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원 허위 문서로 선고유예·실무자 모두 무죄
'수사외압' 이성윤도 무죄…오히려 윤대진 지목
김학의(사진)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출국금지 조처 관련 의혹을 수사·기소한 검찰이 1심에서 사실상 공소 유지에 실패했다. /이새롬 기자 |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출국금지 조처 관련 의혹을 수사·기소한 검찰이 1심에서 사실상 공소 유지에 실패했다. 출금 실무자들은 대부분 무죄를 선고받았고,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된 이성윤 전 서울고검장 역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오히려 윤대진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의 전화가 수사 중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법원 "김학의 출금은 정당"…'불법 목적' 인정 안 해
검찰은 범죄 피의자가 아니라 법적으로 긴급 출금 대상이 아닌 김 전 차관에 대한 긴급 출금 조처는 위법하다며 이규원 당시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 검사와 차규근 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본부장, 이광철 전 청와대 비서관 등 출금 실무진을 재판에 넘겼다. 출입국관리법상 긴급 출금 대상은 사형·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범죄 피의자다. 김 전 차관이 '별장 성 접대' 의혹을 받고 있었지만 범죄 피의자로 볼 수 없다는 것이 검찰 시각이다.
이러한 조처는 '수사기관'의 요청으로 이뤄지는데, 당시 서울동부지검 검사 직무대리 지위에 있던 이 검사가 긴급 출금 승인을 요청한 건 절차상 위법하다고도 봤다. 검찰은 이 검사 등이 공무원으로서 직권을 남용해 김 전 차관의 출국을 위법하게 저지했다고 보고 직권남용 혐의 등을 적용해 기소했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김 전 차관의 피의자 지위는 인정했지만 법률상 요건을 일부 갖추지 못해 긴급 출금 조처를 "그릇된 선택"이라고 봤다. 하지만 이는 법원의 사후적 판단으로 사건 당시 출금 목적에 불법성은 없었고 오히려 정당했다며 피고인들의 혐의를 대부분 무죄로 판단했다. 피고인들로서는 재수사가 임박한 수사 대상자의 출국을 저지했을 뿐 불법 행위를 할 고의성은 없었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사법적 심사로 사후적으로 위법한 것으로 판명된 공무원의 직무집행을 모두 형사처벌 대상에 해당한다고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라며 "(사건 당시) 김학의 사건의 재수사가 임박한 상황에서 수사대상자가 될 것이 확실한 김학의의 출국 시도를 저지한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 김학의의 출국을 그대로 용인했을 경우 김학의 사건의 재수사가 난항에 빠져 국민적 의혹이 해소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필요성과 상당성도 인정된다"라고 설명했다.
수사기관만이 긴급 출금 조처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서도 "수사기관은 형사소송법이 범죄 수사의 권한을 인정하는 검사와 사법경찰관"이라며 "이 검사는 서울동부지검 검사 직무대리의 지위에서 검사의 권한에 속하는 긴급 출금 요청을 할 법률상 권한이 있고 긴급 출금 요청 및 승인 요청은 대외적으로 완전한 효력을 갖는다"라고 판시했다.
다만 이 검사가 긴급 출금 승인 요청서에 서울동부지검장 명의를 쓴 건 지검장 또는 전결권자인 차장검사의 승인 없이 이뤄진 행위로, 다른 사람의 지위를 허위로 기재해 위법하다고 봤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이 검사에 대해 징역 4개월의 선고를 유예했다. 선고유예는 혐의는 인정되지만 죄질이 가벼울 때 형의 선고를 면하게 하는 제도다.
이성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전 서울고검장)이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직권남용) 관련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
◆이성윤 무죄 선고에 9차례 등장한 윤대진
법원은 이 검사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직권남용)로 재판에 넘겨진 이 전 고검장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이 전 고검장이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이 검사를 수사하겠다는 취지의 보고를 받은 뒤 이현철 당시 수원지검 안양지청장에게 전화해 "보고받지 않은 것으로 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하는 등 수사를 방해한 것으로 보고 재판에 넘겼다.
이 전 지청장은 실제로 이 전 고검장의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김형근 당시 수사지휘과 과장으로부터 '이 보고는 안 받은 걸로 하겠다', '안양지청 차원에서 해결해달라. 지청장이 그런 걸 해결해야 하지 않겠냐' 등의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김 전 과장은 이 전 고검장의 부하직원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증인으로 나온 김 전 과장은 상반되는 증언을 했다. 현직 검사의 비위는 감찰 부서에 보고해야 하니 일선 청에서 다시 판단해달라고 말했을 뿐이라며 "이 전 지청장의 진술이 이해되지 않는다"라고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 전 과장은 이 전 지청장의 대학·사법연수원 후배로 이 전 지청장 주장대로 '무례한 발언'을 할 위치도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법원은 김 전 과장의 증언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이 전 지청장의 대학교 동문 후배이자 사법연수원 후배이고 직급상으로도 하급자인 김 전 과장이 직접 전화해 '지청장이 그런 거 해결해야 하는 거 아니냐. 이 보고는 안 받은 것으로 하겠다'라는 무례한 외압성의 발언을 했다는 게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법원은 수사 외압 혐의를 받은 이성윤 전 서울고검장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오히려 윤대진(사진)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의 전화가 수사 중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뉴시스 |
그러면서 이 전 지청장이 김 전 과장의 말을 오해한 이유는 윤 전 국장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판시했다. 이 전 지청장은 김 전 과장과 연락하기 며칠 전 윤 전 국장의 전화를 받았다. 이 전 지청장에 따르면 윤 전 국장은 '이규원 수사하지 말랬는데 왜 계속 조사하냐', '차라리 나를 입건하라'고 말하는 등 언성을 높였다. 재판부는 "이 전 지청장은 김 전 과장의 전화를 받기 며칠 전 윤 전 국장에게 수사 중단 취지의 전화를 받은 사실이 있다. 이 통화의 영향으로 '감찰 보고는 지청장이 알아서 하면 된다'라는 김 전 과장의 말을 '이규원 사건을 덮으라'는 의미로 잘못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봤다.
그러면서 "수원지검 안양지청 수사팀의 수사 의지가 담긴 보고서를 보고도 수사 진행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피력하지 않은 것을 보면 피고인이 안양지청에 위법한 압력을 행사한 건 아닌지 의심이 들긴 한다"라면서도 "안양지청에서 이규원 검사에 대한 수사 진행을 하지 못한 건 피고인 외에 윤 전 국장의 전화, 대검과 안양지청 사이 의사소통 부재, 안양지청 지휘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수사가 중단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짚었다.
재판부는 이날 판결을 선고하면서 윤 전 국장을 9차례 언급했다. 윤 전 국장은 기소되지 않았다. 이 전 고검장은 이와 관련해 "직접적인 수사 중단 외압은 윤 전 국장 등에 의해 이뤄졌는데 피고인만 차별적으로 기소해 공소권 남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지만 배척됐다. 윤 전 국장이 이 사건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를 받고 있어서다. 윤 전 국장은 수사 외압성 발언을 한 사실을 법정에서 부인했다.
검찰은 이 검사 등 피고인들에게 실형을 구형했지만 1심 판결대로라면 모든 피고인이 형사처벌을 피하게 됐다. 검찰은 선고 직후 "1심 판결은 증거관계와 법리에 비춰 도저히 수긍할 수 없어 항소를 통해 반드시 시정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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