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악영향 등 우려해 자진월북 몰아"
국방부 5600건, 국정원 50건 첩보·보고 삭제 추정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이 남북관계 악영향 등을 우려해 공무원의 자진 월북으로 성급한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새롬 기자 |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이 남북관계 악영향 등을 우려해 공무원의 자진 월북으로 성급한 결론을 내렸다는 수사 결과를 내놨다. SI(특별취급정보)에 월북이라는 단어가 있더라도 월북을 단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29일 오후 기자들과 만나 "수사팀은 국가안보실의 보안유지라는 지시아래 (사건 관련) 증거가 은폐됐다고 보고 있다. 공무원이 자진월북하다가 피격·사망·소각된 것이라고 몰아갔다"고 설명했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이희동 부장검사)는 이날 박지원 전 국정원장과 노모 전 국정원장 비서실장을 국정원법 위반과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죄로 불구속 기소했다.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 허위공문서 작성 및 동행사죄로 재판에 넘겼다.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나머지 관련자들에 대해선 수사를 계속 하겠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이 조직적으로 서해 피격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다는 입장이다. 피격된 이대준 씨를 구조하지 못했다는 국민적 비난과 남북관계 악재 등을 우려해 보안유지를 명목으로 진상을 은폐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어 이씨가 자진월북했다고 몰아갔다는 게 수사팀의 시각이다.
검찰은 이같은 배경 중 하나로 피격 다음날 송출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유엔 연설을 지목했다. 남북관계 악영향을 우려해 서훈 전 실장 등이 사건을 은폐 지시를 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팀 입장에서는 그것 역시 이 사건이 생기게 된 동기 중 하나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SI 첩보에 월북 내용이 들어가 있더라도 이씨의 사망 원인을 월북으로 단정해선 안된다는 입장도 거듭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월북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더라도 등장한 배경, 시점, 경위, 주체 같은 것들을 종합하면 자진월북 근거로 삼기에는 부적절하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지난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전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박헌우 인턴기자 |
당시 국가정보원이 동일한 자료와 근거를 바탕으로 '월북 가능성은 불확실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도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당시 다른 국가기관도 동일한 정보와 자료를 분석했다. 다른 자료를 종합하더라도 자진월북 여부는 불명확하다고 분석·보고했다. 국방부 등 관계기관 실무자들도 자진월북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고 언급했다.
사건 당시 수온과 유속, 구명조끼 등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이씨가 자진해서 북한 해역까지 갔을 가능성은 작다고 판단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씨의 가족관계가 끈끈했고, 신분 자체도 공무원이고 경력이나 다른 증거를 보면 외양선에 간부급으로 재취업할 수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월북이나 극단적 선택 시도보다 실족 가능성에 방점을 찍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에서 자진월북이라는 의미는 국가보안법 위반에 해당하는 범죄 행위가 될 수 있다. 자진월북자로 규정된다는 것은 당사자와 남아있는 가족에게도 심각한 피해를 끼친다. 국가가 개인에 대해 자진월북이라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명확한 근거와 함께 신중한 판단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국방부에서 5600여 건, 국정원에서 50여 건의 첩보나 보고서가 삭제됐다고 잠정 결론 내렸다. 첩보 원본을 삭제하지 않았고 보안 유지를 위해 첩보 배포선을 조정했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을 놓고는 "수사팀이 파악하는 사실과는 다르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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