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진 착오로 삭제 가능성에 "허술한 조직 아냐"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의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새롬 기자 |
[더팩트ㅣ김세정 기자·조소현 인턴기자]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서해 피격 사건 첩보 삭제를 지시했다는 의혹을 부인하고 있지만 검찰은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문재인 전 대통령 조사는 신중을 기하겠다는 입장도 보였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15일 검찰 조사 후 '국정원에는 삭제라는 게 존재하지 못한다'는 기존 주장에서 달라진 박 전 원장의 입장에 대해 기자들이 묻자 "수사팀이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답했다. 박 전 원장의 해명이 어떻든 기존 파악한 혐의점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으로 풀이된다.
박 전 원장은 지난 14일 검찰에 출석해 12시간가량 피의자 조사를 받았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원장은 "국정원에는 삭제라는 게 원천적으로 존재하지 못한다고 얘기했는데, 수사하면서 보니까 삭제가 되더라"라며 "중대한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박 전 원장의 발언 후 일각에서는 박 전 원장이 입장을 번복하고 첩보 보고서 삭제 가능성을 인정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박 전 원장은 그간 "첩보를 삭제해도 첩보 원본이 메인 서버에 남는다. 그런 바보짓을 하겠느냐"며 혐의를 부인해왔다.
논란이 일자 박 전 원장은 이날 오전 자신의 SNS에 "잘 알지 못하는 전문적 내용이라 설명이 부족하겠지만 오해가 없도록 말씀드린다"며 "새롭게 알았다고 말씀드린 부분은 시스템 서버에선 (문건) 삭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국정원의 모든 자료가 저장되는 데이터베이스 서버('메인 서버')와 달리 첩보 보고서 등을 운용하는 시스템 관련 서버에선 자료 회수, 열람 제한, 열람 기간 설정 등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이 일부에서 주장하는 '삭제'이든 '보안 조치' 등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이 삭제를 지시 받거나 지시한 적은 없지만 서버 삭제 자체는 가능하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는 뜻으로 읽힌다.
검찰은 국정원 내에 여러 서버가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것을) 설명해드리면 구체적인 수사 내용을 다 설명해드리는 거라 적절치 않다"면서도 "나중에 어떤 시점에서는 설명해드릴 수 있을 것"이라 답했다.
검찰은 보안을 유지하라는 지시를 첩보 삭제로 국정원 실무진들이 오해했을 수 있다는 일각의 주장에는 "국정원 조직이 그렇게 허술하겠나"라고 강조했다.
사건 당시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문건은 최근 법원에서 확보했다고 밝혔다. 서 전 실장 측은 영장심사 과정에서 문건의 사본을 법원에 제출했다.
월북 결론을 최종 승인했다는 문 전 대통령의 발언에는 "전직 대통령의 입장에 수사팀의 의견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문 전 대통령의 조사 가능성을 두고는 "검찰총장이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 '수사팀도 충분히 절제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로 수사팀 입장을 대신하겠다"고 설명했다.
박 전 원장은 2020년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 이대준 씨가 북한군에 피격돼 사망한 사건과 관련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의 지시를 받아 이 씨가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사실이 담긴 첩보 보고서를 삭제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박 전 원장은 SNS에 "국정원의 모든 문서는 수집 및 생산, 배포되면 서버에 저장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재임 중에 직원들에게 어떠한 문서도 삭제하라고 지시할 이유도 없고 지시한 적도 없다. 이런 사실관계는 지금도 같다"고 혐의를 재차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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