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성 소수자 부부가 동성이라는 이유로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박탈한 국민건강보험공단 처분을 물러달라며 제기한 행정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소수자는 다를 뿐 틀린 게 아니다"라며 소수자 권리를 보호하는게 법원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서울고법 행정1-3부(부장판사 이승한 심준보 김종호)는 21일 오전 김용민 씨의 동성 배우자인 소성욱 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보험료 부과 처분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취소한다. 피고가 원고에 대해 한 보험료 부과 처분을 취소한다. 소송 총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라고 밝혔다.

소 씨는 2019년 5월 동성 배우자와 결혼식을 올린 뒤 건보공단에서 사실혼 관계 배우자도 피부양자에 해당한다는 안내를 받아 자격을 취득했다. 이 사실이 언론보도로 알려지자 건보공단은 2020년 10월 소 씨에게 피부양자 인정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통보했다.

소 씨는 현행법은 사실혼 배우자에게도 연금과 보험금 수령 권리를 부여하고 있는 만큼 동성 배우자라는 이유만으로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건 부적절하다며 소송을 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월 "혼인이란 민법과 대법원·헌법재판소 판례,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에 비춰 여전히 남녀의 결합을 근본 요소로 한다고 판단된다. 동성 사이 결합까지 확장해 해석할 만한 근거가 없다"라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다만 재판부는 "여전히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가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나, 호주나 유럽연합의 여러 나라가 동성혼을 인정하고 있고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가 동성 동반자 제도를 두는 등 세계적으로는 혼인할 권리를 이성 사이로 제한하지 않고 개인의 자유로 인정하며 사생활 및 가족생활을 존중받을 권리로 이해하는 것이 점진적인 추세"라고 짚었다.

동성 부부라는 이유로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 자격을 박탈당했다며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낸 동성 부부 김용민·소성욱씨가 지난해 1월 1심 선고 공판 뒤 서울행정법원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동성 부부라는 이유로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 자격을 박탈당했다며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낸 동성 부부 김용민·소성욱씨가 지난해 1월 1심 선고 공판 뒤 서울행정법원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항소심 재판부는 '평등의 원칙'에 주목했다. 2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건보 공단 측에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 커플을 법적으로 달리 판단하는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건보공단 측은 현재 국민적 인식에서 사실혼 배우자는 가족의 범위에 들어가지만 동성 커플은 그렇지 않다고 답변했는데, 항소심 재판부는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행정청인 피고(건보공단)는 직장가입자의 사실혼 배우자 집단에 대해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면서도 동성결합 상대방 집단에 대해서는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아 두 집단을 달리 취급하고 있다"며 차별대우를 했다고 지적했다.

2심 재판부는 또 "동성결합은 동거·부양·협조·정조 의무에 대한 상호 간 의사의 합치 및 사실혼과 동일한 정도로 밀접한 정서적·경제적 생활공동체 관계를 전제로 하는 것"이라며 "사실혼과 동성결합에 의해 발생하는 권리·의무의 내용이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없고, 다소 상이한 점이 있더라도 이를 피부양자 제도의 관점에서 절대적 비교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고는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결합 상대방에 대한 차별대우를 정당화할 수 있는 합리적 이유에 대해 구체적인 주장·입증을 하지 않고 있다. 양자를 달리 취급할 합리적 이유에 대한 설명도 찾을 수 없다"라고 꼬집었다.

이밖에도 2심 재판부는 "소수자에 속한다는 건 다수자와 다를 뿐 그 자체로 틀리거나 잘못된 것일 수 없다"라며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인권 최후의 보루인 법원의 가장 큰 책무"라고 강조했다.

2심 재판부는 원고 부부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면서도 1심과 같이 원고 부부의 관계를 사실혼 관계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민법과 대법원 및 헌법재판소 판례가 이성 간의 혼인만을 허용하고 있고 사실혼의 성립요건인 '혼인' 역시 남녀의 결합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이유다. 2심 재판부는 "사실혼의 성립요건인 '혼인의사' 또는 '혼인생활'에서 '혼인'을 현행법의 해석례에 비춰보면 '남녀'의 애정을 바탕으로 일생의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도덕·풍속적으로 정당시 되는 결합으로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며 "사실혼 관계의 혼인을 동성 간의 결합까지 확장해 해석할 만한 근거가 없고 현행법 체계상 동성인 원고 부부의 관계를 사실혼 관계로 평가하기는 어렵다"라고 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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